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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행] 대구의 어머니 달성, 따스함과 영혼이 있는 겨울
[헤럴드경제= 함영훈 기자] 달구벌은 달성의 옛 지명이자, 지금 대구광역시 일대를 통칭하는 이름이다.

12월 달성은 포근했다. 최근의 이상 고온도 그랬지만, 고을 곳곳의 자취 속에 배어있는, 인간에 대한 배려가 아름다웠다.

대구비행장에서 아양로-신천대로-중부내륙고속도로 지선-현풍서로를 따라 46㎞가량 남서쪽으로 달려 다람재에 오르면 낙동강변에 촌락과 뒤섞여 옹기종기 자리잡은 도동서원(보물 350호)의 모습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비슬산 자락에 있던 쌍계서원이 옮겨진 것이다.

사림의 중심이자 동방5현 중 으뜸으로 꼽히는 한훤당 김굉필선생을 모시는 영남거점 고등교육기관으로 보기엔 소박하다.

고개숙인 도동서원 은행나무

▶머리숙인 은행, 허리굽힌 길손

입구에 이르면 한쪽 무릎을 접은 듯, 허리를 굽힌 듯 땅에 가지를 드리운 은행 고목이 정중히 여행자의 안부를 묻는다. 문묘 성균관 은행나무의 우람한 자태와는 거리가 있다.

“나무도 쉬겠다는 거예요.” 우순자 해설사의 설명이 경건했던 서원 방문객의 마음을 무장해제 시킨다.

주인을 부르는 환주문(喚主門)은 좁고 낮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허리를 숙이라는 뜻이다. 환주문의 꼭지점에 엎어놓은 구릿빛 절병통은 익살스럽다. 항아리를 이고 가는 모습으로 모든 출입자를 드나들게 했다는 것이다. 겸손을 상징한다.

진흙으로 만든 담벽 곳곳은 연꽃 문양 와당(瓦當)이 박혀있다. 11세기 북송시대 학자 주돈이(周敦頤) 의 애련설(愛蓮說)에 기반한다.

“연꽃은 진창에서 자라면서도 더러움에 물들지 아니하고(泥而不染:이이불염), 몸속은 뚫리어 통하고 생김은 곧으며(中通外直:중통외직), 덩굴이나 가지를 갖지 않고(不蔓不枝:불만부지), 향은 멀리 갈수록 그 맑음을 더한다(香遠益淸:향원익청)”

당파에 휘둘리지 않고 맑은 향을 내겠다는 선비의 뜻이 담겼다. 연꽃 와당은 정문과 강의실인 중정당 처마에도 있었다.

▶성균관 유생 “도동서원 김굉필 문묘에서 모셔야”

허리숙여야 들어갈수 있는 도동서원 환주문

중정당 돌길과 축대가 만나는 중앙에 돌거북의 머리가 튀어나와 있고 처마밑에는 네 마리의 용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용은 등용문(登龍門) 뜻하고 거북은 장수(長壽)를 상징한다. 끊임없이 학문을 탐구하고 벼슬을 얻으면 위민정치 하라는 의미이다.

입장 계단과 퇴장 계단은 액운을 막아주고 잡귀를 쫒는 상상의 동물, 세호(細虎)로서 방향을 지시하는데, 이곳을 견학하는 학생들에게 왜 오르는 계단인지 알아맞히는 퀴즈로 자주 출제된다.

흔적마다 느껴지는 선조들의 숨결에서 후학들을 어떻게 하면 바르게 키울지를 고민했음을 느끼게 한다.

성균관-향교는 공립대학, 서원은 사립대학이다. 성균관유생들은 1570년 4월23일 서원 교육의 리더인 정여창,김굉필,조광조,이언적,이황 등 동방5현을 문묘에 모시자고 선조에게 주청할 정도로, 그들의 마음 씀씀이는 시대의 현인다웠다.

박근혜 대통령도 도동서원을 세 차례나 방문해 이곳에 깃든 교육철학, 섬기는 정치 등에 대해 탄복했다고 대구광역시 관광과 관계자는 전했다.

