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가님에 대해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많은데요 먼저 간략하게 소개를 부탁 드립니다.
세계적인 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에서 하나를 빼면 박남준이라고.(웃음) 제 나이는 우리나이로 59살이 되었고 전라남도에 있는 작은 법성포 바닷가에서 태어났습니다.
서울로 올라와 한국방송공사 구성작가 공채1기 출신으로 방송 작가 생활도하다 전주에 와서는 문화센터 관장을 1년간 맡았어요.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산속에서 살면 돈을 쓰지 않는 생활이 가능할 것 같네? 그럼 내가 회사를 계속 다닐 필요가 없잖아?’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그 생각이 든 다음날 사표를 딱 내고 지금껏 살아왔습니다. (웃음) 단순하고 무식한 그런 좀 재미있게 해도 되죠? (웃음) ‘단무지’형이라고 합니다.
- 지리산시인이라는 수식어를 갖고 계신데요?
네, 서울에서의 작가생활과 전주에서 문화센터 관장을 그만두고 ‘모악산’이라는 곳에서 13년 살다가 지금 지리산으로 이사 온지 올해로 딱 13년이 되었네요. 급작스레 사표를 내고 한동안은 오랫동안 쓸쓸하고 춥고 배고프고 그랬었어요. 그래도 지금 쌀 걱정은 안하고 삽니다.
- 주로 시를 쓰실 때, 어느 곳에서 영감을 받으시는지 궁금합니다.
옛날 젊은 날에는 시를 억지로라도 만들려고 쓰여지지 않을 시를 만들기 위해 고민을 많이 했더라면 지금은 세상 곳곳에서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잘 열고 들려주는 이야기를 잘 듣고 받아쓰기를 잘하면 되요. (웃음)
- 왜 시집의 이름을 ‘중독자’라고 지으셨나요?
중독자는 사실 차에 대한 이야기에요.
이 찻잎를 그냥 가만히 두면 차가 그대로 그대로 있지만 비비고 상처를 내고 짓이기고 했을 때 비로소 향기로워져요. 그래서 어찌 보면 사람도 그렇게 온실의 화초처럼 자라는 것이 아니라 비바람을 건너온 시간들이 그 사람을 더 향기롭고 성숙하게 만들어요.
젊은 나를 열정과 아픔과 상처와 고통스러운 어떤 좌절들을 통해 나중에 나이가 들어서 아름다워지고 차 또한 그런 상처를 통해 향기로워 지듯이. 그런 향기로운 이야기들을 쓴 시들이 바로 ‘중독자’라는 시에요.
그런 향기로운 차들이 서로 건네지고 그런 차에 취하는 세상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시를 쓰게 되었고 제목을 이렇게 짓기도 하였습니다.
- 제가 시를 읽어보면서 3부 ‘그러므로’ 라는 시를 보고 가슴이 굉장히 먹먹해 졌었는데, 중독자를 쓰시면서 힘드셨던 점이 있으셨을 것 같아요
네. ‘그러므로’라는 시는 세월호에 대해 쓴 시입니다. 사실은 세월호 사건이 나오고 몇 일되지 않아서 한 신문사에서 청탁을 받았었어요. 시인들이 1주일동안 연재릴레이를 하는 것이었는데, 제가 그 무렵에 심장질환 때문에 수술을 받았었어요. 굉장히 큰 후유증이 있었던 때인데, 내가 너무 고통스럽더라구요.. 시를 쓰다가는 가슴이 터져버릴 것 같았어. 그래서 내가 지금 당장은 못쓰겠다. 고통스럽고 떠올리기만 해도.. 그래서 제가 청탁을 유고 했어요. 그리고 나서 몸이 좋아지고 나서 다시 썼는데, 가슴 아픈 일을 시적으로 형상화 시킬 때 그 고통이 오롯이 제게 전해지는 것 같아 힘들더군요.
