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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스포츠 칼럼] 기사형식을 바꾸면?
며칠 전 늦은 오후 저널리즘을 전공한 은퇴 교수들과 언론에서 일하다가 물러난 한 ‘늙은이’들이 만났다. 간헐적으로 회동하면서 저널리즘 현안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걱정을 하는 자리이다. 이 모임은 신문 방송 뉴스에 대한 비판과 걱정 그리고 훈수로 채워진다. 요즈음은 SNS등 온 라인 매체의 기세에 눌려 쪼그라지는 저널리즘 영역을 되살릴 수 있는지에 집중되는 것이 보통이다.

이날은 걱정만이 아니라 구체적인 대안을 마련해서 학계나 현업에 전달해 보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저널리즘의 근간인 객관성을 재 개념화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깊은 얘기가 오갔다. 저널리즘은 객관성(objectivity)이란 큰 틀 속에 사실성, 불편부당성, 균형성, 적절성, 등이 녹아 있고 이를 규격화하기 위해 역삼각형 꼴(inverted pyramid)의 기사 형식이 제시되고 있다.

뉴스의 객관성은 19세 중엽부터 20세기 초 미국 그것도 뉴욕에서 폭발적으로 생긴 대중신문(penny press) 시대에 얼굴을 내 밀었다. 이윤을 추구하는 언론-기업이 생겨나고 경쟁이 치열해 지면서 신문들은 타락하기 시작했다. 선정적이거나 무책임한 폭로 기사로 대변되는 옐로우 저널리즘이 횡행했다. 이를 바로 잡기 위한 대안으로 객관성이 제시된 것이다.

뉴스의 객관성은 느슨하지만 뉴스의 품질을 가늠하는 잣대로, 뉴스를 평가하는 기준으로, 좋은 뉴스를 만들기 위한 행동강령으로 그리고 품위를 갖춘 언론을 지향하는 이상으로 동원되고 있다. 총론으로서 뉴스 객관성의 필요성엔 동의하지만 각론에 들어가면 이견이 분분하다. 구조주의나 기호학 나아가서 해석학의 관점에서 객관성을 보면 논란은 실타래같이 엉킨다. 게다가 구체적인 상황에 딱 들어맞는 기준을 정하는 것도 실제론 매우 어렵다.

뉴스 객관성을 실천 가능한 강령으로 바꾸는 것은 사실 생각만큼 쉽지 않다. 또 만들었다고 해도 실천하느냐 마느냐는 개개인의 몫이다. 따라서 이 부분은 장기적인 연구와 교육이 필요하다. 다만 기사의 형식을 바꾸는 것은 당장이라도 가능하다. 사건(안)의 중요 부분을 먼저 차곡차곡 제시하는 역삼각형 꼴의 형식을 확 바꾸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가 이날 제시되었다.

시(詩) 같은 기사, 산문 형식의 기사를 작성하자는 것이다. 느낌이나 감성에 호소하는 기사, 가볍지만 알맹이가 있는 기사, 어떤 때는 두터운 정보를 담을 수 있는 형식으로 기사를 작성하면 짧은 문장, 재미있는 글이 대세인 요즈음 추체에 대응할 수 있을 것이라는 진단이다. 약효도 좋고 삼키기도 쉬운 당의정(糖衣錠)이나 권선장악(勸善懲惡)을 담은 할머니의 옛날 얘기처럼.

환경이 변하면 변화를 따라가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필요하고 유용한 기사를 제공한다는 저널리즘의 본령이 변할 수 없다. 매무시를 고치고 외모를 단장하는 것은 근사한 대안이 될 수 있다. 붕어빵 같이 똑같은 기사형식을 이제는 바꿀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객관성을 손질하는 일은 장기 과제로 남기고 우선 기사 형식의 변화를 시도하도록 학계나 현업에 얘기를 해 보자는 것으로 이날 모임은 마무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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