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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47일간의 세계여행] 81. 고통도 사람도 익숙해지고…산티아고 길 위의 수다
-까미노 데 산티아고 +10:산토도밍고 데 라 칼사다에서 에스피노사 델 까미노까지 30.4km


[헤럴드경제=강인숙 여행칼럼니스트] 밤새 라디에이터 옆에서 자서 따뜻하게 잠도 자고 빨래도 잘 말랐다. 일찍 일어나서 세수하고 있는데 케이트가 옆에 서더니 자기 손을 보라고 한다. 오십 대쯤 되어 보이는 케이트는 자신의 두 손이 어제보다 커졌다며 얼굴을 찌푸린다. 걷기가 힘들어서 몸이 어제보다 부은 것 같다. 며칠 전 콜롬비아 아줌마가 소화가 안된다고 힘들어하던 생각도 난다. 그녀의 손은 아주 차가웠었다. 이만큼 걸었으니 다들 어딘가가 아픈 것이 이상한 일도 아니다. 세면대 앞 거울 속의 그녀에게 위로의 말을 해준다.


케이와 함께 주방으로 가서 어제저녁에 사 둔 계란으로 프라이를 해 먹고 남은 것은 삶아서 배낭에 챙긴다. 아침에 주방을 애용하는 순례자는 많지 않다. 걷다 보면 데사유노를 사 먹고 가는 사람들이 많은데 비해 케이와 나는 아침을 잘 챙기는 순례자들이다.

해가 떠오르는 시각이라 긴 그림자가 서쪽을 향한다. 온종일 걷기 위해 일어나는 이런 아침이 벌써 열흘째, 이제 걷는 것은 거부할 수 없는 일상이다. 일상의 시간을 쪼개어 이곳에 와서 걸어가는 사람들 모두가 멋진 사람들이다. 그만큼의 시간에 다른 것을 해도 될 텐데 굳이 이 길에 들어서서 “사서 고생”하는 순례자들…. 그렇지 않아도 서로에 대한 이해와 공감의 깊이가 다른 게 사람인데, 언어와 문화까지 다르니 속 깊은 이야기를 내어놓긴 힘들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하지만 함께 길을 걷는다는 것만으로 형성된 공감대가 때론 눈빛만의 대화를 가능하게도 한다.


양들도 아직 일어나지 않은 아침, 양치기 개는 낯선 사람의 등장에 경계를 한다. 충직하기도 하다. 조금 있으면 양들도 깨어 풀을 먹으러 이동하고 개도 들판을 자유롭게 뛰어다닐 것이다. 소소한 풍경을 바라보는 것이 좋다. 그렇게 걸으면서 무념무상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도 알게 되었다. 가만히 걸어도 ‘생각의 먼지’가 수도 없이 흩날리고 있다. 어제 내 엽서에 고마워하던 친구 생각이 머릿속에 그대로 있다. 하릴없는 발걸음, 친구 언니의 쾌유를 빌며 하루를 걷는다. 보잘 것 없는 이 걸음이 힘이 될 수만 있다면, 이렇게 작은 마음도 보탬이 될 수 있다면 그렇게라도 하고 싶다. 


라리오하(La Rioja) 지방에서 까스티야이레온(Castilla y leon) 지방으로 바뀌는 경계를 지난다. 스페인 북부지역을 동에서 서로 관통하며 걷는 발걸음이다. 계속 걸어와 이어진 길이지만 ‘경계’라는 단어가 마음가짐을 새롭게 한다. 여기서부터는 새로운 풍경 속을 걸을 수 있을까? 지금까지와는 다른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을까?

아직 추위가 가시지 않은 작은 마을에는 인기척이 드물다. 마을에 들어서면 반기는 것은 개와 고양이들이다. 사람이 다가서면 눈치 보고 도망가는 놈들이 대부분인데 오늘 만난 살찐 야옹이는 낯선 사람을 개의치 않고 천천히 뒤를 따라온다.


시골마을 작은 헛간은 나무로 만든 문이나 흙벽에 기와를 이고 있는 모습이 우리나라 농가와 비슷한 모습이어서 눈길이 간다. 문 옆에 그려진 투박한 노란 화살표도 정겹게 보인다. 까미노 표지들은 순례자를 산티아고로 가는 길로 안내한다. 까미노 위의 이 화살표처럼, 인생길 어디에도 표지가 있는데 그걸 못 보고 지나치는 것은 아닐까? 


발걸음은 그라뇽(Granon)이라는 마을의 종탑에서 잠시 멈춘다. 어떤 마을이건 규모에 상관없이 종탑에 종이 두 개 달려있는 성당이 있다. 그냥 지나칠 때도 있지만 뎅뎅뎅 울리는 종소리를 들으며 걸을 때도 있고 성당 안을 기웃거릴 때도 있다.

