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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면 역사와 함께 한 농심 창립 50돌…‘농심 50년사’ 살펴보니
-라면생산량 6만7200봉지→1600만 봉지(240배↑)
-직원수 9명→4686명(520배↑)
-국내 매출액 2180만원→2조2000억원(10만배↑)
-해외 매출액 26만 달러→6억5000만 달러(2000배↑)



[헤럴드경제=장연주 기자]한국의 맛으로 세계를 울린 농심이 오는 18일 창립 50주년을 맞는다.

신춘호 회장
농심은 1965년 9월18일 창립 당시 직원 9명으로 출발했지만, 현재는 4686명으로 50년 만에 직원수가 약 520배로 늘었다. 또 국내 라면 생산량은 창립 당시 6만7200봉지에서 올해는 1600만 봉지로, 약 240배 증가했다. 또 국내 매출액은 2180만원에서 2조2000억원으로 약 10만배가 늘었고, 해외 매출액 역시 26만 달러에서 6억5000만 달러로 약 2000배나 커졌다. 농심 50년사를 살펴본다.


▶1971년, ‘한국 최초의 스낵’ 새우깡 탄생=농심은 창립부터 자체 기술연구소를 운영했을 만큼 독자적인 기술개발로 국내 1위의 입지를 다졌다. 라면의 원조인 일본기업과의 기술제휴가 사업 초기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독자적인 성장에는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농심은 1970년 세계 최초의 인스턴트 짜장라면인 ‘짜장면’과 ‘소고기라면’을 잇따라 출시하면서, 기술적 우위를 기반으로 한 성장에 시동을 걸었다. 특히, 소고기라면은 당시 닭고기 육수가 기본베이스였던 국내 시장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며, 농심의 시장점유율을 10%대에서 22.7%로 대폭 끌어 올렸다. 특히 농심 소고기라면의 인기에 자극받은 경쟁사가 미투제품을 잇따라 출시하면서, 국내 라면시장의 국물 트렌드가 닭고기 육수에서 소고기 육수로 변화했다.

이어 1971년 12월에는 ‘국내 최초의 스낵’ 새우깡을 출시했다. 믿고 먹을 안전한 간식이 전무했던 시절, 식품기업으로서의 소임을 다하려는 의지가 반영된 결과다. 짭짤하면서 고소하고 바삭한 식감의 새우깡은 독특한 이름과 함께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출시 3개월 만에 농심 매출을 2배 가까이 끌어올렸다. 

농심 관계자는 “새우깡은 1년 여의 개발기간 동안 기계 밑에 가마니를 깔고 자며, 4.5t 트럭 80대 분의 밀가루를 사용한 끝에 자체 개발한 제품”이라고 설명했다.

이후 농심은 감자깡(72년), 고구마깡(73년), 인디안밥(76년), 바나나킥(78년), 꿀꽈배기(79년)를 줄줄이 내놓으며 히트 행진을 이어갔고, 라면뿐 아니라 스낵전문 기업으로 발돋움하며 안정적인 사업기반을 갖추게 된다.


▶1985년, 농심 라면시장 1위 등극=1982년 4월 안성스프전문공장 준공은 국내 라면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렀다는 당시 상황 속에 이뤄진 대규모 투자였다. 투자를 결정했던 1970년대 말은 오일쇼크로 국내 경기가 어려워져 다소 위험한 선택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안성공장은 다양하고 완성도 높은 국물(스프)로 라면시장과 농심을 함께 성장시켰다.

농심은 동결건조와 진공건조라는 다양한 신기술과 최신 설비로 너구리(82년), 육개장사발면(82년), 안성탕면(83년), 짜파게티(84년), 신라면(86년) 등 지금까지 라면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히트제품을 줄줄이 개발해 냈다.

1985년은 농심이 라면시장 1위에 올라선 해로 기억된다. 1985년 3월 라면시장 점유율은 농심 40.4%, 삼양식품 39.6%, 한국야쿠르트13.5%, 청보 5.9% 였으며, 이듬해인 1986년 신라면을 출시하면서 2위 와의 간격을 더욱 넓혔다.

이후 농심은 1999년 ‘1분당 550개의 라면을 생산’하는 세계 최고속의 제조설비를 갖춘 구미 공장을 가동, 생산기술면에서도 우위를 점령했다. 2006년 준공된 녹산공장은 쌀국수, 냉면, 잔치국수 등 전통 면류의 산업화를 위한 대표적인 투자로 꼽힌다.

트렌드를 창출하며 시장을 선도하겠다는 농심의 전략은 최근에도 빛을 발하고 있다. 농심은 올해 3mm의 굵은 면발 제품인 우육탕면과 짜왕을 잇따라 출시, 시장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내며 라면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다. 

