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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 칼럼 - 홍길용] 광복 70주년, 망국의 원인부터 반성하자
“인민의 생명도, 재산도 지켜주지 못하고, 독립국가의 자존심도 지켜주지 않는 나라는 오히려 망해 버리는 것이 인민을 구제하는 길이다”

일본 1만 엔(円) 지폐의 주인공인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 1835~1901년)가 구한말 조선(朝鮮)을 평가한 말이다. 메이지유신(明治維新)으로 봉건적 막부(幕府)시대를 종식시킨 혁명사상가가 요시다 쇼인(吉田松陰)이라면, 일본의 개화와 근대화를 이끈 정신적 지주는 유키치다. 그는 당시로서는 드물게 미국과 유럽을 직접 둘러봤고, 당시 서세동점(西勢東漸, 서양이 세력을 차차 동쪽으로 넓힘)의 시대흐름을 몸으로 읽었다. 그는 당시 조선과 중국이 이 같은 시대조류를 파악하지 못하고 개혁과 개방, 근대화에 성공하지 못한다면 일본이 이들을 병합해 서양으로부터 동양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리 입장에서 식민지배의 논리를 제공한 유키치를 곱게 볼 수 없다. 그런데 냉정히 보면 유키치나 당시 일본의 지식층에게 조선은 그렇게 보일만도 했다.

당시 조선은 오랜 세도정치의 착취로 백성들의 삶은 피폐해졌다. 수구와 개화간 갈등으로 포장된 대원군 이하응과 고종비(妃) 민자영의 대립은 사실 썩은 왕실과 또다른 세도정치를 추구한 민씨 가문간 권력다툼에 다름 아니었다. 이들은 권력만 추구했을 뿐 민생을 개선하고, 부국강병하는 정치의 본질에는 소홀했다.

심지어 이씨 왕족들과 민씨 세력 등 봉건권력들은 임오군란, 갑신정변, 동학혁명 등 내부 개혁세력을 진압하거나 권력쟁탈전을 하는 데 외국군대까지 끌어들였다. 권력을 지키지 위해 자국 국민들에게 외세의 총칼까지 동원한 셈이다. 수도 한 가운데 외국군이 주둔하는 슬픈역사도 이때부터 시작됐다.

광복 70주년이다. 독립투사들의 헌신을 폄하할 생각은 없지만, 솔직히 광복은 미국의 힘이 컸다. 일본이 미국과 태평양전쟁을 벌이지 않았다면, 우리 힘만으로 일본을 무너뜨렸을까? 일본이 1차 대전 때처럼 영국, 미국과 동맹을 맺었다면, 그리고 미국이 일본을 동아시아 반공전선의 최일선으로 삼았다면 지금 우리는 어떻게 됐을까? 미국이 원자폭탄 투하 대신 ‘플랜B’를 선택해 소련과 연합, 일본 본토 상륙작전에 나섰더라면 아마 한반도 전체가 소련에 의해 공산화됐을 지도 모른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생각만해도 끔찍하다.

지금 대한민국의 정치 권력을 보면 구한말 왕실과 민씨의 다툼이 떠오른다. 뚜렷한 방향 없이 겉도는 외교도 120여년전을 떠올리기 충분하다. 해이해지고 허점투성이인 우리 군(軍)의 모습에서는 주한미군이 필요할 수 밖에 없는 슬픔을 느낀다. 가계부채와 청년실업, 저출산ㆍ고령화 등으로 멍드는 가계를 보면 19세기 말 찌든 백성의 삶이, 날로 더해가는 양극화를 보면 일부 지주와 세도가들만 배불렀던 당시가 상상된다. 단군 이래 가장 눈부신 발전을 이룬 지난 50년은 오르막이었지만, 앞으로의 50년은 내리막일 확률이 더 높다는 우려가 많다.

일본의 사과도 필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우리 자신이다. 이스라엘에는 무릎 꿇는 독일이 그리스에게는 냉정하다. 미국과 중국에 고개를 숙이는 일본이지만 우리에게는 뻣뻣하다. 우리가 약해서다. 광복절은 축하와 함께 반드시 반성도 따라야 하는 날이다. 

kyh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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