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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쌀롱 인터뷰] 차지연은 아직 ‘복면’을 다 벗지 않았다
[헤럴드경제=김아미 기자] 막이 내려질 때까지 댄버스 부인은 웃지 않았다.

뮤지컬 ‘레베카’에서 댄버스 부인 차지연(34)은 3시간 내내 어둡고 서늘했던, 광기 어린 캐릭터 그 모습 그대로 관객을 떠나 보냈다.

무려 석달 동안이었다. 매 일요일 저녁마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1위를 달군 건 뮤지컬 배우 ‘차지연’이었다. 네티즌 수사대는 복면 뒤 주인공이 차지연임을 일찌기 알아챘고, 언론은 ‘차지연으로 추정되는 캣츠걸’이라는 제목으로 그의 과거 발언까지 찾아내 관련 기사를 쏟아냈다. 

인터뷰 전, 차지연은 따로 인터뷰 사진을 찍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원하지 않는 사진을 굳이 찍을 이유는 없었다. 그렇지만 이유는 궁금했다. “사실 지금 비시즌이라서요. 신혼여행 못 간 아쉬움을 남편과 함께 야식으로 달래고 있거든요. 한 두달간 신혼의 달콤함과 함께 기가막히게 먹다 보니 댓가를 치르고 있는 중이에요. 으하하하하하.” [사진제공=R&D]

차지연을 처음 대중에 알린 건 2011년 MBC 예능 프로그램 ‘일요일 일요일 밤에’였다. ‘나는 가수다’ 코너에서 가수 임재범과 콜라보레이션 무대를 펼쳤을 때만 해도 괴기하면서도 구슬픈 구음(口音)을 내는 이 여자가 누구인지 대중은 잘 알지 못했다.

딱 5년만에 그녀는 전국민이 아는 스타가 됐다. 같은 방송국 같은 예능 프로그램의 ‘복면가왕’ 코너를 통해서다. ‘캣츠걸’은 10주동안 5회 연속 ‘가왕’ 자리를 지켰고, 12주만에 비로소 가면을 벗어 던졌다.

방송이 나간 다음날인 2월 1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한 카페에서 차지연을 만났다.

2006년 뮤지컬 ‘라이온 킹’으로 데뷔, ‘아이다’, ‘서편제’, ‘레베카’까지 한 많은 여인, 혹은 광기어린 여인 역할을 주로 해 왔던 차지연이었기에, ‘철벽녀’이거나 대단한 카리스마의 소유자일 것이라는 편견은 당연했다.

‘인간 차지연’은 ‘복면’이 많은 듯 했다. 화장기 없는 얼굴(물론 비비크림은 발랐다고 했지만!)에 긴 생머리를 아무렇게나 풀어 헤치고 ‘아하하하하하’, ‘으하하하하하’ 소리를 내며 웃는 차지연에게서 카리스마라는 ‘복면’은 찾기 힘들었다.

“차기작이 뭐냐”는 질문에 매니저 눈치를 흘끔흘끔 보며 “아직 캐스팅 공개가 안 돼서 말 못한다. 전에도 오프더레코드라고 해서 얘기한 적 있는데 결국 기사로 나가 상처받았다”면서도 결국은 털어놓고야 마는, 가식없고 소박한 ‘여고 동창’ 같았다.

그러나 가족 이야기를 할 때는 ‘상처’라는 또 다른 복면이 있었다. 차지연은 국악 집안 출신이다. 외할아버지가 국악계 고법(鼓法)을 전수한 인간문화재 고(故) 송원 박오용, 외삼촌 역시 판소리 고법 무형문화재로 유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려웠던 집안 형편 탓에 가족의 생계는 늘 그녀의 몫이었다. 

뮤지컬 ‘레베카’에서 댄버스 부인을 연기한 차지연. [사진제공=EMK뮤지컬컴퍼니]

지난해 11월, 4살 연하의 뮤지컬 배우와 결혼식을 올린 차지연은 ‘새색시’라는 복면을 새로 얻었다. “이젠 일부러 씩씩해 보이려 웃는 게 아니라 진짜 행복해서 웃는다”는 그녀가 정말 꿈꾸는 작품은 “해피바이러스가 넘치는, 시스터액트의 우피 골드버그 같은 역할”이라고.

