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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슈퍼리치]여자는 그저 애교?…‘낡은 관념’ 부수는 日의 여성 기업가들
[헤럴드경제=문재연 기자] 일본 속담에 ‘마누라와 다다미는 새것일수록 좋다(女房と 疊は 新しいほど良い)’는 말이 있다. 여성을 그저 남자들의 부속품으로만 생각하는 ‘옛 일본의 낡은 사고’가 담긴 표현이다.

알려진 바 데로 일본은 OECD 국가 중 여성의 고위직 진출을 막는 ‘유리장벽’ 지수가 가장 심한 나라다. 지난 5월 OECD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일본은 34개 국가 중 26위를 차지했다.(사실 한국은 27위다) ‘남자는 배짱, 여자는 애교(男は 度胸、 女は 愛嬌)’라는 또다른 속담은, 일본의 ‘여성인력에 대한 인식’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최근 새 바람이 불고 있다. 혁신과 여성성으로 무장한 새로운 일본 기업가들이 만드는 ‘날갯짓’ 때문이다. 이들의 활약으로 단단하던 일본의 유리장벽이 깨어지는 추세다. 


일본 여성 CEO 1세대...‘여성형 리더쉽’을 선보인 쿠노 사치코와 호리에 아이리

쿠노 사치코(久能祐子·58)는 녹내장을 치료하는 점액 개발로 저명한 일본의 1세대 여성 CEO다. 그는 일본판 ‘퀴리부인’이라 할 수 있다. 지방산이 분해하면서 생긴 물질이 세포 복구에 도움을 준다는 새로운 사실을 정립한 그는 올해 포브스지가 선정한 ‘자력으로 미국에서 성공한 여성 50인’ 중 한 명이기도 하다. 그는 남편과 공동 창립한 스캄포(Sucampo) 제약회사의 대표이사이자 남편과 자기 이름을 따서 설립한 S&R 재단의 이사장이다. 

쿠노는 ‘부채 상환 시나리오’를 통해 투자 유치를 위한 새로운 PR 모델을 업계에 제시하기도 했다. 독일 뮌헨 공과대학 박사과정 중 현 남편인 우에노 타카시(上野隆司) 박사와 지방산에 대한 새로운 이론을 정립하면서 쿠노는 함께 녹내장 및 고혈압 치료제인 레스큐라 점안액을 세계 최초로 발매했다.
 
이후 스캄포 제약회사 설립을 위해 그가 주요 금융기관에 제출한 것은 사업실적 전망에 대한 포트폴리오가 아닌 ‘부채 상환 시나리오’였다. 사업의 전망도 중요하지만 금융기관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부채 상환’ 여부인 것을 간파한 것이다. 투자자의 요구를 정확하게 파악한 그는 부채상환을 위한 시나리오를 다양하게 구성해 투자자들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스캄포 제약회사 설립 이후 다양한 약품 개발에 성공한 쿠노의 현 자산은 약 407억엔에 달한다.

 
‘여성 창업 연구소(Women’s Start up Lab)’ 대표이자 실리콘밸리가 주목한 호리에 아이리(堀江 愛利·43)는 ‘여성’이라는 정체성을 이용해 새로운 시장을 개척했다. 그는 “여자는 무조건 분홍색 가방”이라 외치던 어머니의 말씀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여성을 위한 인재육성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이전에는 자신의 유학경험을 살려 2011년 제 2외국어 교육 플랫폼인 ‘Mochigo’를 만들고 2013년 여성 창업 연구소를 설립했다. 

그는 재클린 바우가르텐이 설립한 공유형 부동산 임대포털사이트인 ‘Cruzin.com’ 창안을 돕기도 했다. 특히, 강의식 교육보다는 고민을 공유하고 여성들끼리 구축한 네트워크를 통해 자신들만의 시장을 구축하는 ‘공유형 커뮤니케이션’을 토대로 미국 실리콘밸리에 진출한 여성 엔지니어들의 창업에 이바지하고 있다고 CNN은 평가한다. 미국 CNN은 지난해 호리에를 ‘여성의 미래 10인’에 선정했다.

‘발상의 전환’과 ‘IT’를 활용한 2세대 日 여성 CEO... 


히로에와 쿠노가 여성형 리더십을 발휘해 유리장벽을 파괴했다면 고지마 유카(小島 由香·28)와 다카하시 소코(高橋祥子·26)는 과감한 ‘발상의 전환’으로 21세기 시장을 주도하는 IT산업에서 약진한 신세대 CEO이다.

고지마는 세계 최초로 시선추적기능을 갖춘 헤드 다운트 디스플레이(HMD) 기기이자 VR 헤드셋을 선보인 ‘포브(FOVE)’의 대표이사다. 그는 최근 삼성전자와 제휴관계를 맺어 삼성 기어 VR(가상현실)기기 개발에 일조하고 있다. 다카하시는 타액이나 세포조직, 또는 혈액을 담은 전자분석 키트로 자신이 가질 수 있는 질병과 체질, 조상까지 분석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제네퀘스트(Genequest)’사의 대표이사다.
 
자신의 타액을 전자키트에 연구소에 보내면 메일이나 문자를 통해 자신의 질병뿐만 아니라 발병 가능한 질병에서 조상들의 건강정보까지 한 눈에 볼 수 있다. 키트의 정가는 4만 9800엔으로 고가이지만, 약 100만 명의 일본 고령층의 고객을 확보하고 있다. 


이들에게 ‘유리장벽’은 없었다. 그들에게 ‘여성’과 ‘남성’이란 경계는 무의미해진 지 오래였다. 다만 ‘어떻게’ 자신의 궁금증을 풀 수 있을까가 핵심이었다. 고지마는 ‘생생하게 게임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가상 캐릭터와 섬세한 커뮤니케이션을 나눌 수는 없을까’는 질문을 통해 게임패드 대체한 안구 추적형 VR기기를 개발했다. 

다카하시는 자신이 진행한 연구의 결과물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다는 호기심에 그는 사업에 뛰어들었다. 자신이 ‘직접’ 형성한 네트워크의 쾌감을 느낀 그는 사람들도 자신의 체질과 병에 대해 ‘직접’ 확인하고 싶겠다는 생각이 들어 자가진단 형 전자키트 개발에 매진하게 됐다.

1세대와 2 세대 여성 CEO들의 연결고리, ‘창조적 파괴’와 ‘적극적 커뮤니케이션’ = 남녀차별이 심하기로 유명한 일본에서 이들의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적극적인 커뮤니케이션’과 ‘창조적 파괴’에 있었다. 쿠노와 호리에, 고지마와 다카하시는 ‘여성’이라는 정체성이 장벽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사업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 다양한 사람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투자자들의 요구가 무엇인지 철저히 분석하면서 그들 특유의 ‘관계중심형 소통방식’을 통해 막대한 투자금액을 유치할 수 있었다.
 
여성이 사업을 하기는 어렵다는 선입견, 연구원이 사업을 할 수 없다는 선입견, 게임은 게임패드를 통해 할 수 있다는 선입견, 그리고 전문 의사를 만나 직접 진찰을 받아야 한다는 선입견을 탈피해 궁극적으로는 ‘유리장벽’이라는 편견을 파괴했다.

munja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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