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8ㆍ25 합의 주역 北 김양건은 누구?
[헤럴드경제=신대원 기자] 교통사고로 29일 사망한 북한 김양건 노동당 비서 겸 통일전선부장은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절에 이어 당ㆍ정ㆍ군 고위인사에 대한 숙청과 처형이 빈번하게 벌어진 김정은 시대 들어서도 승승장구를 거듭한 대남라인의 1인자였다.

평남 안주에서 태어나 김일성종합대학 불어과를 졸업한 그는 김 제1위원장의 대남정책뿐 아니라 최근 들어서는 대외정책에서도 핵심 브레인 역할을 맡아 왔다.

북한은 30일 김양건 노동당 비서 겸 통일전선부장이 29일 교통사고로 사망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8ㆍ25 합의 타결 이후 홍용표 통일부장관과 손 맞잡고 웃음을 짓고 있는 김양건(오른쪽) 비서. [사진=헤럴드 DB]

우리로 치면 외교부장관과 통일부장관,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에다 국가정보원 해외파트 담당 차장 역할까지 동시에 수행한 셈이다.

남북관계 주요 장면에 자주 등장한 김양건은 우리에게도 낯익은 인물이다.

2007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간 남북 정상회담 때는 북측에서 유일하게 배석한 인물이다.

남북 정상회담 직후에는 서울을 방문해 노 대통령과 면담을 가졌으며, 2009년 8월에는 故 김대중 대통령 조문을 위한 북측 사절단 일원으로 다시 서울을 찾아 이명박 대통령을 예방하기도 했다.

또 지난 2014년 10월에는 북한의 2인자 황병서 인민군 총정치국장과 최룡해 당비서와 함께 ‘실세 3인방’의 일원으로 인천 아시안게임 폐막식 참석차 전격적으로 인천을 방문한 바 있다.

특히 올해 8월 북한의 비무장지대(DMZ) 지뢰도발과 서부전선 포격전으로 남북간 일촉즉발의 군사적 긴장이 조성됐을 때에는 북한측 핵심인물로 활약했다.

김양건은 서부전선 포격전 직후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에게 보낸 서한에서 “현 사태를 수습하고 관계개선의 출로를 열기 위해 노력할 의사가 있다”고 밝혀 대결국면을 대화국면으로 돌리는데 기여했다.

김양건은 이후 황 총정치국장과 함께 남북 고위당국자 접촉에 나서 김 실장과 홍용표 통일부장관과 ‘무박 4일’간 고위당국자 접촉을 갖고 군사적 긴장 해소와 이산가족 상봉으로 이어지는 남북화해의 물꼬를 텄다.

신대원 기자 / shindw@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
          연재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