- 작가님께 자세한 내용을 들으니 더욱 먹먹해 집니다. 혹시 가장 애착이 갔던 시나 마음을 울렸던 시가 있을까요?
‘마음의 북극성’이라는 제목이 되지 못한 시와 내가 언젠가 돌아가게 되면 묘비명을 뭐로 할까 생각해서 ‘묘비명’이라는 시를 쓴 적이 있는데 그런 시를 쓰면서 스스로 “그래 이 정도면 최선을 다하면서 살아오진 못했더라도 그 가까이는 살아오지 않았겠어?”라는 생각을 하면서..(웃음)
- 등단 30주년을 맞은 7번째 시집 ‘중독자’를 출간하셨는데 감회가 어떠신지?
제가 생각을 해보니 이번 ‘중독자’ 시집까지 합하면 14권의 책을 냈더군요. 근데 ‘중독자’라는 책을 내기 전까지 다 서울에 있는 출판사에서 시집을 냈어요. 한 권도 지역에 있는 출판사에서 책을 내본 적이 없어요.
그러다 문득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어요. 왜냐하면 어디 가서 이야기할 때 “지역문화가 꽃피워져야 되는데 우리나라는 서울 중심적인 문화가 편중 되어 있다. 지역에 사는 예술인들이 그 지역에서 활동을 하고 열심히 한 작업들이 지역무대에 올려지거나 출판되어지면 지역문화가 조금 더 꽃피지 않겠는가” 라고 나는 아무런 양심의 가책이 없이 그렇게 이야기를 해온 거에요
하지만 이번 ‘중독자’는 우연히 진주에 있는 책방에 가서 차를 마시는데 내 가방에 원고가 있는지 어떻게 알고는 인문학 전문 출판사를 한다 하더라고. 우연의 일치지. 그래서 이렇게 등단 30주년 7번째 시집 ‘중독자’가 나오게 되었어요. 감회가 새롭다면 제가 살아온 날들이 덜 부끄러운 감회가 있습니다.
- 작가님이 꿈꾸시는 미래의 모습이나 얼굴은 어떤건가요?
제가 불혹의 나이가 들기 하루 전날 자기 전에 거울을 보고 잤어요. 그 다음날 다시 거울을 보니 달라진 건 없더라구요 (웃음). 근데 그 ‘거울을 본다’라는 건 어떤 의미냐 하면 얼마만큼 잘 살아왔는가. 잘 살아왔다는 것은 경제적으로 풍부한 삶을 살아온 것이 아니라 내가 최선을 다해 살아왔는가 덜 부끄럽게 살아왔는가 그걸 보고 싶었던 겁니다. 앞으로도 또한 거울을 봤을 때 “이만하면 그래도 덜 부끄럽게 살아오지 않았겠어”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얼굴모습이었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듭니다.
- 사람마다 좌우명이 있잖아요. 그런 것처럼 혹시 마음에 품고 계시는 문구나, 독자 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마음에 품고 있는 문구라기보다는 일종의 ‘좌우명’ 같은 건데 하도 많은 좌우명이 있어서 (웃음) ‘최선을 다 한 이후의 결과에 대해서는 부끄러워하지 말자’ 라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네요. 그 얘기를 여태껏 품고 살아왔으니까.
26년 전 모악산과 지리산에서 지내며 스스로 고독했을 시간들을 통해 발효 차처럼 향긋해진 시인 박남준.
인터뷰 내내 그의 묵직한 카리스마, 호소력과 재치에 빠졌고 지리산 시인 박남준의 숨김없는 순수함과 마음의 소리가 내게 오롯이 전달되었다.
‘최선을 다 한 이후의 결과에 대해서는 부끄러워 말자’라는 가슴속 떨림과 지역의 예술문화를 살리려는 투명한 그의 마음이 영롱하게 빛나 나에게도 전해졌다.
유지윤 이슈팀기자 /churabb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