어느 집 앞 벤치에서 지친 다리를 쉬어간다. 잠깐이나마 배낭을 내려놓고 물 한 모금을 마실 수 있다는 것, 햇살을 받고 실눈을 뜨고 앉아 지친 몸을 위로할 수 있다는 것으로도 만족이다. 까미노 위에선 욕망이란 단어는 사라진다. 일용할 양식과 머리를 눕힐 지붕을 구하면 좋겠다는 작은 바람만이 있을 뿐이다.

산티아고까지 576km, 완전한 일직선로의 거리가 아니라서 산티아고까지의 거리는 늘었다 줄었다 하는 것 같다. 산티아고는 가늠할 수 없이 멀지만 이 하루는 내 발끝에 달려있다. 걷는다는 것 자체가 일상인 지금은 산티아고까지 남은 거리가 중요하지 않다. 그냥 오늘 하루 주어진 걸음을 걸을 뿐이다.


동에서 서로 이동하는 길이라 마을의 끝에는 거의 공동묘지가 있다. 아침 찬바람 속에 묘지를 만날 때도 있고 어떤 경우에는 아름다운 묘지 앞에 서서 한참을 멍하니 서 있게도 된다. 오늘 지나가는 마을에서는 공동묘지 앞 공터에 알록달록한 미끄럼틀과 시소가 설치된 색다른 풍경이 발목을 잡아끈다. 세상에 없는 사람들의 앞마당에서 뛰노는 아이들을 상상하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삶과 죽음의 공존이라는 말이 들어맞는 장면이라 특별히 기억에 남는다.

사는 것과 신에게 엎드리는 것, 죽는 것이 같은 공간에서 행해지는 작은 마을들이야말로 어쩌면 완전한 하나의 ‘세계’다. 여태껏 내가 알던 세상은, 너무 많은 것들이 거대한 외관의 이면에 숨어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까미노에서는 하루에도 몇 번이나 산 사람의 세상을 걸어와 성당의 종소리를 들으며 죽은 자들의 인사를 뒤로 하고 길을 떠나게 된다. 그것은 아주 소소하고 너무도 담백하게 삶을 들여다보게 한다.


알베르게로 안내하는 익살스러운 그림이 있는 마을을 지나게 된다. 성수기에는 순례자도 많아 알베르게도 많이 문을 열고 서로 경쟁도 치열하다고 하더니, 비수기인 지금은 소용이 없는 사립알베르게나 호텔을 안내하는 광고도 많다. 다음 마을에 접어드니 역시 아름다운 성당이 기다린다. 까미노를 상징하는 여러 그림들이 기억에 남는 마을, 벨로라도(belorado)다. 순례자를 형상화한 그림이나 까미노 표지만 만나도 반갑다. 그 순례자의 모습에 나를 대입시키게 된다. 페레그리노(Peregrino)라는 단어는 너무나도 익숙해졌다.


걸음은 걸을 만한데 점심거리를 준비하지 않아서 벨로라도의 레스토랑에서 거하게 10유로짜리 메뉴델디아(Menu del Dia)를 사 먹는다. 가벼운 점심을 먹는 사람들 사이에서 배부르게 코스요리로 와인까지 마신다. 식사 중 음료로 제공되는 와인은 보통 한 잔을 주지만 하우스 와인은 오늘처럼 한 병을 주기도 한다. 포만감에 기분이 좋아진 케이와 나는 그 한 병을 다 비우고 한 시간쯤 푹 쉬고 여유를 부린다. 오늘은 처음으로 30km를 걷기로 해서 힘내 보자고 하는 것이다.

다른 날이면 알베르게에 도착하고도 남을 시각에 다시 일어선다. 20km를 넘게 걷고 오랜 시간 앉았다 일어서자니 발걸음을 떼지 못할 정도로 발이 아파온다. 그래도 일단 일어서니 걸을 만하다. 배는 부르지만 알코올 기운에 기분도 적당히 좋아져서 남은 거리를 열심히 걷게 된다. 


그러나 이번에도 복병은 있다. 거의 5km를 지나야 다음 마을이 나오는데 대지의 복사열이 뜨거워지는 시간에 알코올 기운을 품은 채 걷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늘도 쉴 곳도 없는 길을 걷는 우리에게 태양은 그대로 내리쬔다. 초봄의 햇빛도 이렇게 힘든 걸 보니 이 곳 사람들이 왜 그리 시에스타를 엄격히 지키는지 알 것만 같다. 그리고 오늘 배운 또 하나, 걸을 땐 배가 부르면 안 되는 거였다.

이곳은 여태 까미노를 걸으면서 하룻밤을 묵는 마을 중에서는 규모가 가장 작다. 알베르게라고 해야 그저 소박한 스페인 농가일 뿐이다. 1층의 리셉션(?)도 작은 테이블 하나에 소박한 소파 한 개가 전부, 당연히 상주하는 사람도 없다. 머뭇거리던 차에 갓 벗어놓은 어느 순례자의 등산화와 지팡이를 발견한다. 적어도 한 사람은 오늘 이곳에 머무는 것이다.


