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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이프 칼럼] 무슨 의도로 다시 돌아왔는가 - 김다은 소설가/추계예술대 교수
어김없이 봄이 찾아왔다. 산책을 나간 앞산의 공기는 맑고 투명했으며 발밑에서 올라오는 대지의 냄새는 상쾌했다. 하얀 거품처럼 벚꽃이 부풀어 올랐다. 조그마한 꽃잎들과 잎사귀들 사이를 부지런히 오가는 이름 모를 새들도 기뻐 보였다. 말 그대로 찬란한 봄이었다. 그런데 아름다운 산책을 끝내고 아파트로 돌아오는 길목에서, 필자는 일본 시인 잇사(小林一茶)의 하이쿠를 떠올리고 있었다. “그럴 가치도 없는 세상, 도처에 벚꽃이 피었다.”

꽃은 어떤 의도로 세상에 왔을까. 진화론자들의 생각대로 우연히 생겨난 존재일까, 아니면 의도적으로 창조된 존재일까. 성경의 창세기를 보면, 하나님이 풀과 채소와 열매 맺는 나무를 셋째 날에 만드셨다. 태양과 달을 만든 넷째 날보다 앞서고, 물의 모든 고기들과 하늘의 모든 새들을 만든 다섯째 날보다 앞선다. 아름다운 꽃들은 신이 인간을 위해 먼저 준비한 선물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런데 시인은 이 세상이 벚꽃이 필 가치도 없는 곳이라고 노래하고 있다.

동양뿐만 아니라, 봄꽃에 대해 비슷한 생각을 보여준 서양 시인도 있다. 미국의 시인이자 극작가인 에드나 세인트 빈센트 밀레이(Edna St. Vincent Millay)는 ‘봄’이라는 시의 첫 구절에서 “무슨 의도로, 4월이여, 다시 돌아왔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시인은 “4월이 천치”라고도 했다. 인간들은 마실 것도 채우지 않은 빈 잔이고 계단에 카펫도 깔지 않았는데, 봄이 먼저 사방에 꽃을 뿌려대니 바보라는 것이다. 시인은 봄이 “아름다운 것만으로 충분치 않다(Beauty is not enough)”고 말한다.

시인들은 꽃을 피운 4월을 천지라고 탓했지만, 4월은 얼어붙은 땅에서 자연의 생명력을 길어 올리는 힘든 소임을 충실히 완수했다. 봄의 축제에 마실 잔을 채우지 않았고 계단에 카펫도 깔지 않은 것이 인간이었다. 4월을 탓하는 척하며, 시인은 준비도 없이 봄을 맞는 인간들을 탓하고 있는 것이다. 산천에 피어난 꽃들을 바라볼 시간이나 여유가 없는 사람을 일컫는 것이 아니다. 잔에 술을 채워놓거나 진정 화려한 카펫을 깐 삶을 살라는 뜻은 더더욱 아닐 것이다. 인간은 어떻게 봄을 맞아야한다는 것일까.

필자가 에드나 밀레이의 시구를 바꾸어 보았다. ‘무슨 의도로, 사람들이여, 다시 돌아왔는가?’ 시인이 4월에게 던진 질문을 인간에게 던져본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매일 어딘가로 다시 돌아와야 한다. 집으로 돌아와야 하고 일터로 돌아와야 한다. 그때 우리는 어떤 의도로 돌아오고 있을까. 당장 코앞에 놓인 제 20대 국회의원 선거의 후보들도 이 구절을 놓고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고, 저마다 직장이나 가정이나 인간관계에 적용해보아도 좋을 듯하다. 다시 돌아왔을 때, 봄꽃을 반기듯, 자신을 반겨주는 자는 얼마나 있는가. 아예 돌아오지 않았으면 하는 사람이 되어 있는 것은 아닌가. 봄에 돌아온 꽃들! 꽃들은 그 무심한 아름다움으로 인간을 더없이 기쁘게 만들면서도 세상을 아름답게 바꾼다. 인간도 그런 의도로 인생을 살아야한다고 시인들이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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