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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세돌-알파고]인간의 공포는 ‘죽음’보다 ‘AI’
[헤럴드경제=한석희 기자]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존재는 무엇일까?

죽음. 아니다. 미국 남부 캘리포니아 채프먼 대학교가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인터뷰한 결과를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현대기술의 결과물이다. 인공지능(AI) 로봇이다. 죽음은 인간이 두려워하는 목록 끝자락인 43위에 올라 있을 뿐이다.

이세돌 9단이 8일 구글의 최첨단 인공지능(AI) ‘알파고’와의 세기의 대결 첫 대국에서 충격적인 패배를 했다. 이 9단은 이날 서울 포시즌호텔에서 열린 알파고와의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5번기 제 1국에서 186수 만에 백 불계패했다. 


당초 “기계와 인간의 바둑 대결에서 기계가 이길 확률은 1%도 되지 않는다”(중국의 기성 녜웨이핑9단), “아직 바둑은 컴퓨터에는 풀기 어려운 영역이었다”(인공지능 전문가 장 가브리엘 가나시아 교수) 등 이 9단의 승리 예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알파고는 그만큼 강했다. 수비 지향적으로, 공격적인 수는 자제할 것이라는 예상도 깼다. 수동적인 방패에 불과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알파고는 이 9단의 허를 찌르는 공격을 감행했다. 기보에는 없는 변칙적인 이 9단의 수에도 알파고는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균형감각으로 이 9단을 몰아 세웠다.

알파고의 승리로 인간의 마지막 보루로 통했던 ‘정신적 영역’마저 로봇에 무너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감이 커지고 있다.

레트로 리포트에 따르면 인류가 로봇에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한 것은 1997년 IBM의 슈퍼컴퓨터 ‘딥 블루’(Deep Blue)가 체스 세계 챔피언 가리 카스파로프를 꺾으면서다. 당시 초반 1, 2차전은 딥 블루와 카스파로프가 서로 나눠가졌다. 하지만 나머지 3연속 무승부를 기록한 끝에 열린 마지막 6차전 경기에서 카스파로프는 패배했다.

카스파로프는 대국 시작 후 불과 1시간이 지난 무렵 19수 만에 피할 수 없는 궁지에 몰리자 패배를 선언했다. 6차전의 결과를 마감한 최종 점수는 슈퍼컴 3.5점, 인간 2.5점이었다. 인간의 완벽한 패배였다.

인공지능 ‘딥 블루’와의 대결에서의 패배는 인간이 ‘로봇에 대한 두려움’을 실감하는 계기가 됐다.

공상과학(SF) 영화 속에서나 볼법했던 로봇의 인간 지배 역사가 현실로 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히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사실 영화 속 AI 로봇은 대부분 인간 세상을 파괴하는 악의 화신으로 등장했다.

SF영화의 선구적 작품인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에 나오는 HAL 9000은 오류를 은폐하기 위해 승무원을 살해한다. ‘터미네이터’ 시리즈에서도 로봇은 인간의 씨를 말리려 한다. ‘I, Robot’ ‘트랜센더스’ 등 이외에도 많은 SF 영화에서 로봇은 언제나 인간을 괴롭히는 적으로 등장했다. ’터미네이터‘에서 “I’ll back”(돌아올 것이다)는 명언처럼 언제나 인간의 적 로봇은 이름을 바꾸며 영화로 돌아왔다.

그런 영화 속 존재와의 대결에서 인간이 졌다. 그것도 완벽하게…. 로봇에 대한 두려움은 2011년 미국의 퀴즈쇼 ‘제퍼디 쇼’(Jeopardy)에서 IBM의 새 컴퓨터 왓슨이 두 명의 퀴즈 챔피언을 연달아 물리치면서 더욱 심해졌다. 지난해엔 구글의 알파고가 유럽 바둑챔피언 중국의 판후이 2단과의 대국에서 5대 0으로 승리했다. 체스에 이어 인간의 마지막 보루로 여겨졌던 정신적 영역마저 로봇에게 내준 것이다.

하지만 이 때까지만 해도 로봇이 인간을 지배할 수 있다는 생각은 많지 않았다.

BBC 방송이 이 9단과 알파고의 대결에 앞선 보도에서 알파고가 지난해 판후이 2단을 이긴 것과 관련 축구 명문 바르셀로나가 리그에도 끼지 못한 아마추어 축구단을 상대로 이긴 것과 비유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알파고는 골리앗을 쓰러뜨리려는 다윗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세기의 대국’은 과거 로봇과 인간의 대결과는 차원이 다르다.

우주의 원자들 수보다 많은 바둑의 선택점은 최선의 수를 철저하게 계산해내는 알고리즘에 의해선 풀 수 없다는 기존의 인간의 관념이 한 순간 무너졌다. 체스와 달리 심리에 따라 한 수 한 수가 달라지는 바둑에서 알파고가 이겼다. 그 동안 로봇이 감히 넘보지 못할 것으로 여겨졌던 미지의 ‘정신적 영역’ 마저 로봇에 넘겨주게 된 셈이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최근 보도에서 “바둑 최고수인 33세의 이세돌 9단이 인류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바둑판 앞에 앉는다”고 쓴 것도 이 때문이다. “알파고가 승리한다면 인류가 기계보다 유리한 고지를 점령한 정신의 영역 중 하나가 무너진다는 뜻”이라는 가디언의 분석도 이의 연장선상에 있다.

미국의 컴퓨터 공학자이자 SF 작가 버너 빈지(Vernor Vinge)는 1993년에 “조만간 인간의 시대는 종말을 고할 것이다”고 했다. 그가 말하는 조만간은 ‘30년 안’이었다. 그의 예언대로라면 인간 종말의 시간이 7년뿐이 남지 않은 셈이다.

/hanimom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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