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건축법 25조 수정안’이 뭐길래…젊은 건축가 ‘SOS’…‘젊은건축가상’ 조진만 조진만아키텍츠 대표
건축사시험 점수로 획일화는 모순
현장선 CAD 작업하는데 시험은 도면
미국·네덜란드와 같이 다면평가 해야
설계건축가 배제 별도 감리사 고용은
안전 화두 내세우며 실상은 ‘나눠먹기’
건축 생태계 자체를 황폐화 시키는 것


조진만(41) 조진만아키텍츠 대표는 ‘공공 수주의 달인’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젊은 건축가다.

서울 은평구 산새마을 두레주택, 한양도성 순성안내쉼터에 이어 최근 신사동 공공도서관, 서울시청 오케스트라 가변무대 설계까지 줄줄이 따 냈다. 

조진만 조진만아키텍츠 대표가 자신의 사무실에서 포즈를 취했다. 김아미 기자/amigo@heraldcorp.com

건축가 조진만은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가 수여하는 ‘올해의 젊은 건축가상’, ‘김수근프리뷰건축가상’까지 수상한 건축계 ‘뜨는 인물’이지만, 조진만아키텍츠는 아직 3년도 채 안 된 신예다. 2002년 한양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이로재’에서 실무를 시작, 세계적인 건축가 렘 쿨하스가 이끄는 네덜란드 건축사무소 OMA를 거쳐 다시 한국에 들어와 자신의 이름을 딴 건축사무소를 낸 게 2013년이다.

마포 오래된 오피스 건물에 직원은 고작 다섯명. 각종 서류 작업 등 작은 건축사무소가 하기엔 버거운 관공서 일을 잇달아 따 내고 있는 건 오로지 실력 때문이다.

7일 조진만아키텍츠 사무실에서 건축가 조진만을 만났다. 사실 ‘잘 나가는’ 건축가를 만나 요즘 얼마나 잘 나가는지 듣는 자리는 아니었다. 그는 최근 건축계 ‘뜨거운 감자’인 ‘건축법 25조 수정안’, 즉 연면적 330m² 이상 소규모 공동주택에 대해서도 설계에 참여하지 않은 감리자를 따로 지정해야 한다는 설계ㆍ감리 분리안을 놓고 먼저 ‘SOS’를 요청해 왔다.

실력있는 젊은 건축가를 만나 한국 건축계 해묵은 논쟁을 놓고 갑론을박을 펼쳤다.

-최근 공공 프로젝트를 많이 딴 걸로 알고 있습니다.

▶한국에 사무실을 내고 첫 해에는 건축적인 방향을 모색하는 시기였어요. 주로 국내외 공모전을 겨냥했죠. 꼭 이기겠다는 마인드 없이 했더니 다 떨어지더군요. 그러고 나서 처음 작업하게 된 게 판교 층층마루집입니다.

-조진만아키텍츠 하면 층층마루집이 많이 회자되더군요.

▶층층마루집은 3대가 함께 사는 대가족을 위한 프로젝트였어요. 성공한 샐러리맨, 젊은 사업가들의 판타지가 펼쳐지는 곳이라는 판교라는 공간의 상투적인 클리셰를 없애고, 8명 대가족을 위한 ‘소우주’를 만드는 것에 포커스를 맞췄죠.

-최근 페이스북에 한국 건축사 시험에 합격하고 난 후 소회를 밝힌 글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한국의 건축사 시험이라는 게 쿼터를 정해서 솎아내는 시험입니다. 실수를 하게끔 질문을 꼬아 놓죠. 건축이라는 게 해법이 다양한데 그걸 획일화해서 채점한다는 게 모순이 있는 것 같아요. 미국의 경우 종합적이고 다면적인 평가를 하는데 반해 한국은 일회성에 그치는 시험이죠. (한국은 건축사법에 의해 건축사 자격증 취득자만이 건축물을 설계ㆍ감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 때문에 건축사 시험의 실효성 논란, 건축사와 건축가라는 이중 명칭 논란 등이 해결되지 않은 숙제로 남아 있다)

-건축사 시험만 그런건 아니잖습니까? 원래 자격증 시험이 어렵잖아요.

