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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세돌 신드롬’ 인간의 자격을 묻다
패배에도 겸손·의연한 모습
두려움 극복, 알파고 허점 파악
불굴의 의지로 위대한 첫 승



너무 고통스러웠다. 표정은 점점 일그러졌다. 한숨이 나왔다. 쥐 구멍이라도 숨고 싶었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인류 대표’라는 거창한 타이틀은 애초부터 맘에 두지는 않았지만, 이대로 물러선다면 인간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정보 불균형이라는 논란이 불붙었고, 3연패를 한뒤 4, 5국은 중단해야 한다고 주변에선 얘기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다섯판을 내리 지더라도 인간답게 불꽃 승부를 보여주고 싶었다. 최소한 한 게임이라도 인간의 의지가 위대함을 입증하고 싶었다.

이세돌 9단이 결국은 해냈다. 이세돌-알파고 세기의 바둑대결 4국에서 난공불락으로 여겨지던 알파고는 무릎을 꺾었다. ‘인간 승리’라고 해도 전혀 과장이 아니다. ▶관련기사 2·3·19면


이 9단은 지난 13일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호텔에서 열린 이세돌-알파고 바둑대결 4국에서 마침내 귀중한 1승을 건졌다. 이세돌의 ‘세기의 묘수’(78번째 수)가 나오자, 전지전능해 보였던 알파고는 당황했고 버그까지 나면서 결국 돌을 던졌다. 3연패 뒤 1승은 위대했고, 이세돌 개인 뿐만 아니라 인류의 승리였다.

이 9단은 대국 후 소감을 통해 “수많은 승리를 했지만, 오늘의 1승은 어떤 승리와도 바꿀 수 없고, 바꾸고 싶지 않을 정도로 귀한 것”이라고 했다.

이세돌이 이처럼 선전하자 사회적으로는 ‘이세돌 신드롬’이 일고 있다. 1승을 거뒀다고 해서 생긴 것은 아니다. 1국후 이세돌의 비참한 표정에서, 2~3국후 풀이 죽은 모습에서도 겸손과 도전의식을 잃지 않고 의연히 대처한 직후부터 이세돌의 광팬은 급속히 늘어났다.

바둑의 ‘바’자도 모르던 20~30대 여성은 물론 10대 청소년들도 열광했다. ‘iprose’ 아이디의 한 여성(20대)은 “이세돌-알파고 대결 자체에 대해 바둑을 몰랐기에 의미도 몰랐다”며 “이세돌 9단이 인공지능에 지면서도 의연함을 잃지 않고, 패닉의 순간에서도 불굴의 의지를 보여줬기에 이세돌 광팬이 됐다”고 했다.

사실 인간은 나약한 존재다. 4차 산업혁명의 총아로 불리는 인공지능(AI) 앞에서도 무력해질 수도 있다. 이런 시점에서 ‘인간만의 투지’, ‘인간만의 포기없는 극한 도전’을 보여준 이세돌 9단에 따뜻한 격려와 함께 무한 신뢰가 쏟아지는 것이다.

이건 어쩌면 기이한 현상이다. 바둑 인간 최고수인 이세돌은 알파고에 3연패했고, 바둑계는 물론 과학기술계, 산업계를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인간 세계, 그 자체는 엄청난 패닉에 빠졌다. 인공지능이 인간 고유 영역이라는 바둑을 넘자, 인공지능 경계령이 뒤따른 것도 이 때문이다. 인류 대표의 패배로 이 9단에겐 비판론 내지 책임론이 뒤따를 수도 있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세돌 9단은 개인적으론 평생의 위기를 인간 승리로 바꿔 놓았다. 변명과 회피가 아닌, 예정된 패배라 할지라도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승부를 그가 택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세돌은 ‘인간의 자격’이 뭔지를 보여줬다는 평가다.

실제 5:0 승리를 장담했던 이세돌은 알파고에 3연패하자 바둑 최고수라는 껍데기를 벗어버렸다. “알파고에 비해 능력이 부족하다”며 인공지능의 위력을 인정했고, 두려움과 공포가 뒤따랐지만 연구생으로 돌아가 포기하지 않고 비책을 강구했다. 인간의 직관과 학습능력마저 모방한 알파고 앞에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불굴의 노력을 다했다. 그리고 결국은 4번째만에 알파고 허점을 공략했고, 무찌른 것이다.

김성룡 9단은 “알파고 위력에 보통 바둑기사 같으면 절망만 얻을텐데, 이 9단이 단 세번의 경험만으로 알파고 허점을 알아냈다는 것은 기적”이라고 평했다.

앞으로 인공지능 세상은 판을 치고, 인간은 어쩌면 현재보다 훨씬 나약한 존재로 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시점에서 이세돌이 ‘진짜 인간다움’이 뭔지 보여줬다는 데서 ‘이세돌 신드롬’은 출발선상에 서 있다. 

김영상 기자/ys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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