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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47일간의 세계여행] 54. 쓸쓸한 우수아이아, ‘세상의 끝’서 띄운 엽서
[헤럴드경제=강인숙 여행칼럼니스트] 핀 델 문도(Fin def Mondo), ‘세상의 끝’이라 불리는 곳, 남극으로 출항하는 배가 기다리는 아메리카 대륙의 땅끝마을, 여기는 우수아이아(Usuaia)다.

사람들은 등대를 보러, 펭귄을 만나러 다시 배를 타고 바다로 투어를 떠나기도 하지만 나는 ‘세상의 끝’ 마을에서 그냥 하루를 보내기로 했다. 여행자들이 많은 산마르틴 거리를 벗어나 바닷가 선착장에 선다. 바람은 여행자를 날려버릴 듯한 기세다. 머리카락이 사방으로 날려 마구 헝클어진다.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스쳐오는 바람과 씨름하며 바다를 향해 나가본다. 남극으로 향하는 바다에 잔물결이 반짝이는 듯 일렁이고 있다. 휘몰아치는 바람이 등을 떠민다. 여행자를 쳐다보지도 않고 정박한 배를 수선하는 일꾼들도 있고 눈이 마주치자 손을 흔들어 주는 사람도 있다. 아메리카 대륙의 끝인 이 아름다운 마을은 연일 관광객으로 붐빈다고 한다. 


바다를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고 난 뒤, 언덕을 올라 산으로 향한다. 파랬다가 잿빛이었다가 변덕스런 하늘 아래, 그림 같은 집들이 늘어서 있다. 추운 지역에서 피는 꽃들이 대문 앞을 수놓고 개들은 이방인의 출현에 흥분한다.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따뜻한 식탁이 펼쳐 있을 것만 같은 현관은 열리지 않는다. 관광객 넘쳐나던 거리와는 달리 그저 고요하기만한 주택가다.

차가워진 손가락을 비비며 조금 더 오른다. 여행에서는 세상에 내 것이 없고, 내 것이 아닌 것도 없다. 하루의 의식주를 당장 걱정해야 하지만 길 위에서 만큼은 보이는 풍경이 모두 내 소유가 되고 그 순간 만나는 사람이 최고의 친구가 된다. 눈을 이고 있는 침엽수림의 산에 기대어 바다를 바라보는 마음이 시원해진다. 지구 반대편의 보금자리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아득하다. 이 순간은 우수아이아의 하늘과 산과 바다를 즐길 뿐이다. 향긋한 바람이 불어와 이마에 맺힌 땀을 식혀준다.


천천히 언덕을 더듬어 내려가 기념품 가게를 찾는다. 파란 바다에 새빨간 등대 사진이 있는 엽서를 고른다. 바람을 피해 작은 까페로 들어가 커피 한 잔에 손을 녹이며 엽서를 쓴다. 매일 즐겁기만 하던 여행길인데, 여기서는 왠지 그리운 사람들이 더 생각난다. ‘세상의 끝’이라는 말이 왜 이리 쓸쓸하게 들릴까? 그리운 이에게 쓰는 엽서지만 이것은 어쩌면 나에게 보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의 마지막 우체국에서 엽서를 부친다.


남극이 가까운 추운 마을, 여름이라는 빛나는 계절의 이름이 무슨 소용일까? 오후 10시가 넘어도 환한 백야의 도시에 저녁이란 단어가 어울리는 것일까? 한국의 담담한 하늘과 우수아이아의 변화무쌍한 하늘은 다르지만, 과연 같은 하늘이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 이 먼 곳에서 부치는 엽서는 지구반대편 한국에 무사히 닿을 수 있을까?

이번 여행에서는 인도의 끝, 남미의 끝 그리고 유라시아 대륙의 서쪽 끝에 가 볼 예정이었다. 인도대륙의 끝인 깐야꾸마리에 다녀온 발걸음은 벌써 두 번째 끝에 도착했다. 혹시 나는, 이미 너무 많은 “끝”을 보아버린 건 아닌지 조바심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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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딜 가도 무엇을 봐도 “끝”이라는 단어가 어른거리는 곳, 우수아이아.

길고 긴 태양의 흔적 속에서 바다를, 산을, 집을, 거리를 그리고 사람들을 바라본다. 오늘이 내가 살아온 날들의 마지막 순간이란 게 놀랍지 않은 사실이라는 것을 알아챈다. 세상에서 마주할 진짜 끝은 단 하나일 것이다. 쉽게, 끝은 시작이라고 단언할 수가 없다.

해는 온종일 마을을 비추고 바람도 그칠 줄 모르는데, 어둠이 장막을 드리우려면 아직도 멀었나보다. 와인잔을 기울이며 밤을 기다린다.

정리=강문규기자mkk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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