차지연과의 대화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

-복면가왕 캣츠걸이 몇달간 화제였는데요.

▶참 수사력이 빠르시다 생각했어요. 제가 그다지 유명한 사람도 아닌데. 신기했죠. 마지막 방송 녹화 한게 1월 12일이에요. 그동안 주변에서 캣츠걸이 맞냐고 물어보면 아니라고 하기도 그렇고 맞다고 하기도 그래서 “글쎄”라고만 했어요.

-석달 가까이 주말 저녁 검색어 1위를 차지했어요. 그만큼 방송의 힘이 컸던 것 같은데요.

▶사실 젊은 세대는 뮤지컬을 많이 보지만 어르신들이 접하기는 쉽지 않잖아요. 그런데 방송 이후 어르신들도 저를 많이 알아보시고 좋아해주시는 것 같아요.

-그동안 주로 해 왔던 역할과는 인상이 많이 다른 것 같아요. 피부도 너무 좋고요.

▶아하하하하하. (매니저를 보며) 너무 체신머리 없이 여배우 답지 않은 모습을 보여서 눈치가 보이네요. 제가 외모가 큼지막하고 센 역할 많이 하다보니 차가울거다, 무서울거다 생각하시는 데 그런 것 하곤 거리가 멀어요. 제 평소 성격이 그냥 이래요.

-레베카 막이 내려질 때도 어둡고 서늘한 표정이었요. 일부러 그런건가요?

▶될 수 있으면 공연 3시간 동안 관객들이 느꼈던 느낌을 그대로 드리고 싶어서 그랬던 건데. 또 엄기준 오빠와 공연한 날은 엄청 웃어요. 으하하하하하.

-영화 ‘간신’에서 ‘장녹수’라는 센 역할을 맡았었죠. 판소리 나레이션도 인상적이었고요.

▶희한하게도 대부분 그런 역할이 만나지더라고요. 안타깝고 아쉽죠. 그런데 좋은 점도 있어요. 완전히 다른 성격의 작품을 하게 되면 또 새로운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으니까. 그런데 지금까지는 눈이 멀거나, 죽임을 당하거나, 버림받는 역할이었지 행복한 작품은 없었네요. 판소리 나레이션이 제 역할은 아니었어요. 그런데 감독님이 정통 소리꾼 말고 배우가 소리를 했으면 좋겠다고 해서 갑자기 하게 된 거에요. 사실 제가 영화에 캐스팅 된 이유가 있었어요. 장녹수가 피적삼을 입고 춤을 추며 연산군의 한을 풀어주는 장면 때문이었는데, 당시 제 몸이 너무 아팠고, 또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를 하고 있었던 터라 스케줄 조율이 힘들어 촬영이 무산됐죠. 많은 분들이 아쉬워했어요.

-개인적으로는 어떤가요. 행복한가요?

▶요즘은 행복해요. 결혼 이후 인생이 완전히 바뀌었죠. 그 전까진 제가 했던 작품과 제 인생의 감정선이 비슷했어요. 인간 차지연으로 사는 게 불안정하고 어두웠죠. 늘 극한 상황에 몰렸고, 조바심 내며 살아야 했으니까요. 그런데 남편을 만나면서 바뀌었어요. 웃음도 더 많아지고.

-그 많은 것들이란 게 뭔가요.

▶집안 일들이 많았어요. 제가 감당을 해야만 하는. 집안 형편이 너무 어려웠죠.

-국악 집안에서 태어났는데도 힘들었나요.

▶국악을 제대로 배워본 적은 없어요. 집안 사정 때문이었죠. 어른들의 문제로 어린 아이가 피해를 입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어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제게 국악은 잊고 싶은 기억이었어요. 그런데 ‘서편제’라는 뮤지컬을 만나며 다시 북을 잡았죠. 첫 연습 때 북을 놓고 생각했어요. ‘너도 참 지긋지긋하다. 운명인가보다’. 사람들은 제가 돈도 엄청 벌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고3 때부터 지난해까지 계속 가족 빚 갚으며 살았어요. 하나 막으면 또 하나 터지고. 그렇게 악착같이 살았죠. 또 그게 저의 원동력이기도 했고요.

-뮤지컬 레베카의 매력을 이야기해 주세요.

