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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얼푸드] 알약 한알로 한끼 해결 이런 상상 해보셨나요…게으름을 먹는 간편식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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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김성훈 기자] “알약 하나만 먹어도 배가 부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숟가락 들기도 귀찮을 정도로 몸이 고단한 날이면 누구나 한번쯤 이런 상상을 한다. 씹고, 뜯고, 맛보는 즐거움 따위 기꺼이 양보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도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지만, 더욱 격렬하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말이 지난해 그토록 큰 공감대를 불러일으킨 것은 게으름에 대한 국민 모두의 염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염원은 인류의 종특(종족 특성)이 아닌가 싶을 만큼, 이역만리 타지에서도 같은 목소리가 메아리쳐 오고 있다. 바야흐로 게으름이 세계 식문화를 바꾸고 있는 것이다. 유로모니터의 하워드 텔포드는 지난해 “편리함은 오늘날 트렌드 변화를 이끄는 중요한 요인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사진출처=123RF]

뉴욕타임즈는 최근 미국 시리얼 산업의 침몰에 대해 다룬 바 있다. 시장조사기관 민텔에 따르면 시리얼의 인기는 1990년대 후반 이후 지속적으로 사그라들었고, 시장규모가 2000년 139억 달러에서 지난해 100억 달러로 30% 이상 추락했다. 미국 베이비부머와 그 이전 세대는 40~50% 가량이 여전히 시리얼을 좋아하지만,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2000년대 초반 출생 젊은이들)는 도통 먹지를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시리얼은 요즘 트렌드라고 하는 ‘간편식의 할아버지’ 격인 음식이다. 그릇에 담고 우유만 부으면 된다. 그럼에도 젊은 이들이 시리얼을 즐겨먹지 않는 이유에 대해 뉴욕타임즈는 이렇게 설명했다. ‘귀찮아서.’ 시리얼을 먹고 난 그릇을 씻는 것이 너무나도 귀찮은 일이라는 것이다. 하루종일 정신없이 바쁘고, 외식업체들도 즐비한 현대에는 시리얼이 옛날에 느꼈던 것만큼 간편한 음식이 아니다.

이는 비단 시리얼만의 문제는 아니다. 커피 산업 역시 게으른 이들을 위해 점점 더 간편하게 진화하고 있다. 커피 취향의 고급화니 매니아 탄생이니 하는 트렌드도 있지만, 이런 물결을 모두 쓸어버릴 정도 게으름의 힘은 세다.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2014년 기준 미국 커피 소매 시장에서 커피 원두 판매액 120억달러로 매년 비슷한 수준이다. 반면 그라운드 커피(분쇄한 커피)는 매년 큰 폭으로 증가해 원두 판매액의 10배를 넘어섰다. 더 편리하게 커피를 즐길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전문 기계들도 속속 개발되고 있다.

편리함을 얘기할 때 배달을 빼놓을 수 없다. 테크노믹에 따르면 미국에서 외식산업의 15%가 배달 시장이다. 밀레니얼 세대에서는 20%에 이른다. 이를 놓치지 않기 위해 맥도날드, KFC 등 패스트푸드 업체들이 배달을 시작했고, 스타벅스도 지난해부터 배달 시장에 뛰어들었다. 각종 기상천외한 일이 일어나는 중국의 변화상은 더욱 놀랍다. 배달 음식 문화가 공유경제앱과 결합하면서 갖가지 형태의 서비스를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업체가 직접 재료를 사들고 집에 찾아와서 요리를 해주는 서비스라던지, 밥먹을 때 옆에 나란히 앉아 먹여주는 서비스도 있다. 일찍이 ‘배달의 민족’의 기상을 떨친 바 있는 한국에서도 배달 음식 시장은 연 10조에 이른다.

워싱턴포스트는 이러한 변화가 노동시간의 증가와 관련이 있다고 설명했다. 요리를 하거나 차분히 앉아 먹을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었기 때문에 먹을 음식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편리함이 중요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른바 쿡방이 한국에서 그토록 인기를 끄는 것은 세계 최장 노동시간에 요리할 시간조차 없는 국민들의 대리 만족 때문이라는 한국 전문가들의 분석과도 일치한다.

/paq@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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