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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슈퍼리치]대륙부호 만한전석⑩ ‘빚투성이’ 태양왕, 17조 날려도 멀쩡합니다(?)
- 50여일 전 자산 17조 날리고도 태연한(?) 대륙 ‘태양왕’ 리허쥔, 주가폭락 당일 재구성
- 대출용 주식담보 제공 위해 ‘공매도’ 정황 드러나
- 대출기관ㆍ리 회장 측 모두 부인하거나 무응답
- 기타 채권도 부실화 우려…믿는 건 정부뿐?




[헤럴드경제=슈퍼리치섹션 윤현종 기자ㆍ김성우 인턴기자]지난 5월 20일, 단 하룻 새 자산 절반 정도를 날려버린 한 중국 부자 소식에 세계가 들썩였습니다. 같은 날 홍콩증시에 상장된 하너지박막발전(Hanergy Thin Film Powerㆍ이하HTFP) 주가는 47%가량 떨어졌는데요. 그 여파로 이 부호의 주식자산 17조원(935억위안ㆍ150억달러)이 증발했습니다. 하루 전까지 그의 자산 추계치는 36조1900억원(1990억위안ㆍ320억2000만달러)에 달했습니다.

바로 HTFP 모회사인 하너지그룹 창업자 리허쥔(李河君ㆍ47)회장입니다. 그는 당시 그룹 지분 80%를 소유한 최대주주였습니다. 주가폭락 직전까지 각국 매체들은 그를 ‘태양왕’이라고 불렀습니다. HTFP는 시가총액 기준 세계 최대 태양광발전설비 업체였습니다.

지난 6월 17일 하너지그룹 본사에서 열린 한 행사에 참석한 리허쥔 회장

50여일이 지난 현재, 리 회장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잘 지내고 있습니다. 적어도 겉으론 말이죠. 얼마 전엔 대중에 공개된 회사관련 행사에도 ‘웃는 얼굴로’ 참석했습니다.

리 회장의 밝은 표정은 언제까지 이어질까요. 개인자산은 사실상 반토막이 났습니다. 회사 사정도 썩 좋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에겐 모종의 보루(?)가 있어보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롤러코스터를 탔던 태양왕의 부(富)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리허쥔은 누구인가

▶ 0.5∼1초 새 반토막 난 주가…대체 무슨 일=톰슨로이터 데이터 등을 토대로 5월20일 홍콩증시에서 거래된 HTFP의 주가상황을 어렴풋이나마 재연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0.5초를 조금 넘는 동안 이 회사 주식은 사실상 반쪽짜리가 됐습니다.

이날 오전10시 17분 23초, HTFP 거래창엔 이 회사 주식 42만6000주의 매도(팔자)주문이 몰려있었습니다. 가격은 6.8홍콩달러.

거의 동시에 매수(사자)세가 아래와 같이 들어왔습니다.

☞ 오전 10시 17분 23초 4:매수 주문가격 주당 6.69홍콩달러.

☞ 오전 10시 17분 23초 56:매수 주문가격 주당 6.1홍콩달러.

위 두 건으로 팔려나간 주식은 8000∼3만주였습니다.

이들 거래 직후 들어온 매수호가 중 최고액은 1주 당 3.45홍콩달러였습니다. 10시17분24초가 되기 전이었습니다. 0.5∼1초 사이 매수가격만 48%정도 빠진 것입니다.

매도호가도 100분의 몇 초 사이 6.8홍콩달러에서 4.5홍콩달러로 내려갔습니다.

약 23분이 지난 오전10시40분, 결국 홍콩증권거래소는 HTFP주식거래를 중단합니다. 당시 시장가는 3.91홍콩달러였습니다. 이는 전날 대비 47%하락한 상태였습니다. 이 회사의 시가총액 190억∼200억달러가 사라졌습니다. 리 회장의 지분가치도 같이 날아갔죠. 

리허쥔 회장과 ‘하너지박막발전(HTFP)’ 관련 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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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요.

간단히 보면 이런겁니다. 시장에서 팔자는 주문이 갑작스럽게, 그것도 대량으로 몰립니다. 마침 그 물건을 사려던 이들은 주춤합니다. 시장가가 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월스트리트저널(WSJ)도 증시 관계자들을 인용해 “HTFP의 경우 급작스런 대량 매도주문이 시장을 압도했다. 이 때문에 수많은 매수자들이 시장에서 발을 뺀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전문가들도 “반값 수준의 매수호가는 시장에 사자는 세력이 많지 않았다는 뜻”이라며 “잠재적으로 주가급락의 원인이 됐다”고 지적합니다.

