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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빌라로, 고층으로, 타운하우스로…‘빨간벽돌’연립주택도 변신 한창
45년 서울 첫 등장…서민주거지로 인기
작년 소형 2351가구 멸실…역사속으로


중랑구 면목우성주택의 세대주 전체 22가구는 새 집 마련의 꿈에 부풀어 있다. 33년 된 2개동 3층짜리 이 연립주택과는 머지 않아 ‘안녕’이다.

가로주택정비사업 1호로 주목받는 면목우성주택은 다음달 관리처분인가가 예정돼 있다. 주민 이주, 철거, 공사를 거쳐 내년 5~6월 이 자리에는 지하1층, 지상7층의 매끈한 1개동의 아파트가 들어설 예정이다. 건립되면 일반분양 20가구를 포함해 42가구로 늘어난다.

조합에 따르면 현 세대주의 절반 가량은 70대다. 한창 일하던 젊은 시절에 들어와 살기 시작해 20~30년 가까이 세월을 보낸 이들도 있다. 분양 당시 집 값은 겨우 3000만원이었다. 당시 시세로도 싼 축이었다.
서초구 서리풀8길에 있는 남양연립. 주민 36명의 전
원 동의로 대규모 철거 대신‘ 가로주택 정비사업’으로
방향을 틀었다. 33년 2개동 3층짜리 건물이 내년에
지하 2층, 지상 7층, 2개동 가로주택으로 탈바꿈할 예
정이다./[사진=서울시]

저층 연립주택이 서울 도심에서 점차 자취를 감추고 있다. 그럴듯한 문구는 없지만 붉은 벽돌 외관에 숫자 대신 ‘가’ ‘나’ ‘다’란 한글이 적혀 있고, 베란다에 빨래가 자연스럽게 내걸려 더욱 정감가는 연립 단지를 찾아보기 어려워 졌다.

김태섭 주택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택지 개발 때 주택유형 다양화 측면에서 아파트 말고도 단독주택과 연립을 넣기도 하는데, 지금은 연립주택이 많이 사라진 것이 사실”이라며 “소규모 연립단지들이 2, 3개동 아파트로 많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연립주택은 우리나라 주택 시장에서 다세대주택과 함께 가장 친서민적인 주택으로 사랑받아 왔다.

현행 법상 연립주택은 ‘주택으로 쓰는 1개동의 바닥 면적 합계가 660㎡를 초과하고 층수가 4층 이하인 주택’이다. ‘4층 이하 연면적 660㎡ 이상인 공동주택’인 다세대와 비교해 1개동의 바닥면적이 넓다. 주차장, 정원 시설을 여러 세대가 공유하므로 단독주택과 고층 아파트의 장점을 결합시킨 유형이다.

우리나라에 연립주택이 처음 소개된 것은 한일합방 이후 노동자 합숙소와 산업체 종사자를 위한 주거지가 지어지면서다. 1945년 서울시에서 청량리 2동에 건설한 2층 4호 연립주택단지가 최초다.

이후 1963년 주택공사가 수유동에 16평 연립주택 26호를 건설하면서 지금과 같은 단지 형태를 띠게 됐다. 1970년 서울시가 철거민을 위해 망원동에 지은 30호, 1973년 홍은동 128호, 1975년 주택공사의 영동 연립주택 등 연립단지는 주로 저소득층 서민을 위한 주거형태로 공급됐다.

그러다 1981년 청담동에 지어진 ‘효성빌라’가 고급 연립주택이란 새 장을 열었다. 고소득층을 겨냥한 효성빌라가 성공하면서 1980년대 강남일대에는 방배, 진흥, 그린, 중앙, 반포 등 고급 연립주택이 ‘빌라’라는 이름을 달고 잇따라 신축됐다. 이후 타운하우스, 맨션 등 다양한 이름으로 연립단지가 조성됐다. 고급을 상징하던 빌라라는 이름은 서민형 연립주택이나 다세대에까지 널리 쓰이게 됐다.

철근과 콘크리트 구조물인 아파트와 달리 벽돌로 하중을 견디는 연립주택은 수명이 더 짧다. 눈비에도 취약하다. 아파트는 30~40년 가량 견디지만, 연립주택은 지은 지 20년이 지나면 리모델링이나 재건축을 검토하는 시점이 된다.

대규모 철거 없이 저층 주거지의 도로나 기반시설을 유지하면서 15층 이하 공동주택을 신축하는 가로주택정비사업도 연립주택 재건축의 대안으로 인기를 모은다. 천호동 동도연립, 국도연립, 서초동 낙원ㆍ청광 연립, 남양연립 등 5곳이 조합설립 인가를 받아 추진 중이며, 14곳이 사업 추진을 위한 주민 동의 절차를 밟고 있다.

서민형 연립주택 뿐 아니라 고급연립들도 재건축이 추진 중이다. 고급 빌라의 시초 청담동 효성빌라도 지난해 12월 건축허가를 받아 올해 3~4월 이주한 뒤 2018년에 2개동 7층짜리 고급 공동주택으로 탈바꿈한다. 6~7층은 복층 펜트하우스이며 전용테라스, 루프가든을 갖추고 있고, 1층 세대와 연계된 지하층에는 서재방과 AV룸 등이 꾸며질 예정이다.

서울시 연립주택 멸실 현황을 보면 ▷2010년 1116 가구 ▷2011년 1812 가구 ▷2012년 1622 가구 ▷2013년 1589가구 ▷2014년 1617가구 ▷2015년 2597가구 등이 사라졌다. 재건축 바람이 분 지난해 멸실 가구는 전년 대비 60% 증가했다. 그 중 서민 보급형으로 추정되는 전용면적 40㎡(12평) 이하의 멸실은 ▷2010년 969 가구 ▷2011년 1589 가구 ▷2012년 1448가구 ▷2013년 1402가구 ▷2014년 1434가구 ▷2015년 2351가구 등 전체의 90%에 육박했다.

채미옥 한국감정원 부동산연구원장은 “토지밀도(용적률)를 높여 가구수를 늘리고 많이 팔아야 개발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에, 단독주택과 연립주택이 집중적으로 사라지고, 대체시장으로서 다가구ㆍ다세대 주택이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한지숙 기자/jsha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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