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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담 아미의 문화쌀롱] 레미제라블 vs. 베르테르
[헤럴드경제=김아미 기자] 레미제라블 vs. 베르테르.

두 작품을 대결 구도에 앉힌다는 건 좀 경박스러운감이 있지만, 이 둘을 고른 건 순전히 두 작품의 남자 주연이 뮤지컬 흥행 보증 수표 톱 2로 꼽히는 정성화, 조승우라는 이유 때문이다. 물론 두 작품이 각각 18~19세기 프랑스와 독일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와 괴테의 작품을 원작으로 했다는 점도 선정 이유 중 하나다.

마담 아미의 문화쌀롱. 그 첫번째로 두 편의 뮤지컬을 낱낱이 파헤쳐보도록 한다. 단 철저하게 개인의 취향이 반영된 탓에 거슬리는 부분이 있을 수 있으므로 주의할 것.

결론부터 말하자면 오늘의 승자는 베르테르다. 



<레 미제라블(Les Miserables)>
*공연기간 : 2015년 11월 28일~2016년 3월 6일
*장소 :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
*러닝타임 : 총 180분
*관람일시 : 2015년 12월 9일 수요일 오후 3시
*캐스팅 : 정성화(장발장), 김준현(자베르), 조정은(판틴), 떼나르디에(임기홍), 떼나르디에 부인(박준면), 앙졸라(민우혁), 에포닌(박지연), 마리우스(윤소호), 코제트(이하경)
*프로덕션 : 레미제라블코리아(레미제라블 한국어 공연을 위해 KCMI와 인터파크 공동 출자로 설립된 회사)
*원작 : 빅토르 위고 ‘레미제라블’

이것 참 난감하다. 레미제라블은 100이면 한 99.9 정도가 최고로 꼽는 뮤지컬이다.

세계 4대 뮤지컬의 명성에 걸맞게 지난 30년간 전세계 무대에서 롱런해왔다. 최근 공연전문 사이트 ‘브로드웨이월드닷컴’에서 최장수 흥행대작으로 꼽히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감한 이유는, 2015 한국어 버전 라이선스 뮤지컬 레미제라블이 갖고 있는 몇가지 어색함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샤넬의 칼 라거펠트가 한중일이 뒤섞인 국적 불명의 오리엔탈로 한복을 해석한 것처럼, 혁명 이후 19세기 초 프랑스 파리의 정서를 배제한 데서 오는 어색함이다.

먼저 ‘하나미치’ 무대다. 제작사 측은 국내 최초, 세계 최대 규모의 하나마치 무대를 이번 재공연의 핵심 관전 포인트로 꼽았다. 일본 가부키 공연에서 쓰이는 무대로, 사각형 프레임을 벗어나 좌우 벽면을 따라 무대를 확장시킨 형태다.

기존 사각형 무대의 양 옆 스피커나 조명기구들이 관객들의 시야를 치고 들어오는 반면, 하나미치 무대는 관객들의 몰입도를 높인다는 건데, 이는 레미제라블의 웅장한 스케일을 방해하는 측면이 있다. 보는 이에 따라서는 무대가 다소 좁게 느껴진다. 게다가 일본식 목조 가옥을 연상케 한다는 점도 방해 요소다.

다음으로 배우들의 발성. 벨칸토(Bel canto) 창법에 길들여진 배우들은 주연, 조연 할 것 없이 굵은 목소리로 성대 긁어댄다. 이 때문에 프롤로그부터 초반 15분, 남자 배우들의 노랫말이 도무지 들리지 않는다. 공장 노동자들의 ‘At the end of the day’가 시작되고 나서야 조금씩 들리는 정도. 1시간 가까이 지나 떼나르디에 부부의 ‘Master of the house’가 나올 쯤 돼야 몰입이 가능해진다. 그러나 장발장과 자베르, 떼나르디에와 앙졸라, 마리우스까지 대부분의 남자 배우들이 목소리를 두껍게 내는 바람에 피로도는 점점 높아진다.

한국어 가사가 지나치게 ‘토속적’인 것도 낯설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영화나 뮤지컬을 통해서 레미제라블을 접했고, 장발장 죄수번호 ‘24601’을 ‘이사육공일’보다 ‘투포식스오원’으로 노래 가사처럼 기억하고 있는 탓도 있다.

가령 죄수들이 부르는 ‘Look down’은 ‘낮춰’로, 앙졸라와 마리우스 등 학생 혁명가들이 부르는 ‘Red and Black’은 ‘붉게’, ‘검게’로, 1막 합창곡인 ‘One day more’는 ‘내일로’로 바꾸는 바람에 피식 웃음이 난다. 함께 관람했던 지인의 말. “내일로는 마치 코레일 브랜드 같은 걸?”

의상도 그렇다. 죄수들이 등장하는 첫 장면부터 19세기 초 프랑스 파리라기보다 소설 ‘토지’ 속 평사리 농민들의 복장이 연상된다. ‘레미제라블 25주년 프로덕션’이 구현한 편안한 착장은 전혀 프랑스스럽지 않다. 19세기 초반 프랑스 배경의 뮤지컬에 기대하는 낭만주의 복식을 볼 수 없어 못내 아쉽다.

레미제라블의 모든 뮤지컬 넘버들은 시종일관 압도적이다. 파워풀하다. ‘One day more’나 ‘Do you hear the people sing’이 끝나면 객석에선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져 나온다. 막이 내리면 (물론 제일 비싼 맨 앞줄 좌석에서부터) 기립박수가 이어진다. 그러나 그건 원작의 힘이다. 2015 한국어 버전 레미제라블에 보내는 찬사라고 보긴 어렵다.

