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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칼럼] 조훈현이 이세돌에게
온 세계의 시선이 쏠리는 세기의 대결이 코앞으로 다가왔네 그려. 이미 퀴즈와 체스 대결에서 인간을 무릎꿇린 인공지능이 난공불락으로 여겨졌던 바둑까지 넘본다고 하니 이 보다 더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어디있겠나. 바둑 컴퓨터 프로그램의 지존이라는 구글의 알파고가 인간 가운데 최고수로 후배님을 지목했다는 소식에 무척 기뻤네. 바둑계의 전설과 매서운 신예들이 즐비한 일본, 바둑 종주국이자 현재 세계 바둑을 주도하고 있는 중국을 제치고 한국인이 인간 대표로 나선다니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인가.

후배님이 프로 바둑기사의 길을 결심한 계기가 나의 응창기(應昌期)배 우승 이었다고 들었네. 1989년 열린 응창기배는 중국과 일본의 최정상 기사들이 참가한 ‘초대 바둑올림픽’이었지. 상금(40만달러)도 사상 최고였고. 바둑계 변방의 이름없는 한국인이 세계를 제패한 것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지. 후배님이 세계인의 시선이 대한민국으로 향하고 있는 이번 대국에서 쾌승한다면 한국 바둑이 다시 한 번 세계의 중심으로 올라서는 디딤돌이 될 걸세.

바둑에는 기풍을 뜻하는 ‘류(流)’라는 것이 있지. 후배님은 전투적 스타일과 야생마 같은 행보로 독보적 캐릭터를 만들었지. 반면에 이창호는 무디고 평범하다는 평가가 주류를 이루네. 상대의 도발에도 무한정 인내하며 묵묵하게 자기 갈 길을 간다고 해서 ‘돌부처’라고도 하고. 한 번은 창호의 대국을 복기하고 있었는데 녀석이 둘 수 있는 좋은 수가 있는데도 그걸 두지 않고 안전한 길을 택했더군. 창호의 답은 이랬네. “그 쪽은 강하지만 역전당할 위험이 있어요. 하지만 제가 택한 길로 가면 100번 중에 100번을 반집이라도 이길 수 있어요.” 

베일에 가려 있지만 알파고의 스타일을 굳이 비유하자면 전성기때 ‘신산’(神算)이라 불렸던 창호와 흡사할 것이네. 수읽기와 균형감각이 역대 최강급이라는 얘기지. 세계 최고수들도 종종 어이없는 실수와 착각으로 대국을 망치는 경우가 있지만 ‘냉혈한’ 알파고는 이런 인간적 허점을 파고들 여지가 없다고 봐야 하네.

다행스런 것은 후배님이 창호와 많은 대결을 치르면서 충분한 경험을 쌓았다는 것이네. 역대 전적은 31승35패로 열세지만 2011년 이후에는 7승4패로 한참 우위에 있지. 2001년 LG배 세계기왕전 때 창호에게 두 판을 먼저 따내고도 세 판을 내리 내줘 역전패한 쓰라림에 후배님의 바둑과 멘탈이 더 치밀해졌다는 얘기를 들었네.

나는 후배님의 승리를 확신하네. 우리의 시선은 오히려 대국이후를 바라봐야 할 걸세. 인간 이창호는 나이가 듦에 따라 후배님 같은 젊은 기사들에게 밀려났지만 ‘인공지능 이창호’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강해져 머지않아 사람이 대적할 수 없는 경지에 오를 걸세. 인간 고유의 직관과 통찰력, 창의성을 더욱 벼려서 기계와의 격차를 더 벌리지 않으면 바둑의 위기는 현실화될 걸세. 인간대 기계와의 대결이 흥행카드가 되면서 바둑계의 지평이 넓어지는 것은 환영할 일이지만 인간이 탈락하고 기계끼리 우열을 다투는 시대로 넘어가는 것은 차마 볼 수 없지 않은가. 

mhj@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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