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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로또당첨도, 인류진화도 정말 우연일까
발생확률 ‘0’또는 개연성 낮다고 믿는 일들
아무리 희박해도 일어날수밖에 없었다
인간의 오해는 사후적 해석 때문



영국의 성격파 배우 안소니 홉킨스에게 믿지 못할 일이 일어난 건 1972년 여름. 조지 파이퍼의 소설 ‘페트로브카에서 온 소녀’를 각색한 영화의 주연을 제안받고 그는 책을 사기 위해 런던 시내로 갔다. 그런데 대형서점에는 찾는 책이 없었다. 집에 돌아가기 위해 레스터 스퀘어 지하철역에서 열차를 기다리던 중 그는 옆 자리에 버려진 책 한권을 발견했다. 바로 ‘페트로브카에서 온 소녀’였다. 우연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얼마 후 파이퍼를 만난 홉킨스는 책 얘기를 꺼냈다. 파이퍼는 더 놀라운 얘기를 들려준다. 자신이 갖고 있던 책을 친구에게 빌려주었는데 그 역에서 잃어버렸다는 것. 그 책은 미국 출간을 위해 영국식 영어를 미국식으로 바꾸고 주석을 단 것이었는데, 바로 홉킨스가 주운 바로 그 책이었다.

이런 믿을 수 없는 사건들은 정말 단순한 우연의 일치일까.

세계적인 통계학자인 데이비드 핸드 런던 임페리얼 칼리지 명예교수는 저서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에서 “극히 이례적인 일도 일어날 수 밖에 없고 확률이 0에 가까운 사건 또한 일어난다”며, 이를 ‘우연의 법칙’이라 이름한다.

발생확률이 지극히 적은, 즉 극도로 개연성이 낮은 사건들이라할 지라도 초자연적 현상은 아니란 얘기다.

우연이 일어나는 스펙트럼은 굉장히 넓다. 벼락에 맞거나 로또에 당첨되는 일부터 경제 위기, 정치적 격변, 인류의 진화와 우주의 생성까지 우연은 도처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를 관통하는 법칙을 제대로 이해하면 인간사를 이해할 수 있다는게 저자의 논지다.

이런 영역은 과거에 흔히 미신이나 종교, 예언이 담당했다. 패턴을 오해해 생기는 미신이나 과학이 발달하기 이전, 애매모호함으로 포장해 사람들을 미혹시킨 예언 등은 우연의 세계를 지배해 왔다. 

“우리 눈에 띄지만 어떤 원인도 없고 단지 우연인 패턴은 보통 미신의 기반을 이룬다. 미신이란 실제로는 없는 인과관계가 존재한다는 믿음이다.”(‘신은 주사위놀이를 하지 않는다’에서)

저자는 우연의 법칙을 다섯가지로 정리한다.

첫번째 법칙은 ‘결국 일어나게 되어 있다’는 필연성의 법칙. 만약 가능한 모든 결과들의 목록을 완전하게 작성할 수 있다면 그 결과 중 하나는 반드시 나타난다는 것이다. 1400만분의 1의 확률인 로또도 마찬가지다.

1등에 당첨되는 확실한 방법은 바로 모든 가능한 숫자세트를 사버리는 것이다. 실제로 이 방법이 동원된 적이 있었다. 1992년 2월15일, 몇주 동안 1등 당첨자가 나오지 않아 美 버지니아주 로또의 1등 당첨금은 2700만 달러로 불어나 있었다. 그러자 자칭 ‘국제로또펀드’라는 집단이 꾸려졌다. 소액투자자 2500명으로 이뤄진 이 집단은 모든 숫자 세트를 사는데 필요한 700만 달러를 마련했다. 그 주 로또 당첨번호는 8,11,13,15,19,20. 이들이 확보한 복권 한 장에 그 숫자가 들어 있었다.

우연의 법칙 두번째는 ‘아주 큰 수의 법칙’이다. ‘아주 많은 기회가 있으면, 아무리 드문 일도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쉽게 얘기하면 0.01%의 확률로 벌어지는 아주 희박한 일도, 전 세계 70억명 인구를 감안하면 반드시 어디에선가는 발생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우연의 법칙 세번째 ‘선택의 법칙’은 입맛에 맞는 데이터만 골라 결론을 도출하는 것이다. 이런 예는 흔하다. 링컨과 케네디 암살의 공통점 같은 것이 한 예. 수 많은 데이터 중 이야기를 뒷받침하는 자료를 선택해 부각시키고 수많은 다른 자료는 버린다. 그러면 결과적으로 두 사건 사이에 엄청난 우연의 일치가 있는 것처럼 보이게 된다.

네번째는 ‘확률 지렛대의 법칙’. 초기의 미세한 차이가 결과에 엄청난 차이를 발생시키는 경우다. 흔히 나비효과로 불린다.

우연의 법칙 마지막은 ’충분함의 법칙‘으로 흔히 맞는다고 치는 것이다. 이 법칙을 따르는 사람은 실은 유사할 뿐인 것들을 일치하는 것들로 받아들인다.

왜 인간은 이토록 세상을 오해하는 걸까. 저자는 이를 생물학적으로 잘못된 인지 해석틀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가령 어떤 일이 벌어지고 나면 누구나 ‘그럴 것 같았어’라고 말하는데, 이는 미래가 과거가 된 시점에서 사건의 연쇄를 짜 맞추기 때문이다. ‘사후설명 편향’이라는 것이다. 가령 9.11테러의 경우 사건으로 이어진 단계들을 사후에 확인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당시에 일어나던 온갖 사건들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 단계들을 알아채는 것은 불가능하다.

저자는 인간의 진화와 우주생성에로 시야를 넓힌다. 창조주의 지적설계론에 맞서 저자는 자연선택론을 편다. 자연선택에 의해 생물은 조금씩 진화해가고 그 결과 중 하나가 인간이라는 것. 우주는 인간에게 적합하게 만들어졌다는 인식도 마찬가지다. 우주에서 인간이 발생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라는 것. ‘아주 큰 수의 법칙’에 따르면 지구와 같은 환경을 지닌 행성은 반드시 어디엔가 존재한다.

기적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라는게 저자의 결론 격이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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