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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칼럼] 이번 생은 망하지 않았다
벌써부터 옛날 얘기나 늘어놓는 ‘꼰대’가 돼 가나 싶어 민망하다. ‘그 때가 좋았다’ 말하고 싶은 건 아니다.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에, 2016년 오늘을 살아가는 청년들에게 그 때를 얘기한다.

대학 마치고 직장 생활을 시작한 게 1996년 1월이니까 정확히 20년이 흘렀다. 내가 취업활동을 한 1995년 하반기는 경제 호황기의 끝자락이었다.

그 땐 취업걱정을 별로 안 했던 것 같다. 학점도 신통치 않았는데 큰 기업 세 곳에 합격했으니, 취업문제로만 따지면 좋은 시절임에 틀림없다.

당시엔 기업이 대학에 뿌리는 ‘추천서’란 게 있어서, 학과 사무실에 가면 유수의 기업들이 보낸 입사지원서를 확보할 수 있었다. 그 원서를 받아 들면 해당 기업에 합격한 거나 다름 없는 걸로 여겼다.

내게 취업을 허락해준 곳은 LG화학, 동서증권, 동남은행이었다. 난 LG화학을 선택했다. 금융기업인 두 곳은 IMF 구제금융 이후 망했고, LG화학은 현재 대한민국 최고의 기업 중 한 곳이다. 적성 따윈 고민 안 하고 평생 다닐지 모를 직장을 선택하는 건 그 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난 그 때 LG화학이 얼마만큼 좋은 회사인지 모르고 들어갔다.

세 군데나 합격해놓고 골라서 간다? 지금으로선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20년 전 내가 가진 ‘스펙’으로 지금 구직활동을 한다면 언감생심 꿈도 못 꿀 기업들이다. 심지어 뽑아준 것에 대한 고마움도 몰랐다. 나중에 ‘거품의 산물’이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그 때는 적어도 내 삶이 별로 나아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적정은 하지 않았다.

새해가 밝은지 벌써 한 달이다. 곳곳에서 힘들다고 아우성이다. 지난해 우리 경제 GDP(국민총생산) 성장률은 2%대로 내려앉았다. 2012년 이래 가장 나쁜 성적이다. 올해도 잿빛 전망이다. 수출도 내수도 좋아질만한 꺼리를 찾기 어렵다는 게 경제전문가나 기업들의 시각이다. 세계경제를 떠받쳐온 중국경제가 무너지는 신호는 불안감을 더욱 부추긴다. 경제위기가 왔을 때 늘 그래왔듯, 돈이 달러화 같은 안전자산으로 몰리는 것도 왠지 불안하다.

추이를 보면 한국경제의 저성장이 고착화하고 있는 게 눈에 보인다. 과거 김대중정부는 5.3%, 노무현정부 4.5%, 이명박정부는 3.2% 성장했다. 박근혜정부 3년동안 평균 경제성장률은 2.9%다. 한국경제가 고성장을 구가할 때는 아니지만 성장률 하락속도가 빠른 건 분명하다. 우린 성장이 멈춘 사회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이웃 나라 일본을 통해 보고 있다. 그래서 두렵고 무섭다.

그 중에서도 가장 두려운 건 희망을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다. 특히 청년들이 말이다. 최근 젊은 층에 급속히 유행하고 있는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은 ‘헬조선’이나 ‘금수저’란 말보다 더 절망적이다.

적어도 취직 걱정 안하고 청년시절을 보낸 나의 이번 생은 망하지 않았다. 흑수저로 태어났어도 금수저가 부러워 절망하진 않았으니 이번 생은 괜찮다. 번듯한 직장에 남에게 아쉬운 소리 안 해도 먹고 살고 있으니 정말 다행이다.

그래서 지금 취업활동을 하고 있는 청년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난 너무 좋은 시절 청년기를 보냈으니 말이다.

신창훈 소비자경제섹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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