▶1986년, 신라면 탄생…2014년까지 240억개 판매
=신라면은 농심 뿐 아니라 국내 라면시장 역사에서 독보적인 존재다. 농심 신라면은 1986년 ‘깊은맛과 매운맛이 조화를 이룬 얼큰한 라면’이라는 콘셉트로 만들어진 농심의 걸작이다. 당시 농심은 1985년 시장 1위에 올라선 다음, 신라면 출시로 확고한 독주체제를 갖추게 됐다.

신라면 출시에 앞서 열린 내부 시식회에서 “너무 맵다”는 반응이 지배적이었지만 신춘호 회장은 신라면의 독특한 매운 맛은 매력적인 차별화 요소가 될 것이라는 믿음과 자신감으로 맛과 품질은 물론 작명, 포장 디자인까지 챙기며 제품출시를 독려했다.

신라면은 출시되자마자 가파른 매출 상승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출시 첫해 석달 간 30억원에 육박하는 판매고를 시작으로 이듬해인 1987년에는 무려 180억원을 상회하는 매출을 올리며 국내 라면시장의 대표주자로 뛰어 올랐다.

현재 신라면은 라면시장 부동의 1위 제품으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식품 중 하나다. 국ㆍ내외에서 연간 7000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국내에서 신라면은 출시 이후 2014년까지 240억개, 일렬로 세워 지구를 약 108바퀴나 돌 수 있는 엄청난 양이 판매됐다.

해외에서 신라면은 해외 교포는 물론 현지인들에게는 인기를 모으며 식품한류의 신화를 쓰고 있다. 사나이 울리는 라면에서 세계인을 울리는 글로벌 브랜드가 됐다. 신라면은 ‘식품업계의 반도체’로 불리며, 한국을 대표하는 수출품목으로 자리잡고 있다. 


▶1971년, 라면 수출 시작…올 해외매출 목표 6억5000만 달러=농심이 처음 라면수출에 나선 것은 1971년이다. 1981년에는 일본 동경사무소를 개설하면서 해외수출 네트워크 구축을 본격화했으며, 1996년 상해공장을 세우면서 본격적인 해외생산체제를 구축했다. 2005년에는 미국 LA공장을 가동했다.

농심은 현재 미국, 중국, 일본, 호주 등 4개국에 생산∙판매법인과 영업지점을 구축해 글로벌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자체 해외 네트워크와 판매 파트너를 통해 농심은 유럽의 지붕 스위스 융프라우부터 지구 최남단 칠레 푼타아레나스까지 전 세계 100여 개국에 라면과 스낵을 판매하고 있다. 특히 신라면은 김치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꼽힐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농심은 해외수출시 현지인의 입맛에 맞춘 신제품을 개발하기 보다, 있는 그대로의 제품을 수출하고 있다. 농심의 해외시장 진출 제1의 원칙은 ‘우리의 맛을 그대로 심는다’는 것이다. 우리만의 독특한 차별화된 제품으로 어필하지 않는 한 해외시장에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이 농심의 해외진출 철학이다.

농심은 올해 세계 라면시장의 허브인 아시아 지역을 집중 공략하는 한편, 중국에서는 백산수로 생수시장에 본격 진출한다는 목표다. 농심의 올해 해외매출 목표는 사상 최대인 6억 5000만달러다.

▶백산수, 농심의 미래 전략사업=농심은 생수를 미래 100년 성장을 책임질 전략사업으로 정한 바 있다. 지난해 건설에 들어간 백두산 백산수 신공장은 오는 10월 중 완공을 앞두고 있다. 농심은 세계 최고의 물에 최첨단 설비를 갖추게 되는 만큼, 백산수를 중국 시장을 중심으로 글로벌 생수 브랜드로 육성하겠다는 각오다. 농심은 생수를 중심으로 연관분야로 사업을 확대, 글로벌 종합 식음료회사로의 도약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한편, 농심은 17일 신춘호 회장, 박준 사장 등 임직원과 계열사 임원 등 2백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창립 50주년 기념식’을 서울 신대방동 본사에서 개최했다.

이날 기념식에서 박준 사장은 “농심 성장의 역사는 우리나라 식품산업의 발전사라 할 수 있다”며 “1970년대 초 회사 사활의 기로에서 회생의 전기를 마련한 것이 ‘짜장면(70년)’, ‘소고기라면(70년)’, ‘새우깡(71년)’ 등 고정관념을 뛰어넘는 신제품 개발이었다면, 앞으로는 백두산 백산수를 중심으로 글로벌 농심, 100년 농심을 이룩해 나가자”고 강조했다.

yeonjoo7@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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