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지역은 1963년부터 세계 고고학계가 주목하는 장소였습니다. 터키 동부, 시리아 접경 지역 고지대에서 건축 연대를 알 수 없는 석조 유적이 눈에 띄었기 때문이죠. 가지런하게 배열된 돌기둥의 흔적, 독특한 형태의 동물들이 새겨졌습니다.
유목민의 제보로 시작된 미국 시카고 대학과 터키 이스탄불 대학의 공동조사, 그리고 첫 발굴 30년 후 슈미트에 의해 고대 석조 건축물 ‘괴베클리 테페(Gobekli Tepe)’의 존재가 명확히 드러납니다.
▶1만1500년 전, 빙하기에 만들어진 석조 유적=1994년부터 20여년, 슈미트 박사의 주도로 이 지역에 대한 대대적 발굴이 이뤄졌습니다. 그는 수십년간 큰 진전이 없자 장소를 옮깁니다. 그는 고고학 문헌을 뒤져보며 주변을 샅샅히 탐사합니다.
그러던 어느날 고원에서 원형으로 배열된 돌들을 발견합니다. ‘괴베클리 테페’를 발견한 겁니다. 20여개에 달하는 원 모양으로 세워진 총 200개 이상의 T자 형태 돌기둥. 차가운 땅 밑에서 서서히 위용을 드러냈습니다. 이 가운데 가장 높은 것은 5.5미터에 달했습니다.
유적의 크기에 놀란 학자들. 그러나 이건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습니다.
지층 분석, 탄소측정연대 결과 건축 시기가 무려 기원전 9500년경으로 밝혀진 겁니다. 지금으로부터 1만1500년 전, 매머드가 뛰놀던때입니다. 고고학계는 발칵 뒤집혔습니다.
▶기존 문명발달 이론을 뒤흔들다=기둥 하나의 무게만 10~20톤, 무거운 건 무려 50톤에 달했습니다. 이 정도 돌을 운반과 조각, 건설 하기 위해선 적어도 500명 이상의 노동력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읍니다.
기존 고고학에 따르면 1만년 전 인류는 개별 가족 단위의 생활을 영위했습니다. 집단 노동력은 커녕, 먹고 살기 급급했다는 얘기죠.
그러나 ‘괴베클리 테페’는 이런 통념을 뒤흔들었습니다.
돌을 다루기 위한 고도의 석재 가공술, 구조물의 무게와 배치 등을 고려할 측량술과 수학적 지식까지 1만년 전 인류가 이런 문명 수준을 이뤘을 거라고는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놀라움은 계속됐습니다. ‘괴베클리 테페’ 주변에서는 대형 농경 유적이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신석기-농경생활-사회분화’라는 기존의 문명발달 이론을 완전히 뒤집는 흔적인거죠.
다만 주변에서 동물을 잡아 잡아먹고 묻은 야생 동물들의 뼈가 대량으로 발견됐습니다. 수렵민이 이런 거대 석조물을 건설했을 거라는 설이 제기될 수밖에요. 그렇다면 수렵과 채취 만으로 수백명 이상의 집단 군락을 이룰 수 있었단 의미인데요.
인류 최고(最古)의 석기 유적. ‘괴베클리 테페’, 인류의 역사를 한 단계 끌어올린 이 구조물, 우리에게 시사하는 건 뭘까요.
[미스터리 매니악] 1만2천년 전 ‘괴베클리 테페’, 학계를 뒤엎다②에서 계속됩니다.
shg@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