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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슈퍼리치]내일은 슈퍼리치(27)인간을 탐구한 소년,‘금융 구글봇’으로 시장 정보민주화 앞장
- 문학ㆍ철학ㆍ수학 등 박학다식 다니엘 나들러, 2012년 ‘악몽 고치는’ 모바일 앱 개발
- 2013년 극소수 ‘구식 전문가 카르텔’ 깰 금융시장분석용 시스템기업 ‘켄쇼’창업
- 9만개 변수 실시간 집계ㆍ6500만개 질문 동시답변…일상언어 분석해 리포트 내기도
- 투자유치 $5000만, 기업가치 $6.5억

[헤럴드경제=슈퍼리치팀 윤현종ㆍ민상식 기자] 소년은 인간에 흥미를 느꼈다. 고전을 가까이 했다. 소년의 관심사는 인간 ‘내면’으로 이어졌다. 그는 사람들의 악몽을 치유하고 싶었다. 그래서 수면 중 학습을 통해 꿈을 재구성할 수 있는 모바일 앱을 만들었다. 

그는 대중의 또 다른 ‘악몽’도 고쳐보고 싶었다. 몇 차례 금융위기를 거치며 사람들 마음에 생긴 불안감이 그것이다. 불안의 원인 중 하나는 정보 비대칭이었다. 극소수 ‘전문가’들은 그리 대단찮은 분석결과도 자신들의 권위로 잠금장치를 만들어 끼리끼리 공유했다. 

켄쇼 창업자 다니엘 나들러(32)

이를 목격한 청년 다니엘 나들러는 ‘금융계 구글’ 또는 ‘로봇 어드바이저’로 불리는 시장분석 시스템 기업 켄쇼(Kensho)를 만들었다. 3년 전, 그가 29세였던 때다.

최근 나들러는 켄쇼의 기업 가치를 7200억원(6억달러)수준까지 끌어올렸다. 단순히 평균 연봉 수십 만 달러 짜리 전문가 ’퀀트(Quant)’들 일자리를 빼앗게 된 결과가 아니다. 인공지능에 기대어 나온 방대한 시장 분석 결과를 모든 사람과 공유할 길이 만들어져서다.

▶그리스 고전 읽던 이민자 아들=나들러는 캐나다 토론토에서 자랐다. 그는 폴란드ㆍ루마니아 이민자 가족의 아들이었다. 

엔지니어였던 나들러의 부친은 아들 교육에 신경을 많이 쓴 것으로 보인다. 그는 “어린 시절 그리스 고전을 몇 시간 씩 끼고 읽었다. 기계 설계도를 그리는 것도 재밌었다”며 “또한 아버지는 학교를 마치고 온 내게 ‘제대로 된 수학’을 가르쳐주려고 했다”고 회상한다.

나들러는 유년시절의 지식을 하버드 대에 입학해서도 키워갔다. 학부시절엔 수학과 그리스문화 공부에 몰두했다. 그리스 철학자 탈레스가 고안한 세계 최초 선물거래소에 흥미를 느껴 관련 논문도 썼다. 그리스 시가(詩歌)도 배웠다.

▶인셉션(?)앱 개발, “악몽을 고치고 싶었다”=사실상 인문학도에 가까웠던 나들러는 ‘인간행동’, 특히 뇌 활동에 관심이 많았다. 2010년 그는 학교에서 자금 지원을 받았다.“마음ㆍ뇌ㆍ행동 이니셔티브”란 연구에 쓸 돈이었다. 간단히 말해 인간이 새 기술을 습득하는 데 수면이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실험하는 프로젝트였다.

‘꿈 꾸는 것’이 학습 과정과 관련 있단 사실에 천착한 나들러는 악몽 치유에 도전했다. 렘 수면(REMㆍ몸은 자고 있지만 뇌는 깨 있는 상태) 중 꾸는 꿈이 재구성 될 수 있단 실험 결과를 얻은 그는 이를 모바일 기기에 응용했다. ‘지그문트(Sigmund)’란 앱을 만든 배경이다. 

다니엘 나들러가 2012년 개발한 ‘지그문트’ 앱 화면 캡처

2012년 4월 애플 앱스토어에서 0.99달러로 나온 이 앱은 자는 시간ㆍ깨는 시간을 앱에 말하고, 듣고 싶은 단어를 앱에서 고르는 방식이었다. 지그문트는 렘 수면 때만 작동해 사람의 악몽을 좋은 꿈으로 바꿔줬다. 당시 미국 언론들은 “영화 ‘인셉션’이 현실서도 가능한가”라며 들끓었다. 나들러는 CNN에 “악몽을 끝내고 싶어 이 앱을 만들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출시 초기에 인기를 끌던 지그문트는 그러나 2013년 11월 무료전환을 끝으로 앱스토어에서 사라졌다. 이유가 무엇인진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걸 한 대학생의 ‘실패’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 지그문트의 경험에 기댄 나들러는 인간에 대한 흥미를 잃지 않았다. 그리고 이는 불특정 다수에도 도움이 될 시스템 개발로 이어졌다.


