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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슈퍼리치]내일은 슈퍼리치(21)- “평범한 재벌딸은 재미없어”…‘할리우드 이단아’ 메건 엘리슨
[헤럴드경제=슈퍼리치섹션 김현일 기자] “왜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는 12%밖에 안 됩니까? 왜 여성 영화제작자가 만든 영화는 고작 7%밖엔 안 되죠?”

올 5월 열린 제68회 칸 영화제. 케어링(Kering) 그룹 창업자 프랑수아 피노는 작년 통계를 근거로 남성 지배적인 영화계 현실을 꼬집었다. 케어링 그룹은 구찌ㆍ보테가 베네타ㆍ입생 로랑 등 럭셔리 브랜드를 보유한 세계 3대 명품기업이다. 이번 영화제 기간 중엔 영화산업 발전에 기여한 여성의 업적을 기리는 ‘위민 인 모션(Women in Motion)’ 캠페인을 진행했다.

메건 엘리슨 안나푸르나 픽처스 창업자

케어링그룹과 칸 영화제 측은 캠페인 발족을 기념해 두 명의 여성 영화인에게 상을 수여했다. 한 명은 아카데미상 2회 수상자이자 사회운동가인 미국 배우 제인 폰다였고, 다른 한 명은 영화제작자 메건 엘리슨(Megan Ellison)이었다.

1986년생인 메건은 겨우 29살의 나이에 여든이 가까운 전설의 여배우와 나란히 시상대에 올랐다. 그만큼 메건은 남성성 강한 영화계에서 최근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영화인으로 평가된다. 제작자로서도 상당한 실력을 발휘하며 할리우드에서 주목받고 있다.

‘제로 다크 서티’부터 ‘터미네이터’까지 화제의 중심에=그의 이름은 다소 낯설지만 메건이 제작한 영화제목을 들으면 최근 영화계에서 메건이 점하고 있는 위치를 단번에 알 수 있다. 빈 라덴 사살 작전을 다룬 ‘제로 다크 서티’(2012)와 ‘아메리칸 허슬’(2013), ‘그녀’(2013) 그리고 ‘폭스캐처’(2014)까지 모두 메건이 세운 안나푸르나 픽처스(Annapurna Picturesㆍ2011년 설립)가 공동 제작했다. 

박스오피스 모조에 따르면, ‘아메리칸 허슬’은 전 세계에서 총 2억5000만 달러(한화 약 3000억원)의 수입을 올려 안나푸르나 픽쳐스의 최고 흥행작으로 기록됐다. ‘아메리칸 허슬’과 ‘그녀’는 2014년 아카데미 최우수작품상 후보에 함께 오르기도 했다. 이로써 메건은 두 작품을 동시에 작품상 후보에 올린 첫 여성 제작자가 됐다.

지난 6월, 터미네이터 : 제니시스 시사회 후 파티에 참석한 메건 엘리슨과 주연배우 에밀리아 클라크(오른쪽).

최근 개봉한 ‘터미네이터 : 제니시스’ 제작자 명단에도 그의 이름이 올라 있다. 메건은 2011년 2000만달러(최소 추정치)에 속편 제작권을 따내며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부활을 알렸다. 하지만 독립영화 제작에 집중하겠다며 투자를 중단했고, 대신 그의 오빠 데이비드 엘리슨이 제작에 나섰다.(데이비드 역시 ‘지.아이.조 2’(2013), ‘월드 워 Z’(2013), ‘미션 임파서블 : 로그네이션’(2015) 등 다수의 영화를 제작한 프로듀서다.)

이처럼 짧은 경력에도 불구하고 메건은 예술성과 대중성을 모두 갖춘 작품들을 잇달아 기획ㆍ제작하며 그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 기업가 정신 지닌 ‘괴짜 제작자’=메건은 스포츠카 애스턴 마틴과 오토바이를 즐겨 몬다. 종종 손에 카멜 담배를 쥐고 있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메이크업을 하는 일은 드물다. 영화제 레드카펫을 밟을 때에도 화려한 드레스 대신 늘 검정 턱시도 차림으로 등장한다.

메건은 그 실력만큼이나 고집스럽고 괴짜같은 성격 때문에 호불호가 엇갈리기도 한다. 언론 인터뷰에 잘 응하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작년 11월, 영화 제작사 소니의 내부망이 해킹되면서 유출된 e메일엔 메건에 대한 조롱이 담겨 있었다. 제작자 스콧 루딘은 메건을 가리키며 “28세 미치광이 조울증 환자”라고 언급했다. 메건은 곧바로 트위터를 통해 “나는 늘 내가 남보다 괴팍하다고 생각해왔다”고 응수했다.

