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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타운 출구전략 ‘가로주택정비사업’ 첩첩산중
[헤럴드경제=박준규 기자] ‘대한민국 최초 1호 가로주택정비사업. 사업시행인가 완료.’

지난 22일 서울 중랑구 면목동 173-2번지 우성주택을 찾았다. 고동색 벽돌을 켜켜이 쌓아 올린 3층짜리 이 연립주택엔 큼지막한 이같은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지난해 전국 최초로 가로주택정비사업에 나선 이곳 조합원들은 지난 20일 중랑구청으로부터 사업시행인가를 받았다. 사업 단계를 거칠 때마다 ‘전국 최초’가 된다. 

가로주택사업을 이어가고 있는 서울 중랑구 면목동 우성주택. 최근 중랑구청으로부터 사업시행인가를 받았다. 사진=이상섭 기자/babtong@heraldcorp.com

이곳 가로주택정비조합은 연립주택 2개 동, 단독주택 4채를 소유한 22가구 주민들로 이뤄져 있다. 이들은 인근 지역과 함께 2000년 전후로 재건축사업을 추진했다. 하지만 주민동의율이 늘 20%를 밑돌면서 무산되기 일쑤였다.

현장에서 만난 권진 조합장은 “당시 재건축사업을 함께 추진하던 지역이 쪼개져버렸다”며 “주거환경 개선에 적극적인 주민들이 뜻을 모아 지난해에 가로주택정비사업에 나섰다”고 했다. 토지등 소유자 22명 가운데 21명(동의율 95.5%)이 조합설립에 동의한 상태다. 2017년엔 이 자리에 번듯한 7층짜리 공동주택(42가구)이 들어선다.

빠른 사업속도가 가장 큰 경쟁력=이곳 조합은 후속 조합들에겐 본보기가 된다. 현재 면목동을 비롯해 서초구 서초동(낙원청광연립)과 강동구 천호동(동도연립)은 조합을 꾸리고 사업시행인가를 준비 중이다. 재건축과 재개발의 틈바구니 속에서 조금씩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뉴타운 출구전략’에 몰두하고 있는 서울시는 기존 정비사업의 대안으로 가로주택정비사업을 밀고 있다. 이 방식의 가장 큰 경쟁력은 기존 재개발ㆍ재건축 사업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정비계획수립, 추진위원회 구성 단계가 생략돼 사업속도가 빠른 점이다. 권 조합장은 “기존 방식으론 조합을 만들어 사업시행인가를 받기까지 10년이 걸리는데, 우리는 1년만에 해치웠다”고 했다.

짧은 사업기간은 주민들의 ‘돈 부담’도 낮춘다. 면목동의 경우 조합원들이 내야 하는 추가분담금은 지분율에 따라 아예 없거나 최대 800만원 수준이다.또 개별 조합원이 가진 지분에 따라 무상지분율을 확정해두는 확정지분제를 선택해 주민들의 재정적ㆍ심리적 부담을 줄였다. 서울시 김만호 저층주거지관리팀장은 “분담금 부담이 크지 않다면 새 주택이 건립된 뒤에도 기존 주민들의 재정착률을 높이는데도 효과적이다”고 말했다.

아울러 ▷소규모 사업이어서 참여주민들의 의사가 적극 반영되는 점 ▷지분에 따라 1가구가 최대 3주택까지 확보할 수 있다는 점 ▷전용면적 85㎡ 이하 미분양주택은 서울시가 공공주택으로 매입하는 점도 눈에 띈다.

면목동 주변의 모습. 준공 20~30년을 맞은 주택들이 밀집해 있다. 사진=이상섭 기자/babtong@heraldcorp.com

사업 활성화까진 먼 길=이 사업은 지금껏 ‘가지 않은 길’이다. 그만큼 길가에 놓인 돌부리들이 많다. 활성화를 위해선 보완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업계에서는 사업 시행자들이 원활하게 사업비를 마련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한다. 군소 건설업체들이 이 사업에 주로 참여하는데 대형업체에 비해 인지도가 낮다는 이유 등으로 금융권에서 큰 돈을 조달하기 쉽지 않다.

면목동 사업에 공동시행자로 참여하고 있는 동구씨엠건설 관계자는 “지금 지출하는 비용은 고스란히 주민들의 분담금 상승으로 이어져 조심스러운 부분이 많다”며 “공사비와 이주비를 조속히 확보하는 일이 만만치 않다”고 했다.

서울시도 기본적으로 이 부분에 공감한다. 현재 건축공사비의 40% 이내에서 최대 30억원(이율 2%)까지 융자 지원하는 것에 더해서 가로주택정비사업을 대상으로 하는 보증보험상품 개발을 주택도시보증공사와 진행 중이다.

익명을 원한 건설업체 담당자는 “제도적 기반이 선행되고 사업을 장려해야 하는데 오히려 다 따라오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 사업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은 것도 극복할 과제다. 지난달 서울시에 의해 정비예정구역에서 직권해제된 한 지역의 조합원은 “수년간 사업이 지지부진하면서 주민들 사이 대립만 커진 상태인데, 대안이랍시고 가로주택사업을 들이미는 데에 반발심이 생기는 건 당연하다”고 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면목동과 서초동, 천호동 외에 20여곳 가량이 가로주택정비사업을 검토하고 있다.

김태섭 주택산업연구원 정책연구실장은 “이 사업에 대한 인식 공유가 아직 부족하다”며 “가로주택사업이 가능한 지역은 어디이고 어느 정도 규모에서 사업이 가능한지 등 가로주택사업에 관한 광범위한 정보를 지자체가 제공하는 토대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가로주택정비사업은

저층 노후불량 주거지의 도시 기반기설(도로망)을 유지한 채로 공동주택을 새로 지을 수 있는 소규모 정비사업. ‘미니 재건축’으로 불린다. 2012년 2월 도정법이 개정되며 도입됐다.

사업을 추진하려면

√ 도시계획시설 도로로 둘러싸인 1만㎡ 미만의 가로구역

√ 구역 안에 있는 전체 건축물 가운데 노후ㆍ불량 건축물이 3분의 2 이상

√ 구역에 포함되는 가구 수가 20호 이상이어야

√ 주택과 토지 소유자의 80% 이상 동의

whywh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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