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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현빈 회장 조정민 음반 제작자 알고보니 '이승철-이현우 제작자'
1년 365일중 340일 정도 정장을 고수하며 아무리 시간이 없어도 사전에 일찍 준비해 커프스 버튼을 챙기며 격식을 차리는 이가 있다. 바로 루체 엔터테인먼트 신현빈 회장이다. 이런 일면만 봐도 일에 자긍심을 가진 채 자기 관리가 확실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하물며 스스로 발굴해낸 가수들의 매니지먼트는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을지 짐작이 간다.

신현빈 회장은 SM 엔터테인먼트 이수만 회장과 서태지와 아이들 데뷔 초 방송 매니저로 활동하고 김동환, UP, 이현우, 박광현, 이덕진, Y2K, 써클, 엠파이어 그리고 지금의 조정민까지 다양한 장르의 가수들을 직접 발굴하고 키워왔다.



신 회장은 자신을 ‘한국 가요계 최초의 PD(Producing Director, 기획자) EP(Executive Producer, 제작자) RD(Road Manager, 현장 매니저) 겸업자’라고 부른다. 요즘 음반기획사는 제작사(프로듀서) 매니저(스케줄 담당) 로드매니저(현장진행) 등으로 업무를 분업화하고 있다. 하지만 신 회장은 진정한 매니저라면 PD EP RD의 세 가지 기능을 모두 해낼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렇기 때문에 신현빈 회장은 아직도 현장에서 떠날 수가 없다.

그의 발자취를 돌아보려면 1985년으로 거슬러간다. 개그맨 출신 음반 제작자 장고웅의 신촌뮤직에 입사해 이수만과 최혜영의 매니저로 일을 시작했다. 이후 김수희를 관리하다 독립해 김동환을 가수로 탄생시켰다. 1980년대 방배동에는 작곡가 김지환을 중심으로 한 발라드 뮤지션과 그 외의 언더그라운드 뮤지션들이 모여 음악의 장을 피웠다. 어느 날 신 회장은 방배동의 한 유흥업소에서 악사로 일하던 김동환을 만났다.

김동환은 들국화의 최구희와 함께 밴드를 결성해 콘서트 무대에 올랐으나 생계 문제로 밤에는 악사로 밤무대에 서고 있었다. 그런 김동환을 신 회장은 단번에 알아보고 즉시 계약했다. 신 회장은 전 재산 2000만원으로 솔로 앨범에 착수하고, 제작비 및 PR비는 조폭에게 빌렸다. 그의 이런 패기 어린 선견지명은 '묻어버린 아픔'이 40만장이 넘게 팔리는 대히트로 돌아왔다.



2집을 끝으로 김동환과 결별한 신 회장은 이번에는 1989년 여의도 별관 뒤 동북빌딩 1층에서 이승철과 운명적인 만남을 하게 된다.

당시 이승철은 김태원과 함께 부활로 지구레코드에 전속돼 있었다. 신 회장은 친분이 있던 지구레코드 임정수 회장을 만나 이승철을 달라고 했고, 임 회장은 부활이 받아간 ‘마이킹’(선수금) 1500만 원에 부활과의 계약을 해지해줬다. 신 회장은 이승철과 전속계약을 맺는 대신 김태원은 도레미레코드에 소개해 ‘마지막 승부’의 탄생에 기여한다.

신 회장의 승승장구는 이번에도 이어졌다. 이승철의 솔로 데뷔 앨범에 작곡가 박광현 신재홍 양홍섭 김진룡으로 라인업을 완성해 '안녕이라고 말하지마' '마지막 나의 모습' '잠도 오지 않는 밤에' 등 앨범에 수록된 많은 곡들이 지금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는 '국민 히트곡'이 된 것. 이 앨범은 300만장에 가까운 판매고(비공식)를 올렸다.

