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슈퍼리치] 창업 1세대 88세↑…홍콩서도 경영권 승계는 ‘골칫거리’
[헤럴드 경제=슈퍼리치섹션 윤현종 기자] 홍콩 ‘빌리어네어(순자산 10억달러ㆍ1조1700억원 이상 보유자) 클럽’ 터줏대감 격인 창업 1세대 부자 5명의 평균연령은 88.4세다. 이들은 포브스ㆍ블룸버그ㆍ후룬(胡潤)연구소 등이 집계한 억만장자 순위에서 나란히 홍콩 1∼5위에 올라있다. 하지만 이미 초고령인 그들에게 부자 서열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아마 더 큰 고민으로 머리를 싸맬 가능성이 높다. 바로 가업승계다. 이유가 있다. 창업주 대부분이 ‘황제’처럼 기업의 모든 걸 책임져온 탓이다.

실제 한 재벌가는 심각한 경영권 다툼을 겪으며 여론 비판을 면치 못했다. 특히 골육상쟁 과정에서 관가(官家)와 연루된 비리 사실이 드러나 곤욕을 치룬 집안도 있다. 반대로 막대한 자산을 자식들 간 큰 문제없이 넘겨주는 집안도 있긴 하다. 판이한 결과가 나온 데엔 그럴만 한 맥락이 있었다.


부패스캔들로 막 내린 ‘부동산 형제의 난’= 지난해 12월 23일, 홍콩 법원은 현지 부동산 재벌 순흥카이(新鴻基)그룹 토마스 쿽(63) 당시 회장에게 징역 5년형을 선고한다. 벌금 50만 홍콩달러(7500여만원)도 더해졌다. 같은 해 7월 그는 뇌물수수 관련 조례 위반으로 현지 부패단속기관 염정공서(廉政公署ㆍICAC)에 의해 기소됐다. 지난 2005∼2007년 라파엘 후이(許仕仁ㆍ67)당시 홍콩 정무사장(총리급)에 뇌물을 주고 토지매각정보를 받은 혐의였다.

쿽 회장은 홍콩 부동산업계 거물 순흥카이 가(家) 차남이다. 아버지 고 쿽탁생(郭得生)이 근 30년 간 일군 이 회사는 홍콩 내에만 최소 460만㎡(구 139만평)의 토지를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현지 부동산 황제로 불리는 리카싱(87)회장의 CKH홀딩스도 넘어선단 평가다. 부친 회사를 이끌던 토마스 쿽 자신도 기소 몇 달 전(작년 1월 기준)까진 개인 자산 10조1900억원(87억달러)을 쥐고 있었다. 홍콩 10대 부자에 속했다.

그의 비리는 어떻게 밝혀졌을까. 물론 ICAC의 공이 크다. 하지만 ’조력자’가 있었단 분석이다. 가족의 밀고(?)였다. 당시 홍콩 매체 명보(明報)는 현지 부동산 개발업계 관계자 등을 인용, 토마스 회장의 형이자 순흥카이 창업주 장남 월터 쿽(65)이 동생 비리가 담긴 자료를 ICAC에 제공한 정황을 보도한다.

그룹 경영권을 둘러싼 형제간 다툼은 이번 스캔들이 세상에 드러난 기폭제가 됐다. 1990년 사망한 창업주는 아들 셋을 뒀다. 이후 장남 월터 쿽이 회장직을 물려받는다. 그러나 2008년 당시 부회장을 맡던 동생 토마스 쿽과 막내 레이먼드(62) 쿽 등은 큰 형을 쫓아내고 그룹을 장악한다. 이렇게 시작된 형제 간 불화는 수년 간 이어졌다.


문제의 발단은 형의 여자친구? = 그렇다면 동생들은 왜 형을 몰아냈을까. 물론 경영권을 갖는 게 주 목적이었다. 그러나 일각에선 아버지가 일군 회사를 지키려는 행동이었단 평가도 내놓는다. 바로 월터 쿽이 순흥카이 회장 시절 기업 경영에 관여했던 한 인물 때문이다.

2013년 12월 홍콩 매체들과 인민망(人民網) 등 중국대륙 주요언론은 “순흥카이 3형제 관계가 틀어진 원인을 두고 시장의 풍문이 끊이지 않는다”며 “월터 쿽과 전 여자친구 탕진신(唐錦馨ㆍ당시 61세)의 관계가 (불화의) 가장 큰 이유였단 설이 유력하다”고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홍콩 기업가 집안 딸로 알려진 탕씨는 월터 쿽의 젊은 시절 연인이었다. 그는 월터 쿽이 회장을 맡던 시기 순흥카이그룹 이사회에 들어와 회사 경영 전반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이는 동생들의 불만을 샀다. 심지어 3형제 어머니이자 창업주 미망인 쾅슈힝(鄺肖卿ㆍ86)의 심기도 건드렸다고 매체들은 전했다. 그래서 일까. 그룹 집행이사 겸 최대주주기도 했던 그는 장남을 단속하기 시작한다.

실제 같은 해 11월 29일,순흥카이 측은 홍콩증권거래소 공시를 통해 쾅 여사의 보유지분 43.43% 중 12.64%를 둘째아들(토마스)과 막내(레이먼드)에게 고루 분배한다고 밝혔다. 이 때 둘의 지분은 16%대로 올랐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큰아들은 빠졌다. 이미 경영권을 빼앗긴 상태였던 월터 쿽은 이 무렵 자산도 크게 줄었다.

