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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더스카페] ‘희망난민’으로 몰린 청년층이 찾는 곳은?
[헤럴드경제=이윤미 기자] 일본의 내각부가 2013년 실시한 ‘일본과 여러 외국 젊은이가 지닌 의식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젊은이는 일본의 젊은이보다 훨씬 더 희망을 품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의 젊은이는 42%가 ‘희망이 있다’고 답했으며, 44%는 ‘굳이 말해야 한다면 희망이 있다’라고 응답했다. 일본의 경우에는 ‘희망이 있다’고 대답한 젊은이는 불과 12%, ‘굳이 말해야 한다면 희망이 있다’라고 말한 젊은이는 49%였다.

이 수치만으로 볼 때는 한국의 젊은이들은 희망적이고 꿈을 품고 있어 활기차 보인다. 그러나 최근 청년 실업율이 기록을 경신하며 사회문제화되고 있는 현실에서 보면 위험천만하다. 희망이 클수록 현실과의 격차로 인한 부작용은 더 클 수 밖에 없기 떄문이다.

희망난민/후루이치 노리토시 지음,이인숙 옮김/민음사
학업과 직장, 결혼이라는 평범한 삶이 쉽게 가질 수 없는 일이 되면서 젊은이들의 발길은 커뮤니티, 사회공동체 등으로 향하고 있다. 일본의 사회학자 후루이치 노리토시는 이들을 ‘희망난민’이라 부른다. 희망이 있어도 그걸 쉽게 이룰 수 없는 현실 때문에 고뇌할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노리토시는 저서 ‘희망난민’(민음사)에서 경제적 어려움과 외로움에 처한 일본의 젊은이들이 가는 곳은 어디이며, 어떤 문화를 만들어내고 있는지 직접 그들 속으로 들어가 보여준다.

이 책은 저자가 NGO가 주최하는 세계일주크루징의 모델이 된 ‘피스 보트’에 승선, 100일 남짓, 300여명의 젊은이들과 24시간 지낸 기록이기도 하다. 저자는 유행이되다시피한 피스 보트를 단순한 여행상품으로 보지 않는다. 일본 젊은이들의 문제, 일본 사회의 현안이 집약된 현상으로 지목한다.

“피스 보트는 일본의 축소판이다. 이것을 통해 ‘커뮤니티’나 ‘안식처’의 문제는 물론 젊은이 문제, 세대간의 갈등 문제, 조직의 문제, 자기 찾기의 문제 등이 다양한 양상으로 드러나고 있다”는 것이다.

피스 보트는 한마디로 ‘모두 함께 떠나는 자기찾기’여행이란 것. 즉 사회적으로 인정욕구를 채우지 못하고 외로움에 처한 젊은이들이 종래 자기찾기 여행에 따라다니는 외로움을 피하기 위해 단체여행에 나서고 있다는 얘기다. 지난날 매스 투어리즘에서 벗어나 홀로 ‘자기찾기’를 하던 젊은이들이, 다시 매스 투어리즘의 공동성으로 회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신단체여행의 특징은 단순히 관광지를 둘러보는 유람식 관광이 아니라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자원봉사활동이나 난민 지원 등이 결합된 것으로 인정 욕구를 기반으로 삼고 있다는 사실이다. 피스 보트는 ‘세계평화’와 ‘호헌’등의 정치적 이슈까지 내걸고 있다. 세계를 평화롭게 한다는 생각, 즉 변혁을 위한 행동이 아닌 생각이 젊은이들을 끌어들이는 요인이라는게 저자의 분석이다.

저자가 100여일간 피스 보트에서 만나고 관찰한 젊은이들의 모습은 배에 함께 승선한 ‘전공투’세대와 현격한 차이로 눈길을 끈다.

가령 미국 체류 중 객실 침수와 엘리베이터 고장 등이 발생하자 두 세대는 대립하게 된다. 미 해안경비대가 안전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했다며 출항 허가를 내주지 않자 갈등이 고조되기 시작한 것. 배에 수십군데 구멍이 났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고 항해 중 예기치 않았던 안전 사고가 발생하자 학생운동세대인 연장자들은 선내 집회를 열고 주최측에 도의적 책임을 묻겠다고 나선다. 반면 젊은 그룹은 이런 연장자들의 태도에 되려 문제를 제기하며 “훌륭한 피스 보트를 흔들면서 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말도 안된다”고 항의한다. 연장자들이 안내데스크로 몰리자 우는 젊은이들까지 생긴다.

저자는 이런 젊은 세대 그룹을 언어나 논리가 아닌 감각으로 이어진 관계이기 때문에 겉으로는 공고해보여도 매우 유약하고 불안정한 관계라고 분석한다. 젊은이들의 정치적 행동으로 보이는 것들도 실은 정치적이 아니란 것. 가령 선상에서 호헌 9인조 댄스를 춘 그룹은 9조 댄스라는 장치가 있었기 때문에 헌법9조에 대해 배우고, 팔레스타인 난민 캠프를 방문했기 때문에 난민 문제에 대해 집단활동을 했다는 해석이다. 이런 행동은 항해가 끝나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게 마련이다.

저자는 피스 보트는 외로움이라는 인정의 문제는 해결됐으나 또 다른 문제인 궁핍함은 여전히 남게됐음을 지적한다. 오히려 젊은이들의 ‘돈이 없어도 즐겁게 살아간다’라는 태도, 줄어든 경제적 자본을 사회관계 자본으로 보완하는 모습은 현상을 악화시킨다고 본다. 피스보트 크루즈 여행에서 돌아온 젊은이들 중엔 저임금을 받으며 불안정한 노동시장에서 일하는 이들이 많았는데 이들은 노동환경을 개선하는데에는 관심이 없다. 왜냐하면 일터 밖에 피스 보트를 통해 형성한 따뜻한 커뮤니티가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런 목적없는 공동성의 미래를 암울하게 바라본다. 커뮤니티와 안식처 외에는 희망이 없는 사회가 과연 건전할까? 이는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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