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데스크 칼럼-김성진] TV켜기가 두렵다
사다코가 소름끼치는 음악과 함께 우물 속에서 나타나 TV 밖으로 기어나오는 장면을 봤을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독재정권과 싸우는 학생들이 시위를 하다 다치고, 수백발의 XX탄과 최루탄이 난무하는 장면에 안타까운 탄식이 나올 망정, 우리는 뉴스를 봤다. 안타깝지만 뭔가 ‘좀 더 나은 세상으로 향하는 과정의 진통’으로 여길 수 있었다. IMF라는 전대미문의 국가적 위기를 겪었을 때도, 안온하던 삶이 벼랑 끝에 몰리는 상황이 됐지만 TV와 신문이 전해주는 뉴스는 외면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지금 TV는 우리에게 ‘공포’에 가깝다.

수백명의 무고한 학생과 시민이 어처구니없이 목숨을 잃는 사고를 당했지만 500일이 넘게 지나도록 사고원인도 제대로된 책임자의 처벌도 없다. 뭐하느라 비었는지 모를 정부의 곳간을 채우기위해 세금은 천정부지로 뛰어올랐다. 전국의 대학생들은 30년전이라면 어디서라도 모셔갈 특급 스펙을 갖추었지만, 비정규직을 싼값에 쓸 수 있게된 기업들은 도통 뽑을 생각이 없다. 자식들의 고통스런 구직기(求職期)를 뒷바라지하는 부모의 삶도 서서히 무너져 내린다. 하루만 국회의원을 해도 연금을 받는 분들과 일부 고급 공무원, 대기업을 제외하고 행복한 국민이 과연 이 땅에 몇프로나 되는지 진정 궁금하다. 이런 ‘선택받은 이’들의 행복과, 그렇지 못한 이들의 고통만이 TV화면을 메우고 있는 것이 요즘이다.

잊을만하면 나오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관련 소식은 한국인인게 한스럽고 부끄러워지기까지 한다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최근 발표된 OECD 통계는 한국인의 행복지수가 최하위이며, 아빠가 자녀와 하루에 보내는 시간이 평균 고작 ‘6분’이라고 한다. 가족과 함께 하지 못하고 일에 치여 살아야, 그렇게라도 해야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가장들의 처진 어깨가 안쓰럽다. 자살률, 복지지출, 삶의 만족도, 고령화 대응, 장애인 소득보장, 일자리의 양과 질, 사회통합지수 등 거의 대부분의 항목에서 한국이 꼴찌다. 도대체 OECD에 왜 가입한걸까. TV 자막에 ‘OECD’라는 단어가 뜰 때마다 ‘이번엔 또 뭐가 최하위길래’라는 자괴감이 엄습한다. ‘덴마크에 태어나서 행복하다’는 행복지수 1위 덴마크 국민들의 심정을 우린 평생 짐작도 못할 것 같다. 

여간해서 흥분하지 않는 혹자는 말한다. ‘TV뉴스라는게 사건 사고가 나오는게 당연한거지, 미담만 나오더냐’고. 80~90년대만해도 TV뉴스는 신문과 함께 국민들이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나라 돌아가는 사정을 전해듣는 거의 유일한 창구였다. 사건도, 사고도 정상적인 뉴스와 함께 나왔다. 행간을 읽어야하는 수고가 필요할 지언정 세상이 어떤 방향으로 가고있는지 가늠은 할 수 있었다. 지금은 왜 ‘세상에 이런 일이’같은 프로에 나올법한 일들이 매일 벌어지는지 의아하다.

TV를 한참 외면했다가 최근 시작한 ‘응답하라 1988’이라는 드라마를 보려 리모콘을 눌러보았다. 아스라한 기억들이 스쳐간다. 그때 우리는 “30년 뒤에는 세상이 더 좋아질거야”라고 생각했었다. 88년을 그리워하게 될줄은 꿈에도 모르고….

withyj2@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