▶그렇습니다. 그런데 의사, 변호사와는 다르게 건축가만의 복합적인 특성이 있어요. 공공의 영역에 해당한다는 점에서요. 집은 집주인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도시 가로(거리)의 한 영역으로 존재하며 풍경의 일부가 됩니다. 그런면에서 좀 더 복합적인 평가가 이뤄져야 한다는 겁니다. 서울역 고가 공중공원을 설계한 네덜란드 건축가 위니 마스(Winy Maas)가 건축사 자격증이 있는 건 아니거든요. 그는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했죠.

-그럼 시험을 없애야 된다는 뜻인가요.

▶미국처럼 지속적인 평가 과정을 거쳐 신뢰할만한 시험이 되는 방법이 있고, 또 하나는 네덜란드처럼 완전히 오픈해서 건축을 전공하든 안하든 누구나 건축물을 설계할 수 있게 하는 방법이 있겠죠. 당국이 지정한 요건에 맞게 설계를 한다면 말이에요.

-한국 건축사 시험의 큰 문제가 뭔가요.

▶쿼터가 10% 미만이에요. 적을 때는 7~8%까지 떨어지죠. 게다가 제도판을 놓고 도면을 그려요. 지금 건축 도면 작업은 모두 캐드(CAD)로 하고 있는데 말이에요. 시대에 뒤쳐져 있는 거죠.

-그래도 건축사 자격증이 있는 사람이 건물을 설계해야 한다는 게 상식 아닌가요.

▶주로 안전 문제가 많이 제기되는데요. 시험에 통과한다고 안전한 건물을 짓는 건축가가 되는 건 아닙니다. 정해진 시간 안에 완성된 도면을 그리는 시험에서 어떻게 안전 부분까지 평가를 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그 어떤 건축가도 건물을 쓰러지게 설계하진 않습니다. 설계 단계부터 구조계산, 토목, 설비, 에너지, 조경 등 많은 영역의 전문가들이 관여하기 때문입니다. 도면 자체는 시스템적으로 취약하게 그릴 수 없게 돼 있는거죠. 도서관 하나 설계하는데도 협력업체가 8~9개 돼요. 건축가는 이를 조율하는 거고요. 구조물의 안전 사고 대부분은 추후 시행 단계에서 벌어지는 겁니다.

-최근 설계 감리 분리안도 이러한 안전 문제를 논리의 근거로 삼고 있습니다.

▶설계를 한 건축가를 배제시키고 별도의 감리회사를 고용한다는 건데, 표면적으로는 ‘안전’을 화두로 하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나눠먹기가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관공서 등 큰 프로젝트 80~90%는 큰 건축사무소가 가져가고, 소규모 건축물은 젊은 건축가들, 중소 건축사무소들의 ‘작은 파이’에 불과한 시장인데, 이걸 나눠 갖자고 싸우는 거죠. 설계ㆍ감리 분리안은 건축사협회장 선거 때마다 전가의 보도처럼 등장하는 공약이기도 합니다. 프로젝트가 없고 영세한 건축사들까지 ‘해피’해질 수 있도록 일감을 주겠다는 공약인거니까요.

-그렇다면 설계, 감리는 반드시 건축가 한 사람이 다 해야 한다는 건가요.

▶중국 마오쩌둥 일화에 참새가 곡식을 먹는다고 참새를 때려 잡았다가 그 다음 해에 메뚜기가 이상 증식을 해서 참새가 곡식을 먹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대기근이 생겼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그 때 죽은 인구가 히틀러가 죽인 인구보다 많았다고 하지요. 안전을 이유로 자율성을 구속하는 건 결국 건축 생태계 자체를 황폐화시키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건축이 공공의 영역에 해당한다고 했죠. 그렇다면 건축가의 윤리나 도덕성 같은 것도 설계 도면을 그리는 것 만큼 중요한 일 아닌가요. 건축사 시험에서 이런 부분을 평가하는 건 어떨까요.

▶좋은 생각인 것 같네요. 언어를 통해서 사고를 체계화하고 그것을 형태로 구현하기 위해서 논술 시험을 보는 것도 방법인 것 같습니다. 저는 시험 자체가 부정적이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공공성 측면에서 좀 더 종합적인 평가가 가능한 시험으로 업그레이드 돼야 할 것 같습니다. 다행히 건축사협회에서도 해외 건축사 사례들을 수집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앞으로 좋은 방향으로 변하겠지요.

김아미 기자/amigo@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