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본주택 안팎의 풍경은 아파트 평균 청약경쟁률이 전국 으뜸이라는 대구의 상황을 여실히 나타냈다. 이날 갓 문을 연 이곳엔 50~60명이 대기열을 이루고 있었다. 견본주택에 발을 들여놓으려면 적어도 10분은 기다려야 했다. 민소매, 반바지 차림의 내방객들이 눈에 띄었다.
대구를 남북으로 잇는 동대구로(路)를 끼고 있는터라 주차장에 진입하려는 방문객 차량 4~5대가 마지막 차로를 점령했다. 주변 교통흐름이 눈에 띄게 느려지며 경적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나왔다. 경찰 순찰차가 나타나 “차로에 바짝 붙으세요”라고 방송하며 통제했다.
지난 1일 대구 수성구 범어동에 문을 연 ‘범어 센트럴 푸르지오’ 견본주택에 방문객들이 줄을 서 기다리고 있다. 대우건설은 3일까지 3만여명이 들렀다고 밝혔다. 겉으로 보기엔 열기가 대단하지만 방문객들이나 분양 관계자들은 “예전 같진 않다”고 불안감을 드러냈다. |
지난해 분양을 시작한 한 아파트단지 견본주택. 1일 이곳을 찾았는데, 방문객은 보이질 않았다. 이곳을 비롯해 달성군이나 동구에 들어서는 몇몇 아파트엔 미분양분이 남아 있다. |
작년 대구에선 새로 문을 여는 견본주택마다 사람으로 미어졌다. 지난해 9월 ‘힐스테이트황금등’(전체 청약경쟁률 622대 1), 5월 ‘동대구반도유보라’(273대 1) 등의 사업장은 작년 분양시장의 열기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곳들이다. 올 1월에도 대구 분양시장에 데뷔한 새 아파트의 평균 청약경쟁률은 132.2대 1로 전국 평균(8.9대 1)을 크게 앞질렀다. 겉으로 보기에는 이런 작년의 분양훈풍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다만 현장에서 만난 수요자들에게선 일말의 불안감도 엿보였다.
달서구 월성동에서 온 최모(53) 씨는 “내 주변에도 작년에 당첨받은 분양권 되팔아서 재미 본 사람들이 여럿이다. 그런데 대구 시장 분위기도 많이 가라앉아서 이제 재미보기도 힘들어지는 것 같다”고 했다.
자영업을 한다는 김진명(46) 씨는 “미분양 아파트가 많다는데 그게 영향이 커지면 아무리 대구 시내 한복판에 들어서더라도 나중에 가격을 제대로 유지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대기인수 33명’이 적힌 번호표를 손에 쥐고 30분쯤 기다려서야 분양 상담석에 앉았다. 미분양을 언급했더니 상담사는 기다렸다는 듯, “대구도 다 같은 대구가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그는 올해부터 2018년까지 대구 각 구별 입주물량을 그래프로 표시한 자료를 보여주며 “도심인 수성구는 수요에 한참 못 미치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설명했다. 모델하우스 곳곳엔 ‘도심-외곽 양극화’를 주제로 다룬 신문기사를 확대한 자료가 걸려 있었다.
견본주택을 빠져나오니 챙이 넓은 모자를 쓴 떴다방(이동식 중개업소) 관계자들이 달라 붙었다. “웃돈은 붙을까요”라고 묻자 한 업자가 “위치가 좋으니까 조금은 붙어. 그렇다고 작년 만큼은 기대하면 안 돼. 전화번호 불러줘요 문자 줄게”라고 말했다.
국토교통부 집계에 따르면 지난 2월 말 기준 대구의 미분양 주택은 1666가구. 지난해 11월까지 114가구에 그쳤다. 미분양분 대부분은 동구나 달성군 같이 외곽지역에 들어서는 단지의 몫인 것으로 파악된다.
지난해 가을에 문을 연 한 아파트단지 견본주택도 찾았다. 청약 당시엔 1순위에서 마감됐던 곳이지만 현재 70여가구 정도가 미분양으로 남은 것으로 알려진 곳이다. 분양대행사 직원은 “동ㆍ층이 나쁜 곳을 배정받은 당첨자들이 계약을 안 한 것들이 남아 있다. 59㎡부터 84㎡까지 모두 선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견본주택을 찾은 방문객은 단 한명도 없었다.
달성군 다사읍에 있는 한 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올해 입주하는 새 아파트 분양권 전매가 부진하다. 웃돈도 로얄층, 향 좋은 아주 일부 세대에만 기껏해야 200만원 정도 붙었다”고 했다.
최병련 한국공인중개사협회 대구지부장은 “달성군 등 2만가구 넘게 올해 입주하는데 분양을 받겠느냐”며 “미분양이 지속적으로 소진되지 않는다면 그 영향이 도심쪽으로 퍼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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