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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금을 만나는 자리서도 졸았던 신료들
조선 시대 임금과 신료들이 만나는 자리로는 임금과 신료들이 함께 공부하는 경연(經筵), 의정부 당상관과 대간, 홍문관 관원들과 만나는 차대(次對), 각 관서의 실무 관원들과 만나는 윤대(輪對) 등이 있었다. 입시 자리에서 신료들은 마음대로 얼굴을 들고 임금을 바라보거나, 웃거나, 사적인 이야기를 나누어서는 안 되었지만 이런 자리에서도 격례를 어긴 일들이 많이 있었다.

1727년(영조 3) 12월 1일, 살인을 저지른 죄인에 대해 조사한 문안을 심리하기 위해 대소 신료 30여 명이 창덕궁 희정당에 입시하였다. 심리를 진행하는 중에 영의정 이광좌가 신료들의 자리가 텅빈 것을 보고 영조에게 꾸짖을 것을 아뢰었다. 


이광좌:연석이 지엄하다 보니 이전부터 입시할 때에는 연로한 중신이나 재상이라도, 대소변이 급할지라도 감히 마음대로 출입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리고 한번 나간 뒤에는 다시 들어오라는 하교가 없으면 감히 다시 들어오지도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입시한 신하들은 줄줄이 출입하였습니다. 늙은 신하 중에 볼일이 급한 자야 그래도 용서한다지만, 반열 뒤에서 당하관이 동시에 일어나 나가 버려 반열 한쪽이 텅 비게 되었으니, 어찌 이런 법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마땅히 경책해야 합니다.
영조:입시한 지 오래되었으니 잠시 자리를 피해야 할 일이 생기면 혹 출입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에는 동시에 많이 나가 버려 나도 이상하게 여겼다.

이밖에도 입시 자리에서 느린 걸음으로 신료들의 반열을 뚫고 들어온 ‘용감한’ 내시, 입시 때마다 자주 졸아서 꾸지람을 들은 신료, 경연 자리에 술을 마시고 참석한 승지, 주강(晝講) 때 임금 가까이에서 코를 곤 내시 등 다양한 모습들이 기록으로 남아 있다. ‘승정원일기’에 기록된 수많은 입시 기사를 통해, 국정을 논하는 자리에서 임금과 신료 간에 얼굴을 붉히기도 하고 웃기도 한 생생한 장면을 볼 수 있다. 


강성득(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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