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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층수의 반란]층수 고정관념 파괴의 경제학…“역발상이 곧 돈”
[헤럴드경제=박준규 기자]한때 ‘은행=1층’은 입점의 공식이었다. 사람과 돈이 모이고 흩어지는 곳이기에, 쉽게 접근할 수 있고 눈에 잘 띄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 공식은 이제 구문이 됐다. 지난해부터 주요 시중은행들은 1층을 벗어나고 있다. 1층에는 자동화기기(ATM)나 진입 계단만 만들어 놓고, 영업장은 2층에 차린 곳들이 퍼지고 있다. 이유는 역시 수익 때문이다. 역발상이 곧 돈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1층 아닌 1층 같은 점포=은행권에선 2층에 영업점을 운영하면 임대료 부담이 통상 50%까지 줄어든다고 본다. 더구나 인터넷ㆍ모바일뱅킹을 이용한 업무가 늘면서 고객들이 수시로 영업점을 들락날락하는 모습도 적어지면서 굳이 1층을 고집할 까닭이 없어졌다.

건물주들도 예전만큼 은행 입점을 반기지 않는다. 우리은행 점포개발부 관계자는 “은행은 3~5년씩 계약하고, 월세도 꼬박꼬박 보내니까 과거엔 선호했지만 요즘은 은행의 영업시간이 제한적인 탓에 ‘건물이 죽어 보인다’는 이유로 건물주들이 피한다”고 했다.

우리은행은 2층 점포수가 크게 늘어서 서울 내 452개 점포 가운데, 2층에 영업장을 차린 지점은 67곳(올해 5월 기준)이다.

한편 개인자산 관리를 서비스하는 특화 점포들은 아예 빌딩 꼭대기로 간다. 조용하고 아늑한 공간에서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운 상담을 진행하기 위해서다. 신한은행의 경우 신한PWM스타센터는 20층, 서울파이낸스센터는 25층에 각각 자리 잡았다.

접근성이 중요한 커피 전문점이나 패스트푸드점 가운데서도 1층에선 주문하는 곳만 배치하고, 2층에 넓은 공간을 확보한 곳들이 늘어나고 있다.

역발상으로 돈 만지는 사람들=역발상을 추구해 재미를 보는 개인들도 있다. 생각지도 않은 곳에 가게를 차려서 소위 대박을 치는 것.

임진오(44) 씨가 대표적이다. 그가 지하철 9호선 신논현역 인근에 지난해 12월 ‘진격대포’라는 해산물 주점을 오픈했다. 11층짜리 건물의 가장 꼭대기층 전체(실면적 214㎡)를 쓴다. 원래 이 자리엔 바가 있었다.
11층 포장마차. 이상섭 기자/babtong@heraldcorp.com

임 대표는 “애초엔 가게를 준비하면서 1~2층을 알아봤지만 식상하기도 하고, 권리금과 보증금, 임대료를 더하니 초기 투자비만 8억원 가까이 돼 부담이었다”며 “궁리 끝에 도심의 야경을 보면서 술잔을 기울일 수 있는 ‘스카이라운지 횟집’ 콘셉트로 방향을 바꿨다”고 말했다. 권리금 1억7000만원, 월세 1000만원 정도로 저층부에 비해 저렴한 비용도 매력적이었다.

주변의 우려를 뒤로하고 시작한 가게는 결과적으론 성공을 거뒀다. 그는 “일매출이 최고 500만~600만원씩 찍을 때도 있다”며 “3~4분이 가맹점을 내달라며 찾아왔는데 다들 고층 매장을 원한다”고 했다.

서초동 J중개업소 대표는 “강남역에서 신논현역까지 이어지는 서초대로77길 일대는 1층 30평 미만 점포자리는 월세 2500만~3500만원 정도에 권리금은 기본적으로 수억원씩 한다”며 “창업자들 입장에선 눈여겨볼 사례”라고 설명했다.
4층 편의점. 이상섭 기자/babtong@heraldcorp.com
복층 편의점 전경. 이상섭 기자/babtong@heraldcorp.com

▶“돈 없으면 1층은 언감생심”=전통적으로 ‘1층 터줏대감’인 부동산중개업소들도 변화를 모색 중이다. 김종연(가명) 중개사의 사무실은 강서구 마곡지구 인근 상가건물 3층에 있다. 1층 55㎡짜리의 임대료(350만원) 대비 절반 정도만 낸다. 월세를 아낀 돈으로 인터넷과 모바일을 통한 영업을 강화했다. 모바일 부동산 중개앱과 주요 포털사이트에 매달 70~80만원 가량 광고비로 지출하고 블로그 등을 통해 온라인 상담을 제공하는 식이다.

그는 “이런 식으로 소위 ‘온라인 단골’을 많이 확보했다. 손에 쥐는 돈은 전보다 20% 정도 많아졌다”고 귀띔했다.

일각에선 개인이 감당하기엔 지나치게 치솟은 임대료가 낳은 ‘슬픈 현상’이라는 목소리도 있다. FR인베스트먼트에 따르면 올해 2월 기준 강남역, 명동 등 7대 주요상권의 1층 임대료는 평균 3671만원(전용 45~66㎡)이다. 이곳을 제외한 역세권 상권도 보통 400만원에 달한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한 전문가는 “장사하는 누구라도 이왕이면 ‘1층이면 다홍치마’다. 다만 혹독한 임대료를 견디지 못할 뿐”이라며 “결국은 큰 자본에 좋은 자리를 빼앗긴 사람들이 살아남으려는 몸부림”이라고 해석하기도 했다.

whywh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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