▶저는 이 극이 사랑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여러 인물들이 저마다의 사랑 이야기를 하죠. 댄버스 부인과 레베카도 마찬가지에요. 뻔한 러브스토리가 아닌, 비릿한 느낌의 뒤틀린 사랑이야기라고나 할까요.

-그렇지만 댄버스 부인이 레베카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건 잘 이해가 안 되요.

▶배우들끼리도 그런 얘기가 많았어요. 저도 처음 대본 받았을 때 이걸 어떻게 연기해야 공감을 불러 일으킬 수 있을까 고민했죠. 짤막한 대사 한 줄 이외에는 둘의 관계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었으니까요. 짧은 시간 동안 차지연다운 댄버스로 승부를 보기 위해서 저는 상실감과 공허함을 표현해야겠다 생각했어요. 광적으로 집착했던 존재를 한순간에 잃었을 때 오는 말도 못할 허탈감 말예요. 카리스마도 중요하지만 그런 처연함과 쓸쓸함이 보였으면 좋겠다 생각했죠.

-댄버스 부인의 레베카에 대한 사랑은 도대체 뭘까요.

▶제 스스로 결론을 내린 건 크게 세가지예요. 햐나는 댄버스가 레베카를 어렸을 때부터 보모처럼 키웠기 때문에 갖고 있는 엄마 같은 사랑. 두번째는 이성간의 사랑인데, 댄버스 부인이 남자고, 여자로서 레베카를 사랑하며 집착하는 거죠. 세번째는 여자가 여자를 사랑하는 거예요. 완벽한 여자 레베카를 보며 갖게 된 대리만족과 질투죠. 이런 것들이 복잡하게 섞여 과대망상에 사로잡힌 짝사랑을 하는 것 같아요.

-댄버스의 대표 곡 ‘레베카’는 정말 어려운 곡인데요. 세번째 리프라이즈에서는 힘들어 보이기도 했어요.

▶저는 긴 버전의 레베카보다 마지막 리프라이즈(Reprise)를 더 좋아해요. 온전히 자기 감정을 쏟아내니까요. 많이 놓고 부르는 곡이기도 해요. 뮤지컬에서 노래는 ‘멜로디가 입혀진 연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연기 잘한다’는 칭찬을 가장 좋아하는데, 마지막 ‘레베카’는 노래를 잘 부르는 것보다 감정 전달에 더 충실하려고 했죠.

-차지연의 댄버스 부인은 극장을 집어 삼킬 듯 폭발적인 면이 있어요.

▶제 목소리가 힘은 좋지만 카랑카랑한 고음은 아니예요. 저는 뮤지컬 여배우 중에서는 중저음이죠. 그런데 댄버스 부인의 노래는 제가 잘할 수 있는 음역대가 아니었어요. 저에게는 엄청난 도전이죠. 능력치의 한계를 시험하는 역할이죠. 그래서 매회 긴장해요. 두렵고 겁도 나죠.

-남편 얘기 좀 해주세요.

▶으하하하하하. 원치않게 이름까지 공개돼서 곤란한데. 지난해 초 뮤지컬 ‘드림걸즈’ 하면서 만났어요. 사실 한 1년간 연애에 대해서는 아예 셔터 내리고 영업을 안하고 있었어요. 너무 힘들고 아파서. 제가 불의의 사고로 타박상을 심하게 입어서 공연을 못하고 입원한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공연 복귀하고 나니 저한테 그러더라고요. “4살 차이(차지연이 4살 연상이다) 궁합도 안 본다더라.” 그렇게 훅 들어와서 만나기로 했는데 바로 다음 날 결혼하자고 하더라고요. 사실 배우라는 직업이 감정적이고 일상 생활을 영위해 나가기에 유혹도 많아서 건강하게 뭘 잘 하기가 힘들어요. 그런데 남편은 정신적으로 너무 건강한 사람이었어요. 그 모습이 좋아 몇 달 연애 안 하고 바로 결혼했죠.

-꼭 해보고 싶은 ‘인생 뮤지컬’이 있다면요.

▶해피바이러스가 있는 작품이요. 이를 테면 ‘시스터액트’의 우피 골드버그 역할 같은. 음악성이 있으면서도 행복한 느낌의 작품을 해 보고 싶어요.

ami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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