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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세돌 vs 알파고 5국] 이세돌 DNA, ‘경영’에 메가톤급 메시지 보냈다
-“흑 잡고 싶다”, 퍼스트무버 경영 시사점
-대국 때마다 진화, 4차산업혁명에 팁 제공



[헤럴드경제=김영상ㆍ송형근 기자]“저는 바둑을 잘 모르지만, 이세돌-알파고 세기의 바둑대결을 유심히 보니까, 기업 경영 트렌드에 묘하게 시사점을 던져 주더군요.”(임상혁 전경련 전무)

이세돌 DNA가 화제다. 인공지능 알파고와 세기의 바둑대결을 펼치며 인간한계에 도전하고 있는 그의 행보와 내면적 고통이 여과없이 전달되면서 묘하게 기업경영에 시사점을 주고 있는 것이다.

바둑은 인생이며 우주다. 그리고 바둑은 기업경영과 닮았다. 누구나 알고 있는 말이다. 모서리 실리작전과 중원에서 벌이는 대전투, 위기 국면에서의 빛나는 묘수 등 경영자가 받아들여야 할 팁이 무궁무진하게 담겨 있는 게 바둑이다.

최근 ‘정수현 9단의 고수 경영’이라는 책을 낸 정수현 9단(명지대 바둑학과 교수)은 “바둑은 영토(집)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며, 경영은 시장(고객)을 확보하기 위한 경쟁이다. 이 경쟁에서 이기려면 경영에서는 인적ㆍ물적 자원을, 바둑에서는 바둑돌을 잘 활용해 판세를 잘 운영해야 한다. 크고 작은 문제에 대한 의사결정을 끊임없이 내려야 하는 것도 바둑과 경영의 닮은 점이다. 전략적 사고를 해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해야 하는 것은 바둑판에서도 중요한 경영의 원리가 된다”고 했다.

이같은 바둑과 경영의 조화가 이세돌의 인공지능을 향한 고군분투와 오버랩 되면서 불황을 겪고 있는 기업들에게 의미심장한 교훈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세돌 9단(오른쪽)이 2국 대국후 자신의 바둑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택한다면 퍼스트 무버(First Mover)=이세돌 9단은 첫판부터 충격적인 패배를 당했다. 프로바둑 고수의 세계에선 패배 자체가 충격이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판후이 2단을 꺾었다고는 하지만, 세계최강 이세돌이 맥없이 인공지능에 무릎을 꿇을 줄은 아무도 예상치 못했다. 개인을 떠나 지구가 충격에 휩싸였다. 세판을 연거푸 지고 네판째 인공지능을 꺾었지만, 알파고에 대한 두려움은 여전히 이세돌 9단을 둘러싸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두려움은 인간만이 극복할 수 있는 대상이라는 점도 보여줬다.

4국 후 기자간담회에서 이세돌 9단은 “5국에선 흑으로 싸우고 싶다”고 했다. 구글 측에서도 이는 흔쾌히 받아들여졌다.

이 9단이 흑을 자청한 것은 한가지 이유에서다. 대국을 주도하면서 자신만의 그림을 그리고, 알파고가 어떻게 대응하는지 다시한번 확인하고는 또다른 창조의 영역을 넓혀가겠다는 뜻이다. 인간의 무한한 도전의식이 느껴진다.

흑을 쥐면 선수를 취하기에 자신의 스타일대로 바둑판을 그려나갈 수 있다. 대신 7.5집의 덤을 부담해야 한다. 먼저 두는 대신 백보다 무조건 7.5집을 많이 확보해야 이긴다는 뜻이다.

그래서 프로 기사들은 둘로 나뉜다. 주도권을 쥘 수 있는 흑을 선호하는 이도 있고, 흑이 두는 수에 따라 대응하는 것을 좋아해 백을 선호하는 이도 있다.

이는 기업이 추구하는 ‘퍼스트 무버’ 전략이 연상된다. 이세돌의 뜻은 단호하다. 알파고 능력을 답습하는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가 아닌 퍼스트 무버로 자신의 전략 영역을 창조적으로 꾸미겠다는 것이다. 그가 10년 이상 세계 바둑계를 주름잡았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는 평가다. 패스트 팔로어 전략 역시 훌륭할 수 있지만, 1등 기업을 향한 창조적 발걸음은 아무래도 퍼스트 무버 쪽에 중심이 실린다는 면에서 기업이 주목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진화(evolution), 인더스트리 4.0=알파고는 6개월 전 판후이 2단을 꺾을때보다도 훨씬 강해져 있었다. 이 9단이 첫대국에서 충격을 먹은 것은 알파고의 102번째 수와 관련이 크다. 이 수는 대국 후 ‘신의 한수’로 평가됐다. 판후이 2단과 싸울때의 알파고가 내놓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6개월간 구글의 장담대로 알파고는 계속 진화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세돌 9단 역시 맞불을 놓는 진화를 도모했다. 알파고의 위력과 방심으로 허무하게 한판을 내준 이세돌은 2국에선 싸움을 걸어갔고, 3국에선 자존심을 접고 자신의 스타일을 바꿨다. 바둑 최고수가 본인 성향의 대국을 변화하는 것은 엄청난 인내심이다. 여러가지 시도를 해도 3국까지는 졌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4국에서 실리 작전 후 거대한중원 침투를 택했고, 세계 바둑사에 남을 78번째 묘수를 둠으로써 알파고를 코너에 몰아넣은 것도 이 9단이 택한 진화의 힘이었다.

홍민표 9단은 해설을 통해 “알파고의 진화 속도가 엄청나지만, 이 9단의 진화 흐름도 대단하다”며 “4국 내용을 보면 3국을 통해 알파고의 허점을 간파했고, 이를 시험한 것 같다. 며칠만에 이같은 진보를 이룬 것은 경이적”이라고 했다.

4차 산업혁명의 총아로 불리는 인공지능에 맞서 이세돌 9단 역시 버전1, 2, 3을 벗어나 버전 4.0으로 도약한 셈이다.

미래의 황금알로 불리는 4차 산업혁명이 코앞에 다가왔지만 정작 다가서지 못한채 글로벌 흐름만 주시하고 있는 국내 기업들에게 버전 4.0의 이세돌은 분명 시사점을 던진다.

초심자(beginner), 신성장=기업은 늘 성장을 꿈꾼다. 스파이더맨처럼 완벽한 불황 차단 그물망을 치는 것도, 거대한 괴물처럼 한순간에 먹잇감을 쓰러뜨리는 것도 성장을 향한 기업 고유의 특권이다. 하지만 기초 체력이 튼튼하지 못한 기업은 고공성장 중에서도 늘 추락의 위험을 안고 산다. 초심(初心)을 잃으면 갑자기 붕괴할 수 있다는 의미다. 한때 잘나가던 소니나 도요타가 추락했을 때가 이랬다.

이 9단은 알파고 앞에선 초심자가 됐다. 도전하는 자세로 바꿨다. 자신의 기초체력에 대한 고민을 다시 했다. 원점에서 시작했다.

김성룡 9단은 “(4국에서)이 9단이 초심의 바둑을 두고 있다. 겸손함을 바탕으로 한 투혼의 승부수를 던진 것이 승리 요인”이라고 했다.

기업이 신성장동력을 장착할땐 기초체력을 다시 들여다보고, 그 바탕위에서 고도의 전략 전술을 발휘할때 시너지가 난다는 점에서 이 9단의 초심 역시 유효한 경영 전략이다.

ys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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