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조선인 시인 김시종이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생애 처음 풀어낸 자서전 ‘조선과 일본에 살다’(돌베개)에 쓴 고백이다. 시인은 식민지통치라는 말조차 몰랐던, 해방이 되려 암흑으로 여겨졌던 철저한 ‘황국소년’이었다. 정감어린 일본의 노래에 푹 싸여 한글은 가나다라의 가 하나 쓰지못한 자발적 신생일본인이었다는 것이다.
조선과 일본에 살다/김시종 지음, 윤여일 옮김/돌베개 |
책은 4.3사건에 상당부분 할애돼 있다. 당시 여러 활동에 가담하고 제주 성내에서 연락활동 등을 한 그의 생생한 증언이 담겨있다. 밀항 끝에 오사카의 재일 집단거주지 이카이노에 자리를 잡은 그는 불안과 가난 속에서 차츰 자리를 잡고 활발한 사회, 문학 활동을 이어간다.
시인은 불과 몇 년 전 까지도 4.3에 대한 이야기를 아내에게조차 숨겼다고 털어놓는다. 고향을 떠나온지 49년만인 1998년 비로소 제주를 방문하고 한국국적을 취득한 그의 ‘재일을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란 화두가 책 뒤에 무겁게 딸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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