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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 광장 - 이정희]북한의 변화를 읽는 키워드 ‘시장화’
사회주의 역사에서 ‘시장’은 변화의 핵심 동인이었다. 최근 북한의 ‘시장화’는 북한의 변화를 읽는 키워드가 되고 있다. 시장화(marketization)는 계획화(planning)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시장 메커니즘 도입, 시장확대, 시장요소로 불리는 제도적 특징들의 연결체제로 규정된다. 북한에서 시장 형성은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기간에 국가배급제가 붕괴된 것이 주요 계기로 작용했다. 1990년대 자연재해와 식량난 등으로 기존 배급제가 사실상 붕괴되자 주민들이 자구책으로 ‘장사’ 행위에 나서고 ‘자생적 시장’이 등장한 것이다.

특히 2002년 ‘7.1 경제관리개선조치’가 추진되면서 시장화는 상당부분 진행됐다. 이를 통해 가격보조정책이 폐지되고 기존 농민시장이 종합시장으로 전환됐다. 김정은 정권의 최대 목표인 권력안정화를 위해서는 경제상황 개선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6.28 경제관리지침’ 등 시장친화적 개선조치가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배경이다. 2012년 시행된 6.28 지침은 협동농장과 국영기업의 경영권을 현장에 부여하고 생산단위의 자율성을 확대함과 동시에 계획 수립, 생산, 처분에 이르기까지 기업 권한을 확대한 것이다. 북한의 시장화는 소비재, 유통부문을 중심으로 자체 영역을 확대하고 계획경제를 보완해 가고 있다. 국제사회의 제재 강화와 중국 협력도 주춤한 현실에서 북한경제가 2013년 1.3%에 이어 지난 해 1%대 성장을 이어간 것은 시장화가 일정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1990년대 경제위기 이후 시장에 대한 통제와 허용 정책을 반복했다. 7.1조치 이후 시장경제를 도입했으나 2007년부터 시장억제정책으로 회귀했고, 2009년에는 ‘화폐개혁’을 전격 실시, 계획경제를 복원했다. 그러나 화폐개혁 이후 물가폭등과 공급위축 등으로 시장 억제정책이 사실상 불가능해짐에 따라 2010년 ‘5.26 지시’를 통해 이를 철회, 시장은 다시 합법적 지위를 회복한다. 김정은 정권 출범 이후 시장 통제는 사실상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북한의 시장화는 주민의 일상과 의식에 변화를 가져와 북한사회에 파급효과를 불러오는 것으로 평가된다. 시장화는 사적 경제활동 및 사유화 확대와 계층구조 변화를 수반하기 때문이다. 개인 경제활동이 늘어나고 ‘돈주’라 불리는 신흥 계급이 등장하면서 기존 출신성분으로 서열화되어 있던 북한의 계층구조가 균열을 일으키고 있다. 시장화 진전으로 개인의 국가의존도가 약화되고 새로운 정보와 지식이 교류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됨에 따라 주민들의 가치관도 변한다.

김정은 시대 북한의 경제정책 변화 수준은 1980년대 중국과 유사하다. 국가 기간산업은 계획체제를 유지하나 이외에는 시장을 확대하는 것이다. 중국은 경제개혁 목표가 사회주의적 시장경제체제 수립에 있음을 전면에 내세운 데 비해 북한은 일정한 시장화에도 불구하고 공개적 적극성과 정치적 의지가 부족한 것이 다른 점이다. 양국의 국제정치경제적 위상 및 경제규모 차이 등에 기인한 차이일 것이다.

향후 김정은 정권은 ‘시장’을 인정하고 이를 활용하는 가운데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할 것이다. 이미 당, 군, 내각 등 여러 부문의 시장의존도가 높고, 주민들이 시장의존 생계를 꾸려갈 뿐만 아니라 ‘경제강국을 통한 강성대국 실현’이라는 선대 유업을 관철해야 하는 입장 등에 비추어 시장화 확대는 거의 유일한 선택이기 때문이다. 현 단계 북한사회의 급격한 변화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시장화 확산에 따른 ‘아래로부터의 변화’는 주목을 요한다. 시장화에 따른 가치관 변화와 비사회주의적 요소 확산의 영향이 작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김정은 정권 출범 이후의 개혁 징후를 포착해 시장화 촉진과 개혁 견인 방안을 마련해야 할 필요가 어느 때보다 크다. 북한의 미래에는 부분적 개선조치를 넘어 실질적이고 지속적인 성과를 담보하는 ‘과감한 개혁정책’이 필요하다. 국제사회와 협력, 북한이 선경(先經)정책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견인하는 담대한 구상과 실천은 우리 몫이다. 올해는 6.15 공동선언 15주년이자 현 정부 임기 중반이다. 국제정세 또한 비상한 시기이다. 북한의 변화를 살피고 ‘시장화’ 흐름이 명실상부한 개방으로 이어지도록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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