마지막으로 사소한 지적질 하나 더. 떼나르디에 부인 역을 맡은 배우 박준면은 단연 발군이다. 극의 재미 요소를 능수능란하게 이끌어 간다. 그런데 박 배우가 초반 공장씬에서 판틴과 함께 일하는 노동자로 나온다. 물론 코제트, 에포닌도 본 장면 이전에 앙상블로 무대에 오르 내린다. 다른 누구보다도 존재감 강한 박 배우가 판틴과 함께 일하는 장면은 어쩐지 어색하다. 그건 마치 주연인 장발장이 갑자기 청년 혁명가들 중 1인으로 앙상블 출연하는 것과 같은 느낌이다. 





<베르테르(Werther)>
*공연기간 : 2015년 11월 10일~2016년 1월 10일
*장소 :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러닝타임 : 총 140분
*관람일시 : 2015년 12월 9일 수요일 저녁 8시
*캐스팅 : 조승우(베르테르), 전미도(롯데), 알베르트(문종원), 오르카(최나래), 김성철(카인즈), 송나영(캐시)
*제작 : CJ E&M, 극단 갖가지
*원작 :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뮤지컬 베르테르는 젊고 순수하고 찌질한(?) 총각 베르테르의 유부녀 롯데에 대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이야기를 근간으로 하고 있다.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원작으로 한 국내 창작 뮤지컬로, 2000년 초연된 이래 12차례 재공연됐다.

올해에는 2002년 공연 때 베르테르 역을 맡은 조승우가 13년만에 다시 베르테르 옷을 입었으니, ‘조베르 덕후’들께는 참으로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뮤지컬 베르테르는 1대의 피아노와 10대의 현악기로 구성된 체임버 오케스트라의 실내악이 극을 이끈다. 뮤지컬에서는 이례적인 편성이다. 등장 인물들의 내면 감정을 뒷받침하기에 더없이 완벽한 구성이다.

무대는 마치 신인상주의 화파 조르주 쇠라의 그림 ‘그랑자뜨 섬의 일요일 오후’에 비쳐든 햇살처럼 밝고 따뜻하게 시작된다. 흰색과 밝은 회색의 모노톤으로 지난 시즌부터 무대와 배우들의 의상을 바꿨는데, 모던하면서도 클래식하다. 파스텔 컬러로 칠해진 무대는 사랑으로 상처받은 베르테르를 따뜻하게 감싸 안는다.

총각이 유부녀를 사랑하다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는 뻔한 클리셰에도 불구하고 뮤지컬 베르테르가 감동적인 건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30여개의 넘버들과 배우들의 절제된 연기 때문이다.

특히 오랫동안 감기에 걸린 듯 비음섞인 목소리에, 때론 트롯트를 부르는 것처럼 ‘플랫’되는 목소리마저도 가슴을 후벼파는 조승우 베르테르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만큼 여전히 독보적이다. 뮤지컬 배우 조승우의 매력은 벨칸토 창법보다 바로 그 목소리에서 나온다. 떨리는 목소리로 ‘뭐였을까’를 부르는 대목에선 관객들의 가슴도 철렁 내려 앉는다. 오죽하면 ‘손 끝 마저도 연기하는 배우’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2013년에 이어 이번에도 롯데 역을 맡은 전미도는 욕 먹기 십상인 배역을 미워할 수 없을 만큼 사랑스럽게 만들었다. 특유의 맑고 싱그러우며 원숙함까지 갖춘 전미도 롯데의 목소리는 튀튀를 입고 왈츠를 추는 발레리나처럼 피아노 선율 위를 통통 튄다. 애꿎은 총각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헷갈리게 만드는 밉상이지만 끝내 우아함을 잃지 않는다.

알베르트 역의 배우 문종원은 특유의 폭발적인 성량을 절제하며 롯데와 하모니를 이룬다. 특히 베르테르, 롯데와 함께 부르는 ‘반가운 나의 사랑’ 삼중창에서 문종원 알베르트의 중후한 베이스톤 중저음은 단연 압도적이다.

단점도 있다.

서사가 부실하고 개연성이 떨어진다는 점은 극에 대한 몰입을 방해한다. 뮤지컬 베르테르가 내러티브 대신 등장 인물들의 감정과 내면에 포커스를 맞췄기 때문인데, 스토리 라인에 대한 과도한 생략 때문에 일부 관객들은 이들의 사랑 이야기에 공감하기 힘들다는 지적을 내놓는다.

도대체 왜 롯데는 1막 내내 알베르트만 바라보다가 2막이 시작되면서, 즉 유부녀가 되면서부터 베르테르를 좋아하게 됐는지, 도대체 왜 베르테르는 유부녀 롯데를 사랑해서 스스로 생을 마감하고야 마는지, 도무지 납득이 안 간다는 얘기다.

심지어 원작에서 변호사라는 직업을 갖고 있는 베르테르가 뮤지컬에서는 직업이 뭔지조차 알 수가 없다. 마치 지나가는 백수건달(?)처럼 그려놨다.

어쨌거나 뮤지컬 베르테르는 아름답다. 한 편의 잔혹동화처럼 치명적이면서도 아름다운 베르테르의 넘버들을 하루종일 듣고 싶지만 아쉽게도 아직 OST가 출시되지 않았다는 것.

총평. 굳이 구분하자면 레미제라블은 남성적이고, 베르테르는 여성적이다. 볼 공연 차고 넘치는 연말, 당신의 선택은?

ami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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