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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정복 헛된 꿈…왕실사상은 ‘八紘一宇〈세계를 지배한다〉’
토요토미히데요시(豊臣秀吉) 이후 일본의 팽창주의자들은 끊임없이 한반도를 통한 중국 대륙 진출기회를 노려왔다. 메이지유신으로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은 청일전쟁(1894~1895년)으로 그 꿈의 첫 발을 내딛는다. 이후 일본의 젊은 이들을 전장으로 내몰면서 내세운 게 ‘팔굉일우(八紘一宇)’다.

이는 서양세력의 동양 진출에 맞서서 미개한 조선과 중국을 개화해 동양을 지킬 것은 일본 밖에 없다는 호소카와 유키치의 ‘탈아론(脫亞論)’에서 비롯됐고, 이후 대동아공영권(大東共) 논리로 발전한다.
팔굉일우 기념비


여기서 일왕은 중요한 선동 도구로 활용된다.

‘팔굉일우’란 일본의 첫 ‘천황’인 진무천황(神武天皇)이 주창한 건국정신으로 ‘세계정복’의 의미를 담고 있다. 1872년(메이지 5년), 메이지 정부는 태정관 포고 제 342호를 통해 진무천황의 즉위를 일본서기 원년으로 정하고 팔굉일우를 건국이념으로 두었다. 1889년 메이지헌법의 제1조도 ‘대일본제국은 만세일계인 천황이 통치한다’이다. 1940년 히로히토 일왕은 기본국책요강을 발표해서 팔굉일우를 국책사업으로 삼는다.

메이지 정권은 지방세력인 다이묘(大名)들의 자치체제였던 일본을 처음으로 중앙집권국가로 바꾼다. 이른바 폐번치현(藩置)이다. 하지만 도쿠가와(德川) 막부를 무어뜨리고 메이지유신을 이룬 사쓰마 번 (지금의 가고시마 현)과 조슈 번 (지금의 야마구치 현)은 지방세력일 뿐이었다. 비록 가장 현대화된 무력을 보유하고 있는 탓에 주도권을 잡을 수 있었지만, 완전한 중앙집권을 위해서는 구심점이 필요했다. 일왕은 가장 효과적인 구심점이었다.


문재연 기자/munja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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