▶마비정, 말(馬) 부부의 슬픈 전설

마비정 벽화마을 입구

다시 현풍서로-비슬로-안흥길을 따라 북동쪽으로 30km쯤 가다가 담벽의 능소화와 유명한 남평문씨 세거지를 지나면 마비정(馬飛亭) 벽화마을에 도달한다. 슬픈 전설은 벽화마을에 더 큰 정을 느끼게 한다.

마비정 점빵의 미소짓는 두 할머니

달성을 탐내는 세력들이 많아 전쟁이 잦았던 아주 오래전 이곳엔, 숫말 비무와 아름다운 백마 백희가 사랑을 나누고 있었다. 백희는 아름다운 꽃과 약초만을 먹었는데, 이를 구하러 비무가 잠시 떠난 사이, 마고담이라는 장수가 이곳에 찾아와 백희를 천리마로 착각해 진지로 데리고 갔다. 전투에 나가기 전 말이 화살보다 빠른지 실험을 했지만 백희는 역부족이었고, 쓸모가 없다고 판단한 마고담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뒤늦게 고향에 돌아온 비무는 백희의 죽음에 슬피 울면서 어디론가 떠났고, 가끔 그녀의 무덤에 꽃과 약초를 두었다고 한다. 이 얘기를 전해들은 마고담이 뒤늦게 자신의 행동을 뉘우치며 두 말을 위로하기 위해 이곳에 지은 정자가 마비정이다.

전원(田園) 웹툰 같은 이색 벽화마을

통영 동피랑과 동해 논골담길 벽화가 화가들에 의해 그려진 바닷가 그림이라면, 디자인 일을 겸하고 있는 이재도 작가가 일관된 필치로 그린 마비정 벽화마을은 ‘전원(田園) 웹툰’ 시리즈물을 보는 느낌이다.

참새가 맞는 어귀를 지나 첫 갈림길에 접어들면 돌배나무와 느티나무가 하나로 연결된 ‘연리목’을 만난다. 굴뚝엔 시(詩)가 쓰여져 있고, 마을벽 곳곳엔 농촌의 사계가 그려져 있다.

땅바닥에도 대형 말 그림이 그려져 눈길을 끈다. ‘마비정 점방’을 지키는 두 노파는 인적이 뜸할 법한 비 오는 날임에도 외지인이 찾아오자 연신 미소를 지었다.

SBS런닝맨의 촬영지인 이곳에서는 대나무 터널길, 이팝나무 터널길 산책, 인절미 떡메치기, 두부, 찰수제비 만들기 체험도 할 수 있다.

PD출신 김문오 군수의 창의력으로 핀 관광자원

김문오 달성군수

달성 12경에는 문화와 비경이 숨쉰다. 인기를 모으는 곳은 ▷과거 낙동강 물류의 중심지 사문진 나루터 자리에 복원한 사문진 주막촌 ▷일연이 삼국유사 집필을 구상했던 기암괴석(천연기념물 제435호)의 백화점 비슬산 대견사 ▷벚꽃축제가 열리는 용연사 일대의 1.5km길이의 옥포벚꽃길 ▷금호강-낙동강 접점의 국내최대 맹꽁이 서식처로 150만㎡(약45만평) 규모의 달성습지 ▷달성군 개청 100주년 기념으로 세워진 26m높이의 100년타워 등이다.

달성습지는 강의 수위에 따라 습지의 형태가 한반도, 아메리카대륙 등 다양한 모양새를 보여, 갈 때 마다 새롭다.

100여년전 우리나라 최초로 피아노가 유입된 사문진에선 매년 100대 피아노 협연 콘서트가 열리며, 유람선, 나룻배, 쾌속선 등 입맛대로 낙동강을 유람할 수 있는 등 관광인프라가 잘 조성돼 있다. 억새와 낙조의 콜라보는 영남 내륙 최고의 해질녘 풍경이다.

산재해 있던 관광문화 자원은 방송인 출신 김문오 달성군수가 2010년부터 연임하면서 방문객이 편하도록, 즐거움을 느끼도록, 아기자기하게 가꾸도록 기획하면서 변신중이다.

섬김의 정신, 문화, 호국정신이 숨쉬는 달구화

멋이 살아 있고, 영혼이 숨쉬는 달성은 영남의 방패이기도 했다. 백두대간 지맥이 동쪽으로 달음질 치다 낙동강을 경계로 뚝 끊기는데, 달성은 동쪽의 넓은 벌판을 지켰다. 비슬산은 평원 남쪽의 수문장 역할을 한다.

