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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기훈 기자의 극장前] 체스판에 불붙은 냉전…영화 ‘세기의 매치’
[헤럴드경제=김기훈 기자] 1972년 아이슬란드의 레이캬비크에서는 ‘세기의 매치’가 열렸다.

도전자는 미국의 바비 피셔(토비 맥과이어). 6세에 체스를 시작해 13세에 미국 체스계를 제패하고 15세에 최연소 그랜드 마스터 타이틀을 거머쥔 체스계의 천재다.

그가 도전한 상대는 소련의 보리스 스파스키(리브 슈라이버). 스파스키는 무패 신화를 자랑하며 1969년부터 세계 정상을 지켜온 소련의 ‘체스 황제’다. 이들의 대결은 ‘소리 없는 제3차 세계대전’으로 불릴 만큼 전 세계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른바 냉전(Cold War)의 시기였다. 미국과 소련은 자유주의와 공산주의 진영을 대표하며 ‘총성 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두 사람의 체스 대결은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었다. 특히 세기의 대결이 펼쳐진 그해 베트남전에서 미국의 패색이 짙었다. ‘워터게이트 사건’이 불거지며 미국의 닉슨 대통령은 정치적으로 퇴임 압력을 받고 있었다. 미국과 소련은 체스라는 게임을 통해 자신들의 지적 우월성을 입증하고 싶었다.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린 만큼 두 사람의 체스 경기를 두고 신경전도 치열했다.

피셔는 일생일대의 승부를 앞두고 심한 압박감에 시달리게 된다. 첫번째 경기를 실수로 스파스키에 내주면서 피셔는 소련의 정보기관 KGB가 자신을 도청하고 있다는 망상에 시달린다. 피셔는 결국 두 번째 경기에 나서지 않고 몰수패를 당하게 된다.

세번째 대결을 앞두고 피셔는 무리한 조건을 내건다. 경기에 몰입하기 위해 카메라를 치우고 관객 없는 공간에서 체스를 두겠다는 것. 분명 무리한 요구였지만 피셔와 진정으로 승부를 겨뤄보고 싶었던 스파스키가 조건을 받아들이며 재대결이 성사된다. 두 경기를 내주고 궁지에 몰린 피셔는 ‘자살수’를 내세워 반전을 꾀한다.

얼핏 영화는 ‘사각의 링’을 체스판으로 옮겨온 듯한 느낌을 준다. 록키 발보아가 소련의 권투 선수 이반 드라고를 쓰러트리는, 반공과 냉전 논리로 무장한 영화 ‘록키4’를 떠올리게 만든다.

하지만 감독 에드워드 즈윅은 냉전의 광기에 사로잡힌 미국의 자화상을 냉정한 시선으로 돌이켜 보고 있다. 무궁무진한 체스의 경우의 수를 헤아리다 결국 광기로 빠져드는 바비 피셔의 창백한 얼굴은 시대의 얼굴로 읽힌다. ‘세기의 매치’는 미국의 승리에 대해 ‘승전고’를 울리는 작품이 아니다. 되레 냉전시대의 유산을 반추하게끔 만든다.

영화의 원제는 ‘폰의 희생(pawn sacrifice)’이다. 장기로 치면 ‘폰’은 ‘졸’에 해당한다. 냉전의 시대, 집단적 광기에 희생된 개인을 뜻하기도 한다.

영화 ‘스파이더맨’ 시리즈로 익숙한 토비 맥과이어가 미국의 체스 천재 바비 피셔로 분해 강렬한 연기를 선보인다. 슈퍼 히어로가 아닌 토비 맥과이어를 기억하게 될 대표작으로 손색이 없을 듯하다.

‘엑스맨 탄생:울버린’에서 ‘울버린’의 형 ‘빅터’로 국내 팬들에게 알려진 리브 슈라이버가 보리스 스파스키 역을 맡아 차분한 매력을 발산하다.

28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115분.

kih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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