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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기업집단기준 10조원으로 높여야...경제력 집중 막는 목적이라면 기준 높여 이는 게 바람직
[헤럴드경제=윤재섭 기자]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 3일, 벤처기업으로 출발한 카카오, 셀트리온 등을 포함해 무려 65개 기업을 대기업집단으로 지정하면서 논란을 부르고 있다. 대기업집단 지정 제도에 따라 한창 성장해야할 많은 기업들이 30여개 법령에 의해 규제를 받게 된 때문이다.

문제는 복지부동이었다. 공정위는 8년째 대기업집단 분류 기준을 묶어놨다. 나라 경제 규모가 커지고, 인플레이션을 감안해야 하는 데, 꼼짝않고 이 기준을 그대로 적용한 것이다. 이로 인해 한창 성장해야 할 중견기업들이 꼼짝없이 출자제한 등의 규제를 받게 생겼다. 우리 경제의 성장잠재력이 그만큼 쪼그라들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 셈이다. 정부가 시대를 거스르면서 복지부동하는 이유는 철학도, 원칙도 없기 때문이다. 애초 대기업집단제도를 도입한 것은 소수 재벌에 의한 경제력 집중을 막기 위해서다. 도입 취지에 맞게 이 제도를 무리없이 운영하려면 정부는 시장변화에 유연히 대응하고, 가능한 규제대상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왜 기준 높여야 하나=‘초록은 동색’이라지만 대기업집단이라고해서 모두 같은 게 아니다. 정부가 발표한 ‘2016년 대기업집단현황’에 따르면 삼성그룹의 자산은 348조원을 웃돌아 대기업집단 가운데 맨 꼴찌인 카카오(5조1000억원)와 약 70배 차이를 보인다. 두산(32조4000억원), KT(31조3000억원), 신세계(29조2000억원), CJ(24조8000억원) 등 16~19위 대기업과도 무려 10년 이상 차이가 난다. 대기업집단제도처럼 ‘별개의 대상을 하나의 그룹’으로 묶으려면 수준이 비슷해야 한다. 자산규모의 차이가 많게는 70배, 적게는 10배나 나는 기업들을 모두 하나로 묶어 규제한다면 공정한 규제라고 볼 수 없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같은 맥락에서 지난해 3월 대기업집단의 분류기준을 현행 자산 5조원 이상에서 10조원 이상으로 2배 증액할 것을 건의하는 등 지속적으로 기준완화를 주장했다. 이 기준을 적용하면 대기업집단은 37개로 줄어들게 된다.

규제가 목적에 부합하려면 그 대상을 최소화하는 게 바람직하다. 더욱이 대기업집단 지정제도는 경쟁을 제한하는 조치이다. 규제가 너무 강하면 부작용이 클 수밖에 없다. 대기업집단으로 지정되면 공정거래법에 따라 계열사 간 상호출자는 물론 신규 순환출자, 채무보증, 일감 몰아주기가 불가능하다. 대규모 내부 거래, 비상장사 중요 사항, 기업집단 현황 같은 경영상 주요 내용은 의무적으로 공시해야 한다. 산업자본의 금융사 지배 금지, 이른바 금산분리 원칙도 적용 받는다. 이렇게 되면 당장 카카오는 추진 중인 인터넷전문은행 사업에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현재 정부는 인터넷전문은행에 한해 은산 분리(산업자본의 은행 지분 소유 제한) 원칙을 적용하지 않거나 완화해주는 법안을 입법추진 중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대기업집단은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경제력 집중을 규제하기 위해서라면 범위를 좁혀 상위 10대 재벌만 규제 대상으로 삼아도 된다”며 “여러 기업을 대기업집단으로 규정해 법을 엄정하게 집행하지 못하는 것보다는 상위 기업을 제대로 규제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복지부동이 문제, 자발적 행정수행 능력 키워야=공정위도 기준 상향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고 있다.

곽세붕 공정위 경쟁정책국장은 “2008년도에 자산 총액 기준을 2조원에서 5조원으로 상향한 이후 경제 규모도 굉장히 커졌고 또 기업집단 수나 계열회사 수도 많이 늘어났다”며 “대기업집단 관리의 효율성 측면에서 본다면 상향 필요성은 있다”고 말했다. 곽 국장은 다만 “사회·경제적 파급 효과, 기업집단의 힘을 이용해 시장을 집중해 나가는 폐해를 고려해야 한다”며 “추진 방법이나 추진 내용에 대해서는 지금 현재 결정된 바 없다”고 덧붙였다.

공정위의 한 고위관계자도 “상향 필요성에 공감한다”면서도 “경제·사회적 파급 효과가 큰 사안인 만큼 상향 여부를 신중히 판단하겠다”고 밝혔다.

공정위가 기준 상향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이를 실행하지 못하는 것은 ‘재벌 특혜 시비’를 우려한 때문으로 보인다. 더욱이 올해는 4ㆍ13 총선을 앞두면서 운신의 폭이 좁아졌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이 같은 행보는 무책임하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국가 경제의 앞날을 걱정하는 경제당국이라면 규제의 합목적에 따라 소신있게 정책을 펴야 한다. 때를놓치면 모든 걸 그르치게 되는 일이 수없이 많다. 경제도 마찬가지다. 성장잠재력을 키워야 할 때 기업의 발목을 잡게 되면 당해 기업은 영영 회생기회를 놓칠 수도 있다.



i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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