▶켄쇼 탄생 배경은 ‘구식 전문가’들=지그문트 개발이 막바지에 이른 2012년 1월, 하버드대 박사과정 5년차였던 나들러는 미 연방준비은행(FRB) 방문학자로 출근하기 시작했다. 2013년 12월까지 이어진 이 시기에 그는 ‘켄쇼’를 창업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FRB소속 금융 ‘전문가’들의 실상을 목격해서다. 나들러는 당시 경험을 뉴욕타임스(NYT) 등 다수 현지매체에 이렇게 털어놨다.

“그리스 총선이 유럽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어떻게 분석했는지 알아보니 내로라 하는 관료ㆍ금융전문가들이 옛날 뉴스기사만 뒤적이고 있더군요. 저는 FRB가 실시간 정보를 처리하는 ‘워 룸(War room)’일 줄 알았는데, 그들은 제 방 컴퓨터에 깔린 것과 똑같은 엑셀(Excel)자료만 보고 있었어요. 과거 방식을 답습한 데이터 뭉치들 뿐이었죠”

이 뿐 아니었다. 당시 그는 시장을 좌지우지 하는 극소수 전문가들이 ‘그들 끼리만’ 유통하는 정보망 구축을 위해 천문학적 돈을 쏟아붓는 행태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켄쇼 로고

일종의 충격을 받은 나들러는 창업을 결심한다. 구글 인턴 경험이 있는 메사추세츠 공과대학(MIT) 석사 출신 동료 피터 크루스컬(Peter Kruskall)과 함께였다. 둘은 ‘구글의 방식’으로 시장분석 프로그램을 만들기 시작했다. 지금의 켄쇼를 있게 한 분석시스템 ‘워런(Warren)’이 태어난 배경이다. 

투자의 귀재 워런버핏 이름에서 딴 이 시스템 개발엔 2004년 구글이 최초로 개발한 빅데이터 처리 개념 ‘맵 리듀스(MapReduce)’, 그리고 2005년 만들어져 꾸준히 진화한 데이터관리 시스템 ‘빅테이블’ 등이 적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뿐 만 아니라 사람이 일상언어로 질문하면 이를 분석해 시장 리포트를 내놓는 기능도 더해졌다. 로봇비서 ‘시리’와 비슷한 형태다.

▶“일반 대중이 시장에 휘둘리지 않는 게 목표”=나들러는 켄쇼를 창업하며 승승장구했다. 

창업 8개월만인 2014년 1월 최초 투자 120억원(1000만 달러)를 유치했다. 구글벤처 등 8개 투자자가 참여했다. 비슷한 시기엔 뉴욕의 나스닥 상황판을 ‘점령’했다. 켄쇼의 분석결과가 타임스퀘어 옥외 전광판에 올라가기 시작한 것이다.

켄쇼는 2014년 1월 뉴욕 소재 나스닥 옥외 상황판에 정보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투자는 계속 이어졌다. 같은 해 11월엔 투자은행 골드만삭스 등도 총액 571억원(4780만 달러)규모 투자를 결정했다. 

같은 달엔 현지 언론도 러브콜을 보냈다. 미 경제전문매체 CNBC는 2014년 11월 켄쇼에 전략적 투자를 단행하며 협력관계를 맺었다. 당시 CNBC 측은 “나들러와 켄쇼 팀은 금융시장 분석의 민주주의화 과정을 앞당기는 혁신가들”이라고 극찬했다. 

이는 과장이 아니었다. 켄쇼의 시스템은 이미 2013년 7월께 수백만 달러 연봉을 받는 모건스탠리 분석가 15명이 4주에 걸쳐 할 일을 5분내에 마치는 능력을 보였다. 2014년엔 더 진화했다.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9만개 이상 변수를 실시간 수집해 6500만개 이상 질문에 동시 답변이 가능한 수준까지 도달해 있었다. 

CNBC가 2015년 4월 선보인 “켄쇼에게 물어보세요” 소개이미지 [출처=켄쇼 트위터]

켄쇼는 이를 바탕으로 ‘시장분석 대중화’에 적극 나서고 있다.지난해 4월 CNBC는 자사 프로그램 ‘패스트머니(Fast Money)’에 “켄쇼에게 물어보세요(Ask Kensho)”란 코너를 선보였다. 일반인들이 트위터에 남기는 질문을 켄쇼 시스템이 받아 실시간으로 예측해 답해주는 방식이다. 이 매체는 켄쇼를 활용한 통계분석 및 예측 코너도 진행 중이다.

그래서일까. 현재 나들러의 회사 기업가치는 투자유치 규모를 훌쩍 뛰어넘는 7760억원(6억5000만달러)에 달한다. 

켄쇼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는 다니엘 나들러(가운데)

물론, 현지 금융시장은 반신반의하고 있다. “정보민주화 라는 켄쇼의 목표는 비밀ㆍ보안을 중시하는 월가집단과 충돌할 개연성도 있다”고 시장 관계자들은 말한다.

그러나 창업 초기 나들러가 “(우리가) 분석한 귀중한 정보들을 모든 사람과 공유하고 싶다”고 밝힌 켄쇼의 “미션”은 현재 진행형이다.

factis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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