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 양국이 관계 개선을 위한 단초를 일단 마련했다.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서울과 도쿄에서 22일 동시에 열린 한일국교정상화 50주년 기념식에 서로 참석한 게 그것이다. 우여곡절을 겪긴 했지만 양국 정상이 상대국 주재 대사관 행사에 기꺼이 모습을 보인 것은 반갑고 환영할 일이다.

이날 두 정상의 축사에 담긴 핵심 키워드는 ‘미래’다. 박 대통령은 “올해는 두 나라가 새로운 미래를 함께 열어가야 할 원년”이라고 말했고, 아베 총리도 “앞으로의 50년을 내다보면서 함께 손잡고 양국의 시대를 만들어 나가자”고 강조했다. 갈등과 반목으로 점철된 지난 50년을 뒤로 하고 양국 관계의 새 지평을 열어가자는 의미다. 얼음장같던 두 나라 관계에 미약하나마 온기가 돌기 시작한 셈이다.

지금 두 나라는 국교가 정상화된 이래 최악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관계가 악화된 상태다. 김대중 납치사건, 문세광의 박정희 대통령 저격, 교과서 왜곡 등으로 양국 사이가 크게 나빠진 적은 더러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찬 바람이 돌지는 않았다. 서로 비슷한 시기에 취임해 2년 반이 넘도록 단독 정상회담을 단 한 차례도 하지 않았던 것만 봐도 그 정도가 어떤지 알 수 있다. 이제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실마리는 잡았으니 어떻게든 이를 잘 살려 실질적인 개선으로 이어가는 게 중요하다.

그러나 온기가 살짝 돈다고 금새 훈훈해지는 것은 아니다. 계기가 만들어진 건 분명하나 아직 갈길이 멀다는 얘기다. 실제 이날 두 정상의 발언에서도 현격한 온도차가 느껴진다. 아베 총리의 메시지는 지나치게 원론적이다. ‘새 시대’, ‘협력 강화’, ‘평화와 안전’ 등 외교적 수사만 가득했지, 반드시 짚어야 할 과거사에 대해선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 반면 박 대통령은 ‘미래’를 강조하면서도 “과거사의 무거운 짐을 화해와 상생의 마음으로 내려 놓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과거사, 특히 양국간 최대 현안인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진정성 있는 해법이 나오지 않으면 의미있는 관계 개선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아베 총리가 관계 개선의 의지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 오는 8월15일 아베 총리는 종전 70년 담화를 발표한다. 이 담화는 한일 관계 진전 여부를 가늠하는 또 하나의 계기가 될 것이다. 여기에는 위안부 문제를 포함한 일제 식민지배에 대한 진정성 있는 사죄가 담겨야 한다. 이것 마저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두 나라 사이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널지도 모른다. 쌓인 앙금을 풀지 않은 화해는 결코 지속가능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