고려가 건국되던 10세기까지 한민족의 통일을 도모하던 세력은 달성을 차지하려 안간힘을 썼다. 백두대간의 험준한 산악지형을 벗어난 살 만한 몇 안되는 평원이기 때문이다.

달성은 부족국가시대 달구화(達句火) 또는 달구벌로 불리다 8세기 중엽 신라 경덕왕때 대구현이 된다. 전주-완주, 수원-화성의 관계 처럼 대구-달성은 완전한 한 몸이다.

달구벌은 5~6세기 신라-가야, 9~10세기 고려-후백제의 각축장이었다.

군사요충지이기도 했기에 논공읍에는 병사들이 집결했다는 뜻의 ‘솔병골’이 있다. 북리쪽에는 적군이 많았다는 뜻의 ‘원수골’이, 고려시대 삼층석탑이 있는 본리 쪽에는 대가야군이 신라군에 크게 져서 망했다는 뜻의 ‘망태골’이 있다.

후백제와 싸우던 고려 개국공신 신숭겸이 전사한 곳이다. 조선시대엔 경상지역 최고 군사령부인 감영이 있었다. 임진왜란때엔 의병장 곽재우가 승전을 올렸고, 일제시대엔 조선국권회복, 독립만세, 농민 항일 운동(가창소작쟁의)이 벌어진 호국의 고장이다.

▶경주 만큼 많은 불로동 고분군

시민의 안식처가 된 불로동 고분군

지금의 달성군 지역은 아니지만 대구비행장 바로 옆 불로동 고분군은 달구벌의 오랜 역사를 보여준다. 서라벌, 개경, 한양이 아닌 달구벌에서 오래전부터 국토의 신인 사(社)와 곡식의 신인 직(稷)을 향해 사직대제를 올리는 점은 예사롭지 않다.

경주의 고분은 큰 것으로 200기 가량 있는데, 주인이 밝혀지지 않은 황남대총을 비롯해 대체로 5세기 이후 만들어져 9세기 무렵까지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부족국가를 통합해 어엿한 왕국의 면모를 갖춘 이후이다.

고문 사이에 보이는 일반인의 봉분

달구벌은 5세기 신라왕국의 핵심인 계림세력에게 복속되던 5세기까지 진한 12소국 중 하나인 탁순국(卓淳國)으로 불렸다는 기록이 있다. 삼척,울진,봉화,영덕일대의 실직국이 계림에 완전히 합병된 것도 5세기쯤이다.

동구 불로동, 입석동에 걸쳐 무려 214기나 발견된 달구벌의 고분군도 만들어지기 시작한 때는 5세기로 비슷한데 6세기 무렵 조성이 끝난다. 크기는 지름 15~20m, 높이 4m안팎, 지하깊이 2m안팎으로 경주 것보다 약간 작다.

필부필부의 봉분, 군왕 고분과 나란히

지역군왕 부부의 묘로 추정되는 불로동 고분

숱한 정치군사세력들이 중앙집권적 왕국이 성립되기 전 부터 이곳을 탐냈다는 점을 감안하면, 무덤의 주인은 영남 지역 패권을 노리던 부족국가 수장들이 아니었을까 상상해본다.

그들은 죽기 직전 달구벌에서 어떤 꿈을 꾸고, 어떤 희망을 쏘았을까. 지금 불로고분군은 역사의 비밀을 묻어둔 채, 센트럴파크처럼 편안한 시민의 안식처로 탈바꿈했다.

지역군왕들의 묘자리 사이 에는 길어야 몇 백년 밖에 되지 않았을 필부필부의 봉분이 예쁘게 끼어 들어있다. 군왕와 백성이 귀천 없이 함께 호흡하는 것 같아, 참 아름답다.

달구벌은 체험과 관광,레저의 종합선물세트이다. 겨울방학 아이들이 힐링하고 아름다운 꿈을 키우기에도, 건강한 먹거리를 즐기기에도 풍요로운 구색을 갖췄다.

abc@heraldcorp.com

<도움말: 대구시청 관광과, 여행전문가 전계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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