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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0세 시대 판결]“불효 못참아”재산 줬다뺏는 소송 급증
해마다 20~30%씩 증가추세
뒤통수 맞은 부모 불효소송 많아
노후 불안감 반영도 한몫



#. 올해 83세인 할아버지 A씨에게 지난 2015년은 ‘끔찍한’ 한해였다. 자식들에게 물려준 재산을 돌려받기 위해 아들 내외 가족과 힘겨운 법정 다툼을 벌여야 했기 때문이다.

사연은 이렇다. A씨는 2013년 8월 손자 명의로 3개의 정기예금 계좌를 만들고 거기에 5000만원을 넣어줬다. 며느리 명의로도 계좌를 개설해 5000만원을 예치했다. A씨는 총 1억원을 며느리와 손자에게 물려줬다. 대신 각 예금에서 매달 발생하는 이자는 A씨가 생활비로 쓰기로 했다. 며느리와 손자도 만기일인 2033년까지 동의없이 예금을 해지하거나 인출하지 않기로 A씨와 약속했다. 하지만 1년 만에 약속은 깨졌다. 며느리가 갑자기 본인과 손자의 계좌를 모두 해지하고 돈을 챙겨간 것이다. 은행 직원의 연락을 받고 이 사실을 안 A씨는 곧바로 법원에 각 계좌의 예탁자명의를 자신으로 바꿔 달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A씨는 “손자와 며느리에게 재산을 물려준 건 단순 증여가 아니라 받는 사람이 약속된 의무를 이행해야 하는 부담부 증여”라고 주장했다. 소송 과정에서 손자는 부담부증여가 아니라고 항변했다.

사건을 맡은 대구지법 서부지원은 “A씨가 증여 후에도 며느리, 손자의 각 통장과 인감을 계속 갖고 있었고, 만기일이 이례적으로 긴 점을 고려하면 A씨가 만기 때까지 해지를 금지하고 예금이자를 받는 것을 부담으로 해 증여한 것”으로 봤다.

결국 1년여 간의 법정 다툼 끝에 지난해 12월 법원이 “손자는 예탁자 명의를 할아버지에게 돌려주라”고 판결하면서 A씨는 물려줬던 재산을 다시 돌려받게 됐다. 하지만 길고 긴 소송전을 치르면서 아들 내외 가족과의 사이엔 깊은 갈등의 골이 패었다.

이처럼 재산을 둘러싼 가족간 법정 다툼은 최근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서울가정법원에 따르면 2011년 한해 154건이었던 상속재산분할사건 접수건수는 2012년 183건, 2013년 200건, 2014년 266건으로 매년 20~30%씩 늘어나는 추세다. 2011년과 비교하면 두 배 가까이 증가한 셈이다.

소송 양상도 전과 달라졌다. 그간 부모의 재산을 두고 자식들간 분쟁이 주를 이뤘지만 100세 시대에 접어들면서 부모와 자식간에도 법정에서 재산 다툼을 벌이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특히 A씨처럼 자식들에게 재산을 물려줬다가 ‘뒤통수 맞은’ 부모 세대가 자식들을 상대로 낸 ‘불효 소송’이 그 중심에 있다.

법원은 자식의 충실한 부양을 조건으로 맺은 증여계약을 ‘부담부 증여’로 보고, 민법 561조에 따라 자식이 약속된 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이미 증여한 재산도 반환하도록 하고 있다.

지난 달 B씨가 ‘효도각서’ 내용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아들을 상대로 ‘물려준 주택을 다시 돌려달라’며 낸 소송에서도 대법원은 B씨의 손을 들어준 바 있다.

이처럼 부모가 자식에게 물려준 재산을 ‘줬다 뺏는’데엔 기본적으로 변심한 자식들의 불효 탓이 크지만 근본적으로 100세 시대에 불안한 노후를 보내는 부모세대의 현실이 담겨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가사 사건을 주로 담당해온 한 변호사는 “부모 세대는 노후에도 자식들을 금전적으로 지원하면서 동시에 스스로 노후 기반을 마련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며 “노후가 불안정한 상황에서 기대했던 자식들의 부양의무마저 지켜지지 않으면서 결국 자식들을 상대로 소송에 나서는 것”이라고 했다.

김현일 기자/joz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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