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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읽기-문호진]면세점 히든 챔피언
지난 세기말 휴대전화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불리면서 사활을 건 각축전이 펼쳐졌다. 정보통신과는 아무 상관없는 축산, 건설업체 까지 앞다퉈 뛰어들었다. 이 전쟁의 최후 승리자는 SK텔레콤이었고 현재 국내 이동통신 시장의 절반을 점유하는 맹주로 우뚝 섰다.

과거 이동통신 시장을 연상케 하는 ‘불꽃 레이스’가 금세기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바로 서울 면세점 사업이다. 특히 대기업은 15년만에 새로 할당된 두 장의 티켓을 거머쥐기 위해 재계의 별들이 ‘스타워즈’에 직접 참전하고 있다. 호텔신라의 이부진 사장은 현대산업개발의 정몽규 회장과 연합전선을 구축하며 기선제압에 나섰다. 용산을 면세점의 메카로 만들겠다는 야심찬 청사진을 내놨다.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은 국내 1호 백화점인 회현동 신세계본관 건물을 면세점 입지로 내세웠다. 한화 김승연 회장은 승부사 답게 여의도 랜드마크인 63빌딩을 면세점 친화형 빌딩으로 리뉴얼하겠다는 통 큰 배포를 드러냈다. 정지선 현대백화점 회장은 면세점 영업이익의 20%를 매년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깜짝 카드’를 내밀었다.

재벌가 후예들이 면세점에 명운을 거는 까닭은 이만한 ‘황금알’을 앞으로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현대증권 분석에 따르면 신규 면세점이 정상화 국면에 접어들면 매출액 9500억원(2014년 롯데면세점 본점 매출액 1.9조원의 50% 수준), 영업이익률 10~15% 수준을 기록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면세점 매출액의 60~70%를 차지하는 요우커(중국 관광객) 1000만 시대가 향후 3년안에 도래할 것으로 보여 사업 전망이 환하다. 잘만하면 아모레퍼시픽의 폭풍성장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판단이다.

이처럼 ‘황금빛 미래’가 전망되는 사업이 ‘대기업 잔치’로만 끝나서는 안된다는 사회적 공감 아래 2012년부터 중소ㆍ중견기업 참여의 길이 열렸다. 새로 1곳을 선정하는 올해 입찰에는 14곳이 출사표를 던졌다. 경쟁률이 14대1로 대기업(3.5대 1) 보다 치열하다. 이통통신 사업이 그랬듯 이번에도 면세점 문외한 기업들이 눈에띈다. 레미콘이 주력인 유진기업은 별도법인인 유진DF&C를 설립해 뛰어들었다. 한류스타 배용준이 대주주인 연예기획사 키이스트, 정몽구 현대차 회장의 전 사위인 신성재 부회장의 삼우(자동차부품社)도 의욕을 보이고 있다.

문제는 면세점 참여 중견ㆍ중소기업의 범주를 개별 실적으로 적용하다 보니 덩치 큰 중량급이 경량급과 싸우게 됐다는 점이다. 유진기업은 개별로 보면 지난해 자산총액 9450억원, 매출액 4840억원으로 자산총액 1조원, 매출액 5000억원 이하라는 참여조건을 충족한다. 그러나 연결기준으로 보면 자산총액 1조2640억원, 매출액 7390억원으로 요건에 부합하지 않는다. 파라다이스글로벌도 모회사 파라다이스의 자산총액이 1조6000억, 매출액이 6760억원에 이른다. 자신보다 한 뼘이나 큰 상대와 싸워야 하는 경쟁사들의 두려움이 클 수 밖에 없다. 이런 중량급들은 사업권을 따낼 경우 특허기간 5년 내 개별실적으로도 매출 5000억원을 넘길 수 있어 논란거리가 될 수 있다. 중소기업에 사업 기회를 주고자했던 개정 관세법 취지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지난해 국내 면세점은 외국인 매출비중이 80%를 넘어섰다. 면세점 사업자 선정은 곧 수출역군을 발굴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얘기다. 덩치는 작지만 콘텐츠에 강한 ‘신예 강소기업’에 기회를 주고 수출전사로 키워낸다면 그 의미는 배가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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