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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읽기-정재욱] 명산 계곡의 수난
지난 주말, 강원도 오대산과 방태산 일원을 둘러보았다. 절정의 단풍철은 지났지만 물감을 풀어놓은 듯한 가을산을 즐기기에는 전혀 모자람이 없었다. 겨울 분위기가 묻어나기 시작한 인적 드문 산길을 걸을 때는 산 전체를 독차지하기라도 한 듯한 호사로움도 느껴졌다. 오대산 국립공원 내면분소에서 시작해 명개리 계곡을 따라 두로령으로 이어지는 길이 딱 그랬다.

만추(晩秋)의 산 자태야 어디 하나 나무랄 데 있으랴만, 그래도 가슴 꽉 차지 않는듯한 뭔가 2%가 부족했다. 산이 있으면 계곡과 물이 있게 마련이다. 한 폭의 산수화는 산과 물이 한데 어우러져야 비로소 완성된다. 산자수명(山紫水明)이라 하였거늘, 오랜 가뭄에 시달려 그 한 축인 계곡이 말라붙다시피 했으니 어찌 아쉽지 않겠는가.

오가는 산자락 계곡들 대부분은 황량함 그 자체였다. 우렁찬 굉음을 내야 할 물소리는 졸졸졸~ 마치 자장가처럼 들릴 정도로 기세가 꺾여있었다. 산을 삼킬 듯 쏟아져 내리던 물줄기는 오간데 없고, 먼지 날리는 자갈과 앙상한 바위들만 가득했다. 그 사이를 비집고 흐르는 좁다란 실개천만이 이 곳이 계곡이라는 사실을 겨우 일깨워 줄 뿐이었다. 명산 계곡의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됐다. 

계곡의 수량(水量)이 줄어드니 그 물이 모여 이룬 내도, 강도 온전할 리 없다. 오대산과 방태산 구석구석을 돌아 내려온 계곡 물이 다시 세를 규합해 더 큰 물줄기를 형성하는 곳이 내린천이다. 홍천군 내면에서 시작해 인제로 이어진다 해서 내린천으로 불리는데, 거친 물 흐름과 풍성한 수량이 험준한 산세와 조화를 이뤄 그림같은 풍광을 연출하는 강원도 대표 명소다.

한데, 그 내린천변 역시 더 없이 썰렁하기만 했다. 늦은 가을이라는 계절적 이유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흐르는 물의 양이 충분치 못해 제 구실을 못하니 찾는 이들이 줄었기 때문이다. 하긴 레프팅을 즐기며 환호하는 젊은이들의 함성이 그친지 2년이 넘었다니 그럴 수밖에…. 이 지역 주민들의 경제 사정도 내린천만큼 찬바람이 일게 뻔하다. 내린천의 종착점인 소양댐 상류 지역도 배가 아니라 아예 차가 다녀야 할 지경이 됐다. 6ㆍ25 전화(戰禍)도 입지않았다는 깊은 강원도 산골이지만 최악의 가뭄은 피해갈 수 없었던 모양이다. 바짝 마른 가을산에 산불이라도 나지 않을까 걱정이다.

다행이 엊그제 반가운 단비가 마른 대지를 적셔주었다. 하지만 계곡과 하천의 모습을 제자리로 돌려놓기에는 어림없는 양이다. 소양댐 수위는 물을 담기 시작한 이래 최저 수준이라는 뉴스가 연일 이어지고 있다. 저수율도 40%선으로 평소 절반도 안된다고 한다. 상대적으로 가뭄이 심한 충남 보령댐은 저수율이 마침내 20%로 아래로 내렸갔다. 사실상 바닥이 드러난 것이다. 예삿일이 아니다.

가뭄이 심해지면 논밭 뿐 아니라 민심도 거북등 처럼 쩍쩍 갈라진다. 대통령이 가뭄 현장에서 호스로 물 뿌리는 장면을 연출한다고 민심이 달래지는 건 아니다. 가뜩이나 경제가 어려운데 가뭄까지 덮쳐 서민들의 삶은 더 고달프다. 그런데 정권도, 정치권도 관심은 온통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문제뿐이다. 번짓수를 단단히 잘못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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