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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요광장]피해자가 준비했으므로 무죄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김영배 상임부회장
앙급지어(殃及池魚)라는 말이 있다. 성문에 불이 붙자 성 밖에 있는 연못의 물을 퍼서 불을 껐는데 연못의 물이 없어져 물고기들이 모두 말라 죽었다는 중국고사이다. 흔히들 이유 없이 억울하게 화를 당했지만 어디에도 하소연 할 수 없는 경우를 비유한 말이다. 아마 지난 4월 민주노총 파업으로 피해를 입은 기업들의 심정이 이와 같을 것이다.

민주노총은 ‘노동시장 구조개선’, ‘공무원연금 개선’, ‘세월호 진상규명 시행령 폐기’ 등을 주장하며 총파업을 감행했다. 전국적으로 16개 지역 2,800여개 사업장에서 27만여명이 파업에 참가했다고 한다.

단 하루의 파업으로도 기업들은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한 자동차 회사는 3,000대 이상의 생산차질과 약 580억 가량의 매출손실을 감내할 수밖에 없었다. 중소기업들도 수억에서 수십억원의 손실을 입었지만 어디하나 하소연 할 곳도 없는 상황이다.

상식적으로도 파업을 통해 노동조합이 얻고자 하는 것은 사용자가 결정할 수 있는 사항이어야 한다. 따라서 민주노총이 주장하는 정부정책 변경, 법 개정 논의 등은 처음부터 파업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개별 기업이 결정할 수 없는 문제들을 앞세운 파업에 기업들은 손해를 입게 되니 답답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더욱더 이해되지 않는 것은 이와 관련된 법원의 입장이다. 법원은 불법파업의 경우에도 ‘전격성’과 ‘손해의 막대성’이라는 요소를 충족시켜야 업무방해죄를 인정한다. 파업이 회사가 예측할 수 없는 시기에 전격적으로 이루어지고, 회사의 사업운영에 심대한 혼란이나 막대한 손해를 초래하는 등 사업계속에 관한 자유의사가 제압ㆍ혼란케 되는 경우에야 비로소 업무방해죄가 성립한다는 것이다.

‘전격적’이란 말은 번개같이 급작스럽게 들이치는 경우를 일컫는다. 회사가 예상할 수 없는 시기에 예고도 없이 급작스럽게 파업이 실시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오늘 당신 집에 침입하겠다”는 예고에 미리 대비를 하였다는 이유로 주거침입이나 절도죄가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이와 같이 예고된 파업의 경우 업무방해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논리는 이해할 수 없다. 죄는 그 자체의 모습과 본질로 판단되어야 한다. 범죄 행위가 있으면 그것으로 처벌해야지 피해자가 알았는지 몰랐는지 여부로 범죄 성립을 결정하는 것은 비상식적이다.

또한, 각 회사의 규모, 파업의 형태에 따라 손해의 정도도 다를 수밖에 없는데 막대한 손해라는 기준은 어떻게 판단할 것인지도 의문이다. 회사가 피해를 최대한 줄이는 조치를 취한다면 상대방은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는가? 사업에 막대한 손해를 입히지 않았기 때문에 용서된다는 것은 납득이 가지 않는다.

하지만 법원은 많은 사례에서 위와 같은 입장을 지켜가고 있다. 불법파업이 사라지지 않고, 속수무책으로 당한 기업들의 하소연이 끊이지 않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라고 한다.

노사관계는 ‘힘의 균형’을 통한 밀고 당기기라고도 말한다. 각자의 입장을 다투는 과정에서 서로 이해하고 양보하면서 타협점을 이끌어 내는 것이다. 노동조합이 불법적 행위를 하고도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는다면 건전한 노사문화의 정착은 먼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노동계는 또다시 노동시장 개혁에 반대하는 총파업을 예정하고 있다. 메르스 불황으로 허덕이는 기업들은 또다시 불법파업을 손 놓고 맞아야 할 형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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