일각에선 누군가 이 회사 주식 가격을 고의로 끌어내렸을 수 있다고 분석합니다. 이는 과거 HTFP 주가급등의 한 원인으로도 지목됐었는데요.

주가조작 사례를 연구하는 서방 전문가들은 “지난 2년 간 HTFP 주가가 조직적인 조작으로 급등했을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관련기사]  ‘2년에 18배’…中 최고갑부 회사의 주가폭등에 의혹?

▶시세차익 vs 빚 담보 마련…줄 잇는 의문=아시다시피 ‘HTFP사태’가 터진 건 5월20일입니다. 그런데 그 전후 사건들이 재미있습니다. 이는 리 회장 자산이 어쩌다 증발했는지를 일정부분 설명해줍니다.

홍콩증권거래소 공시에 따르면 5월 18일, 리 회장 측은 HTFP주식 7억9570만주를 공매도[숏(Short) 포지션]합니다. 이는 58억 홍콩달러(미화 7억4700만달러)규모인데요. 단순 계산하면 1주당 평균 7.28홍콩달러입니다.

통상 공매도는 주식 등 상품 가격의 하락장을 내다보고 시세차익을 얻는 방법 중 하나입니다. 손에 쥔 물건이 없지만 먼저 팔아 돈을 챙긴 뒤 값이 떨어졌을 때 물건을 사서 건네는 식이죠. 돈을 버는 쪽 입장에선 일종의 ‘시간차 매도→매수’인 셈입니다. 공교롭게도 리 회장의 공매도 이틀 뒤 HTFP주가는 폭락합니다.

과연 그는 시세차익을 위해 공매도를 했을까요. 

리허쥔 회장

답은 보류하겠습니다. 아직 많은 부분이 미스터리니까요.

다만 여기서 ‘숏 포지션’의 정의가 중요합니다. 리 회장의 HTFP가 속한 홍콩증시에서 숏 포지션은 단순 시세차익 전술만 뜻하는 게 아닙니다. 금융권 대출 담보로 주식을 넘기는 것도 숏 포지션으로 봅니다.

실제 리 회장이 숏 포지션을 한 그 날, 하너지그룹 계열 투자사로 영국령버진아일랜드(BVI)에 있는 ‘GL윈드팜 인베스트먼트’가 중국 화룽(華融)자산관리공사에서 2억달러를 빌리며 HTFP주식 7억9570만주를 담보로 제공했단 사실이 밝혀지는데요. 파이낸셜타임스(FT)는 BVI FSC(영국령 버진아일랜드 금융서비스위원회)가 발행한 하너지그룹 대출관련 서류를 인용해 이 소식을 전합니다.

결국 리 회장 측은 빚 담보를 마련하기 위해 증시에서 대량의 숏 포지션을 행사했단 의미가 됩니다.

그런데 FT 보도 5일 뒤인 5월 29일 화룽자산은 공식 성명을 내고 하너지 측의 담보제공 사실을 전면 부인합니다.

재미있는 건 그 하루 전인 5월 28일, 홍콩증권선물위원회(SFC)가 HTFP주가폭락 건 조사를 공식화 했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리 회장 쪽은 사실상 답이 없는 상태입니다. 참고로 그는 서방 등 해외언론 취재요청엔 거의 응하지 않고 있습니다. 오직 중국 현지매체 혹은 관영언론을 통해 ‘아무 이상 없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을 뿐이죠.

그렇다고 100% 밝혀진 건 없습니다. 그러나 윤곽이 드러나고 있는 게 한 가지 있습니다. 하너지의 사정이 그리 좋지 않다는 겁니다.

사진 = 동영상 캡처

‘HTFP 사태’ 직후 중국 관영 신화사가 관련 내용을 방영한 ‘진상(眞相)’이란 프로그램 동영상 캡처. 이 프로는 5월 28일 홍콩 SFC의 조사 공식화 전에 제작됐다. 여기에서 리 회장은 “(주가조작 관련 조사 소식은) 낭설일 뿐이다. 받은 적 없다”고 밝혔다.

28일 이후 신화사 측은 홍콩 SFC의 조사관련 팩트를 위 자막으로 추가했다. 자막엔 “(5월) 28일 홍콩SFC가 하너지그룹 조사를 이미 진행중이라고 밝혔습니다. SFC측은 자세한 조사내용을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사안을 계속 지켜볼 것입니다”라고 적혀있다.

▶ 늘어나는 빚, 탈출구는 정부 줄 잡기?=우선 리 회장의 회사는 빚 규모가 상당합니다.