총 33조원. 282억달러(후룬연구소 집계 기준)를 거머쥔 네 모녀 간 ‘가정불화’는 결국 큰 아들 때문에 둘째가 감옥에 가는 모양새로 일단락됐다. 현재 그룹 경영은 막내가 맡고 있다. 여전히 오너일가가 회사를 장악하고 있다. 장남과 어머니의 관계도 좋아진 것으로 보인다. 월터 쿽은 지난 1월 집안의 결정으로 뺏겼던 회사지분을 돌려받아 자산이 50억달러 늘었다.

그러나 형제의 상처가 아물긴 힘들어 보인다. 월터 쿽이 일선에 복귀하는 일도 당분간은 없을 전망이다. 그는 토마스 쿽이 징역형을 받은 직후 홍콩경제일보 등과 인터뷰에서 “매우 비통하지만 사건의 시시비비는 신께서 판단하실 것”이라며 “회사는 레이먼드(셋째)가 잘 경영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리카싱, 두 아들 경영능력 ‘장기평가’= 순흥카이 일가와 달리 적어도 겉보기엔 큰 잡음 없이 승계작업을 진행 중인 재벌도 있다. 자산 41조원(353억달러)을 지닌 홍콩 최대 부호 리카싱 CKH홀딩스 회장이다. 그는 20여년 전부터 자식들의 경영활동을 지켜봤다.

먼저 첫째 아들 빅터 리(51)입니다. 그가 아버지의 ‘눈’에 들며 두각을 나타낸 건 1996년께로 알려졌다. 당시 빅터는 리 회장의 회사 중 하나였던 청쿵인프라스트럭처(長江基建ㆍ이하 청쿵 인프라)를 홍콩증시에 상장하는 일을 주도했다. 이 회사는 공모주 청약경쟁률 25대1을 기록하며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한다. 리 회장은 이를 두고 “(이같은 성과가) 만약 내 아들의 것이 아니라면 난 100점을 주고싶다”고 말했다. 가족 칭찬엔 상대적으로 인색했던 그의 교육철학(?)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빅터는 청쿵 인프라를 실질적으로 책임지고 있다. 성장세는 가파르다. 2000년부터 지금까지 이 회사는 2000억 홍콩달러(30조2400억원)를 들여 영국ㆍ캐나다ㆍ호주의 에너지분야 11개 기업을 사들이거나 투자했다.

둘째 아들 리처드 리(49)는 미디어ㆍ통신분야에서 사실상 스스로 성장했다. 1991년, 그는 아버지 명령으로 미국(스탠포드대학)서 돌아와 4억달러를 투자해 위성방송 채널‘스타TV(Star TV)’를 창업한다. 2년 뒤 그는 글로벌 언론재벌인 루퍼트 머독에게 이 방송국을 9억5000만달러에 매각하는 수완을 보였다.

1993년 그는 스스로 마련한 종잣돈 10억달러로 퍼시픽센츄리그룹(PCG)을 차린다. 이 회사는 홍콩 최대통신회사 PCCW의 전신이 됐다. 지난해 1월 현재 PCCW의 시가총액은 47조원에 달한다. 영업이익률도 일본 NTT도코모에 이어 동아시아 주요 통신사 2위 수준으로 높았다.

아버지의 별명 ‘슈퍼맨’에서 딴 별명(작은 슈퍼맨)을 지닌 리처드의 순자산은 1일 현재 48억달러로 집계됐다. 포브스가 매긴 중화권 부호 중 63위 수준이다.

자산 분배 사실상 마무리 한 리카싱제국=일찍부터 자식들 활약상을 지켜봐서일까. 리 회장은 이미 10년 전 가업 승계 방안을 언론에 밝히기도 했다. 

그는 2005년 ‘홍콩상보(香港商報)’와 베이징에서 한 인터뷰를 통해 “홍콩증시에 상장한 기업은 큰아들에게 맡길 것이다”라고 밝혔다.

7년 뒤 이 선언은 공식화 한다. 2012년 5월 25일 리 회장은 빅터 리에게 그룹 지분과 경영 승계를 밝혔다. 이에 따라 빅터 리는 부동산ㆍ에너지ㆍ통신 등 20여개 사업분야를 맡게 됐다. 당시 그의 개인자산도 포브스 기준 29조9000억원(255억달러)에 달했다.

올 들어 리 회장은 부동산과 비(非)부동산 영역으로 사업을 재편했다. 역시 빅터를 ‘부회장’자리에 고정했다. 은퇴 후 곧바로 회사를 큰 아들에게 맡긴다는 포석이다.

대신 그는 둘째(리처드 리)에겐 스스로 일군 사업을 더 넓히도록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첫째에게 회사를 남긴다면, 둘째에겐 현금을 주겠단 뜻이다. 리 회장은 승계방안 공식화 당시 “리처드가 추진하는 기업인수의 자금을 댈 것”이라며 “둘째는 자신의 관심분야 사업체 몇 개를 이미 갖고 있어 (두 아들 간) 사업 갈등은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세계 50여개 나라에서 27만명을 고용하고 있는 리카싱의 상업제국(帝國). 다른 현지 재벌가와 달리 승계에 ‘연착륙’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factism@heraldcorp.comfactism@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