하지만 그에겐 ‘실리콘밸리 스타일 영화의 선두주자’라는 평가도 뒤따른다. 할리우드의 메이저 제작사들이 고수해온 기존 흥행공식을 좇는 대신 실패 가능성이 높아도 위험을 감수하고 전위적인 영화제작에 도전하는 것을 실리콘밸리 스타일이라고 부른다.

작년 영화 폭스캐처로 제67회 칸 영화제에 참석한 메건 엘리슨(오른쪽에서 두번째).

메건은 흥행을 의식하지 않고 진지하면서 때론 인습타파적인 영화에 거리낌없이 투자해왔다. 신흥 종교 ‘사이언톨로지’를 다룬 ‘더 마스터’(2013)가 제작사 유니버설로부터 투자를 거절당했을 때에도 메건이 구원투수로 나서 4000만달러를 지원했다. 왕가위 감독의 ‘일대종사’에도 자신의 돈 2500만달러를 투자하는 등 메건의 ‘영화보는 눈’은 틀에 얽매어 있지 않다.

그가 제작한 독립영화들은 비평가로부터 극찬을 받으며 각종 영화제에서 상을 휩쓸었지만 흥행에선 실패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까지 독립영화 제작자들 중에서 메건처럼 단기간에 여러 편의 인상적인 작품을 제작한 이는 없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메건의 결단 덕분에 미국 독립영화의 기반이 넓어지고 ‘아웃사이더’들이 좋은 작품을 내놓을 수 있었다는 호평도 뒤따른다. 마치 IT 창업자들처럼 도전적인 기업가 정신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 억만장자 아버지=메건의 ‘기업가 기질’은 어쩌면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았는지도 모른다. 메건의 아버지는 오라클 창업자이자 세계 5위부호 래리 엘리슨(Larry Ellison)이다. 소프트웨어 사업으로 자수성가해 현재 496억달러(약 57조6600억원)의 자산을 쥐고 있다.

래리 엘리슨은 세번째 부인과 결혼해 데이비드와 메건을 낳았다. 하지만 메건이 생후 4개월도 되기 전에 별거한 래리는 결국 딸의 첫돌 하루 전에 이혼했다. 이후 래리는 자식들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려 애썼다. 메건이 아버지를 ‘미워한다’는 얘기도 있지만 작년 아카데미 시상식에 부녀는 나란히 모습을 드러냈다.
 
아버지 래리의 옆엔 딸 뻘되는 새 여자친구가, 메건 옆엔 동성애인이 함께 자리해 플래시 세례를 받았다.(메건은 레즈비언이다.) 메건은 2011년 25번째 생일 때 아버지로부터 2억달러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현재 자산은 1억달러로 추정된다.

독특한 가족.2014년 아카데미 시상식장에 참석한 엘리슨 부녀. 메건의 애인, 메건 엘리슨, 래리 엘리슨, 래리의 여자친구(왼쪽부터)

이미 할리우드의 영화 제작자 중엔 억만장자가 된 이들이 적지 않다. ‘귀여운 여인’과 ‘노예12년’, ‘나를 찾아줘’를 제작한 아논 밀천(Arnon Milchanㆍ자산 51억달러)과 ‘피라냐’, ‘로빈후드’를 기획한 라이언 카바노(Ryan Kavanaughㆍ10억달러) 등이 그 예다. 

하지만 아직 여성 제작자는 전무하다. 최근 ‘터미네이터’ 등 대중적인 작품들로 투자 범위를 넓혀가고 있는 메건의 행보에 영화계가 주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게다가 불과 29살 밖에 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메건이 앞으로 내놓을 차기작에도 여전히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 메건 엘리슨이 걸어온 길
1986년 미국 캘리포니아 출생 → 2010년 영화 ‘트루 그릿’ 제작 → 2013년 LA비평가협회 신인상 → 2014년 2월, 여성 제작자 최초로 아카데미 최우수작품상 두 편 노미네이트(영화 ‘아메리칸 허슬’과 ‘그녀’) → 2014년 10월, 포춘 ‘세계에서 영향력 있는 40세 이하 40인’에 선정

* 주요 현황
1억달러(개인 자산)
2억5000만달러(영화 ‘아메리칸 허슬’ 수입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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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z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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