FTㆍ톰슨로이터ㆍ블룸버그 등 분석에 따르면 하너지그룹은 그 전에도 여러차례 주식 담보로 자금을 댑니다. 2014년 이후 이번 사태 직전까지 여러 금융기관에 주식을 담보 제공한 것만 최소 4차례입니다. 담보 주식 가치는 최소 59억 홍콩달러입니다.

중요한 건 이번까지 총 5차례나 되는 하너지 측 주식담보 대출의 용처(用處)가 밝혀지지 않았단 점입니다. 조세피난처에 위치한 사실상 자기 소유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대규모 주식 담보를 맡기고 돈을 빌렸단 건 누가 봐도 석연찮은 점이죠.

게다가 리 회장 측이 담보로 제공한 만큼의 주식을 시장서 공매도한 것 또한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실제 작년 8월 14일, 하너지그룹의 투자사 ‘하너지 인베스트먼트’는 HTFP 주식 14억4000만주(당시 주가기준 17억홍콩달러 규모)를 담보로 신 비전(Sheen Vision)홀딩스에서 자금을 조달합니다. 홍콩거래소 공시에 따르면 리 회장 측은 같은 날 14억4000만주 규모의 숏 포지션을 행사합니다. 이 대출금이 어떻게 쓰였는진 불명확합니다.

그뿐 아닙니다.

6월 현재 하너지그룹 대출금 규모는 확인된 것만 8억2000만달러입니다. 현지 금융권은 하너지에 최소 61억달러 이상의 신용을 공여한 것으로 파악됩니다. 빚이나 신용을 내 준 곳은 정책금융기관ㆍ일반은행금리ㆍ금리 10%이상의 단기자금 대출기관(일명 ‘그림자금융’)ㆍ지방정부 등 11군데에 이릅니다.

빚을 냈다면 갚을 능력도 돼야 정상이겠죠. 하지만 글쎄요. 관영 차이나데일리는 6월 4일 “하너지 주가폭락의 ‘유탄’을 맞을 채권자는 누가 될까”라며 우려했습니다. 이 걱정은 현실이 될지도 모릅니다. 로이터 등은 지난달 19일 “6월로 예정됐던 중국 동북 랴오닝(遼寧)지역 진저우(錦州)은행의 홍콩증시 상장이 ‘강제로’ 연기됐다”고 전합니다. 홍콩증권거래소가 이 은행의 신용상태를 더 면밀히 조사하고 있기 때문인데요. 진저우 은행은 하너지그룹에 전체 신용한도의 10%인 12억달러(80억위안)을 공여한 상황입니다. 
하너지그룹 대출, 실적 등 현황

경영상 악재도 있습니다. 같은 달 15일, HTFP와 하너지그룹이 맺은 총5억8500만달러 규모 설비생산 및 서비스 관련 계약이 취소된 겁니다. 이는 5월5일 발표됐었지만 없던 일이 됐습니다. 매출 상당부분을 자회사에 의존하던 HTFP 입장에선 타격인 셈이죠.

계약이 취소된 원인에 대해 회사측은 무응답입니다. 다만 “여러차례 협의끝에 결정했다”며 “그룹 경영에 심대한 영향을 끼치는 건 아니다”라고 강조합니다.

하지만 리 회장에겐 믿는 구석이 있어보입니다. 바로 정부입니다.

최근 중국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에 참석한 리허쥔 회장

현재 그는 전국공상연합회 부주석ㆍ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위원 등을 맡고 있습니다. 모두 중국 공산당과 직ㆍ간접적으로 관련된 단체죠. 2000년대 초 그가 경제전략 등을 짜는 국무원 산하 ‘국가발전개혁위원회’를 설득해 중국 서남부의 발전소 건설을 밀어부친 일화는 유명합니다.

실제 지난달 17일 하너지그룹 본사에서 열린 ‘세계 사막화 방지일’행사서도 리 회장은 정부에 간접적인 러브콜을 보냈는데요. 그는 “하너지는 세계 환경보호를 위해 노력 중이다. 이 프로젝트는 정부 차원의 ‘일대일로(一帶一路ㆍ시진핑 정부의 신(新)실크로드 청사진)’를 철저히 수행하는데도 일조할 것”이라며 향후 5년 간 총 10억위안을 기부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중앙정부의 비호(?)아래 리 회장이 앞으로도 계속 웃을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6일 현재 포브스가 집계한 그의 자산은 194억달러입니다. 여전히 한화 22조에 이르는 자산을 손에 쥔 대륙 3위 부호입니다.

[관련기사] 대륙부호 만한전석⑨ ‘자수성가 천국’의 민낯…청년 ‘흙수저’는 없다?

factis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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