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는 작년에도 용산구, 강동구, 관악구 등에서 몇 차례 유사한 사고가 발생했었는데, 이러한 사고들이 최근에 왜 잇달아 발생하는지 면밀하게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작년 설 연휴 때 용산역 앞에서 굴지의 대형 건설회사가 시행 중인 아파트 공사장에 연접한 도로가 꺼지면서 버스에서 막 내린 젊은 남녀 둘이 갑자기 땅 속으로 사라져 버리는 사고가 발생한 적이 있다. 다행히 크게 다치지는 않았지만사고 장면은 충격적이었다.
당시 현장조사 결과 두 가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하나는 공사 중에 땅을 안전하게 파기 위해 설치하는 흙막이시설에 사고 전부터 결함이 발생해서 물과 함께 미세한 흙 입자가 계속 빠져 나가고 있었음에도 적정하게 관리되지 않아 사고로 이어졌다는 것인데, 놀라운 것은 지하 9층까지 파내려 가는 공사를 하는 현장에 관련분야 전문가가 단 한 사람도 상주 근무하고 있지 않았다는 점이다. 애당초부터 사고의 위험을 갖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 하나는 건축허가나 공사 착공 전에 시청이나 구청 등에서 미리 전문가들이 지하 굴착공사의 안전성을 심의하던 ‘건축공사장 굴토심의 제도’가 2005년 12월에 규제개혁 차원에서 조례에서 삭제돼 없어진 바람에 공공기관에서 아무도 이 현장의 굴착공사가 안전한지 여부를 살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결국 대로변에서 지하 9층 깊이까지 땅을 파는 공사를 관청에서 사전에 안전도 살펴보지도 않고 허가를 내주었고, 공사 중에는 그와 관련된 전문기술자가 시공사든 감리사든 현장에 한 사람도 없이 공사를 진행하다가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이는 도로를 통행하는 시민의 안전을 고려하면 절대 용납될 수 없는 것이다.
서울시는 사고 직후 바로 굴토심의를 되살려 우선 시행하고, 지난해 7월에는 조례를 개정해 깊이 10m 이상, 지하2층 이상 굴착하는 건축공사에 대해서는 착공 전에 굴토심의를 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이어 10월에는 소규모 굴착공사장에 대해서도 허가 및 공사 착공 전에 ‘인접 석축ㆍ옹벽 등 영향 검토 및 위해방지대책’을 제출받아 검토하도록 제도를 개선했다.
문제는 많은 지역에서 노후 주택지 정비방식이 전면철거 방식에서 현지개량 방식으로 바뀌었고, 이에 따라 노후 주택가에서 소규모 건축공사가 산발적으로 진행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녹번동이나 화곡동에서 일어난 사고와 유사한 사고들이 앞으로 더 많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요컨대 도시정비와 관련된 조건과 환경이 바뀌었고, 이에 따라 소규모 굴착공사에 따른 주변의 노후주택이나 시설물의 사고 위험이 커졌다고 할 수 있다.
노후주택지에서 굴착공사를 하는 것은 고난도의 기술과 집중력을 요한다. 더욱이 굴착 공사장 주변의 도로 하부에는 노후된 도시가스관, 상하수관 등이 매설돼 있을 수 있는데 굴착 과정에서 도로의 침하나 함몰이 발생하면서 이런 시설들도 파손돼 2차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제 머지않아 해빙기가 되면 공사장도 늘어나고, 얼었던 땅도 녹으면서 지반이 연약해 지기 때문에 그만큼 지하굴착 공사장 주변의 안전사고 위험도 커지게 된다. 철저한 대비책 마련과 기존 대책의 보완이 시급한 이유다. 특히, 현장에 관련 전문가의 부재 문제는 어떤 방식이든 반드시 해결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는 비단 서울만의 문제가 아니고 전국적으로 살펴봐야 할 문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