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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요광장] 소프트파워와 공무원헌장
정용덕 서울대 명예교수



조직이나 공동체의 구성원들을 특정 방향으로 행동하도록 이끄는 힘을 흔히 하드파워(hard power)와 소프트파워로 구분한다. 법규에 의거한 업무지시나 인사 등이 하드 파워의 예다. 봉급인상이나 특별 상여금 등의 경제적 유인책도 여기에 속한다. 소프트파워는 리더가 설득이나 솔선수범, 의사결정과정의 공개와 참여 등을 통해 구성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켜 순응토록 하는 방식이다. 리더가 지닌 감성적 매력(즉 카리스마)도 여기에 속한다. 양자 가운데 어느 한 가지에만 의존해서는 구성원들을 이끄는데 충분치 않다. 상황에 따라 양자를 적절히 혼합하여 사용하는 힘, 즉 스마트파워가 필요한 이유다.

역대 행정부는 나름대로 내세울만한 행정개혁이 있었다. 1988년에 출범한 노태우 행정부는 국민의 민주화 열망에 따라 수동적이기는 했지만 헌법재판소와 방송위원회 신설 그리고 지방자치 부활 등을 이뤄냈다. 김영삼 행정부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에 걸맞게 ‘금융실명제’를 포함하여 일련의 투명성 관련 입법을 능동적으로 추진했다. 1998년에 출범한 김대중 행정부는 외환위기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친시장적인 ‘신공공관리’ 개혁을 추진했다. 노무현 행정부는 계층제 조직에 참여 개념을 불어넣으려고 노력했다. 이명박 행정부는 ‘작은 정부’ 개혁을 통해 민주화 이후 증대돼 온 정부규모의 축소를 시도했다.

출범한지 3년이 다 되어 가는 박근혜 행정부는 막상 어떤 행정개혁을 추진하고 있는지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다. 인수위원회가 부처급 조직 통폐합과 더불어 내세운 ‘창조경제’의 실적이 무엇인지 모호하다. 또 다른 주요 개혁안인 ‘정부3.0’을 통해 그 핵심 내용인 (공사부문간 혹은 정부내부) 조직간 정보공유와 정책협력이 증진되었다는 징표 또한 보이지 않는다. ‘세월호 참사’를 수습하면서 부처급 조직개편이 더해졌지만, 우려대로 그 효과가 별무임이 ‘메르스 사태’ 대처 과정에서 입증됐다. 그런 가운데, 정부 안팎 모두에서 아무도 주목하지 않고 있지만, 차라리 의미 있는 변화 하나를 찾아 볼 수는 있다. 그동안 소리 없이 추진되어 금년 말(즉, 이번 주)에 공표되는 ‘공무원헌장(civil service charter)’ 개정이 그것이다.



공무원들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힘도 하드파워와 소프트파워로 나눌 수 있다. ‘헌법’에서 ‘국가공무원복무규정’에 이르기까지 무려 10가지나 되는 관련 법규들, 외환위기 이후 도입되기 시작한 다양한 성과제도 등이 대표적인 하드파워들이다. 이처럼 다양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공무원들에 대한 국민 신뢰는 아시아 최하위 수준이다. 하드파워에 더해 소프트파워를 강화하는 스마트파워가 필요한 이유다. 선진국일수록 공공성을 지닌 모든 조직들이 윤리/행동강령(code of ethics/conduct)을 마련하여 구성원으로 하여금 준수하도록 권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번에 공표되는 공무원헌장은 1980년 말 제정된 ‘공무원윤리헌장’을 개정한 것이다. 당시 신군부 집권 세력의 특성에 걸맞게 과도한 국가주의와 민족주의 성향이 짙은 내용이 담겨 있었다. 공무원들의 “생명”과 “몸”을 바치는 의무 조항 등 선진국은 물론이고 우리나라 대법원에서도 더 이상 인정 않는 특별권력관계를 강조하는 내용이 중심을 이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35년 동안 공무원 노조는 강대해졌고, 금년에는 공무원들의 연금혜택을 줄이는 변화도 있었다.

이번에 개정된 공무원헌장은 공무원들이 국가와 국민에 대한 봉사에 더해 인류 보편의 가치에 대한 헌신, 그리고 사회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등 전지구화와 민주화 시대에 부합하는 보다 열린 공공가치를 지향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앞으로 행동강령 또한 마련하여 개정 공무원헌장의 정신을 구체적으로 실천에 옮기는 소프트파워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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