빈 사무실에서 기다리자니 방명록이 보인다. 작은 마을이라 묵지 않고 그냥 지나치는 순례자들이 많아서인지 글도 몇 개 없다. 다행히 지난 1월 이곳을 다녀간 한국인들이 쓴 글이 있다. 시설은 별로지만 친절한 곳이라고 적어 놓은 걸 보니 안심이 된다. 잠시 후 푸근한 인상의 오스피탈 레로 가 온다. 소박한 알베르게에서 크레덴시알에 도장 찍어주고 내는 알베르게 비용은 단 5유로, 점심을 10유로에 해결했으니 오늘은 뭔가 거꾸로 돌아가고 있다.
이층으로 안내받은 여기 알베르게는 영락없는 순례자 숙소다. 두 개의 방에 낡은 침대가 다섯 개씩 있을 뿐이다. 가정집을 개조한 듯, 세탁기와 욕조, 양변기가 있는 목욕탕 하나와 장작을 태우는 작은 주방이 있다. 안 그래도 작은 마을인데다 비수기인 요즘 묵어가는 사람이 거의 없는 것 같다. 투박한 느낌이 풀풀 풍긴다.

알베르게 문 앞에 놓여 있던 등산화는 다른 순례자의 것이 맞았다. 배낭을 풀어놓고 있는데 먼저 도착해서 외출하고 돌아온 이탈리아인 로렌조가 인사를 한다. 다섯 개의 침대를 세 사람이 쓰게 되어 침대가 남는다. 그는 빈 침대에 자신의 모든 짐을 꺼내 놓더니 이번에는 옷을 하나씩 벗는다. 그러더니 삼각팬티만 입은 채로 돌아다닌다. 관심 없는 척 하고 있지만 당황스럽긴 하다. 케이가 동행이어서 다행이긴 하지만 여하튼 오늘 밤은 남자 둘과 같은 방에서 자야 하는데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다. 케이가 나만 들으라는 듯 한국말로 농담을 한다. “누나 오늘 횡재했네요. 하하” 다시 방으로 들어온 로렌조가 바지를 입고 짐 정리를 하다가 배낭에서 소중하게 비닐에 싼 두툼한 성경책을 꺼내서 보여준다. 까미노에서는 누구든 하나라도 짐을 덜고 싶은 게 인지상정인데 이 사람, 보통사람이 아닌 것 같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로렌조가 옷을 벗은 것은 그저 빨래를 정리하고 몸을 씻고 싶었을 뿐이라고 한다. 빨래를 말리는 게 공통 관심사라 서로의 빨래를 건조대에 널어 장작을 피우기 시작한 따뜻한 주방에 옮겨 놓는다. 국적 초월 남녀노소 다들 비슷비슷하게 걷고 살아가는 게 까미노의 매력이다. 누구나 한 사람의 순례자로 걸어가는 여정일 뿐이다.

점심을 거하게 먹어서 저녁은 생략하기로 하지만, 로렌조와 함께 오스피탈레로가 운영하는 알베르게 옆 작은 바로 가기로 한다. 로렌조는 저녁을 사 먹고 우리는 맥주만 한 잔씩 마신다. 까미노에서 만난 사람 중 가장 잘생기고 몸도 좋은 로렌조는 반전이 있는 사람이다. 남부 이탈리아의 해변구조대로 일한다는 이 청년은, 멋진 외모와는 정반대로 영적인 관심이 지대하다. 아까 두꺼운 성경책과 그의 말들이 이제야 연결이 된다. 게다가 서양인으로는 드문 완전한 채식주의자다. 자기가 먹는 콩요리도 굳이 먹어보라고 얼마나 권하는지 맛이라도 봐야 했다. 며칠 전 까미노를 함께 걷다가 부상 때문에 뒤쳐졌다는 킴이라는 한국인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정도 많고 특이한 사람이다.

바(bar)라고 해봐야 오스피탈레로 아저씨와 그의 부인, 아들, 그리고 순례자 셋이 전부다. 더 이상 손님이 찾아오지 않는 소박한 곳이다. 영어는 서툴러도 스페인어는 달변인 이탈리아인 로렌조 덕분에 오스피탈레로 아저씨와도 이야기를 나눈다. 작은 마을의 비좁은 바가 웃음소리로 채워진다.

불빛도 별로 없는 마을에 어둠이 깔린다. 와이파이 같은 건 꿈도 꿀 수 없는 마을에 밤이 찾아온다. 알베르게의 소박한 방에 들어가 침낭을 펴고 삐걱대는 작은 침대에 눕는다. 모든 여행길이 그래 왔지만 이 발걸음은 더욱 특별한 느낌이다. 열흘을 걸어온 발바닥이 욱신거리고 발등은 쑤시고 몸은 점점 힘이 드는데도 마음속 저 깊은 바닥에서는 생생한 무언가가 기분 좋게 꿈틀거리고 있다.

정리=강문규기자mkk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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