이렇게 성공한 신 회장은 곧바로 이듬해인 1990년 직접 음반 제작 유통사 동양레코드를 차리고 이후 7년간 승승장구한다. 그는 특히 소니뮤직 EME BMG 워너뮤직 폴리그램 등 당시 한국시장에 직접배급사로 들어온 다국적 레이블과의 직교류로 세계 음악시장의 흐름을 읽을 수 있는 큰 공부를 한다.

그리고 이승철에 이어 ‘비의 이별’을 타이틀곡으로 한 박광현의 음반을 40만 장 이상 판매하며 그를 스타덤에 올린다. 하지만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시피 이승철과 박광현은 마약사건에 연루됐다. 그렇다고 주저앉을 신 회장이 아니었다. 이덕진 이현우 좌회전 UP Y2K 사준, 써클 등을 발굴해내며 승승장구한다.

특히 써클은 가요사에 한 획을 긋는다. 신 회장은 1997년 11월 22일 서울 신라호텔에 일본의 메이저 연예기획사 에이벡스를 비롯해 아무로 나미에의 소속사 스피드 맥스, 그리고 라이징 프로덕션의 경영진을 초대해 한일문화개방축하 리셉션을 연다. 이는 본격적인 한일문화교류 및 한류열풍의 효시 격이었다. 지금은 일반화된 한일중 다국적 아이돌 그룹의 시초이기도 하다.

이후 잠시 업계를 떠나 미국에 있었던 신현빈 회장은 2012년 3월 자신이 가장 사랑하고 잘할 수 있는 제작자로서 연예계에 돌아왔다.

"예전과 달라진 한국 연예계의 시스템이라면 미국에서 제가 겪었던 경험을 통해 다시 한 번 도전할 수 있을 것이라는 용기가 생겼어요. 자신감을 가지고 귀국하게 됐어요. 그 동안의 인맥을 활용해보려 했는데 환경이 많이 바뀌었더라고요. 인심도 많이 사나워졌고요. 그 때 제가 다시 복귀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신 분이 팬엔터테인먼트의 박동아 회장입니다."

신현빈 회장은 지금의 대세 걸그룹 EXID를 신사동호랭이와 함께 데뷔시켰다. EXID의 유닛 다소니까지 세상에 내놓은 그는 EXID를 신사동호랭이에게 모두 넘기고, 13억원으로 아이돌그룹 엠파이어를 제작했다. 엠파이어는 실력과 퍼포먼스는 물론 출중한 외모를 갖춰 뜨거운 반응을 얻었으나 멤버 중 3명이 군대에 입대하게 됐다. 하지만 한 줄기 빛이 다시 그에게 비췄다. 바로 지금의 '트로트 여신' 조정민을 제작한 것이다. 처음에 가수 설운도로부터 트로트의 제안을 받았지만 당시 망설였다. 김수희라는 트로트 가수의 매니저를 해보긴 했지만 직접 트로트 음반을 프로듀싱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망설임은 길지 않았다.



신현빈 회장은 초심을 가지고 시간을 돌린 채 모든 스케줄에 직접 발로 뛰었다. 그렇게 그는 다시 한 번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 MBC '라디오스타'에서 입담을 뽐내던 조정민, 쎄시봉 콘서트 최초 게스트, KBS2 '불후의 명곡'에서의 조정민 무대는 허투루 이뤄진 것이 하나도 없다. 물심양면으로 지원한 그의 노력과 수고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신현빈 회장이 수장으로 있는 루체엔터테인먼트는 조정민 외에 힙합 트리오 립서비스, '히든싱어' 우승자 3명을 모은 발라드 트리오 더히든, 레이디가가의 투어에 비트박서로 올랐던 한요한과 함께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준비를 하고 있다. 외에도 주영훈, 박종진 앵커, 윤지영 전 SBS 아나운서 영입, 글로벌 토털 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 도약 중이다. 또 대규모 엔터테인먼트를 입수합병할 계획으로 코스닥 진입을 앞두고 있다. 그가 써내려갈 신화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유지윤 이슈팀기자 /jiyoon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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