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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 칼럼] 주인 보다 마름에 충성한 정치의 최후
춘추시대 제(齊)나라 권력자 최저(崔)가 자산의 부인과 간통한 군주(莊公)를 시해했다. 당시 현자(賢者)로 이름이 높았던 안영(晏)은 관행에 따라 죽은 장공의 뒤를 따라 죽지도, 그렇다고 최저에게 허리를 굽히지도 않았다. 당시 안영이 내세운 논리는 이렇다.

“군주는 백성 위에 있지만 백성을 깔봐서는 안된다. 군주란 통치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를 보존하기 위해 존재하기 때문이다”

“신하는 군주 개인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국가를 위해 애쓰는 군주를 보좌하는 존재다”

안영에게 충성의 대상은 군주 개인도, 권력 자체도 아니었던 셈이다.

최저는 수 차례의 정변을 통해 권력을 유지한 ‘정변의 달인’이었다. 하지만 ‘오뚜기(不倒翁)’으로 불렸던 최저도 후계 다툼을 틈탄 부하의 정변으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최저의 힘 앞에 굽신거렸던 이들도 모두 실각했다. 대신 백성을 충성의 대상으로 삼았던 안영이 국정책임자가 돼 제나라의 부흥을 이끈다.

전국시대 연(燕)나라 권력자 자지(子之)는 국왕이던 쾌()를 홀려 왕위를 빼앗는다. 즉위 후 일부 군대의 반발이 있었지만 진압한다. 그런데 자지는 백성들의 지지를 얻지는 못했던 모양이다. 이를 지켜보던 맹자(孟子)는 “연나라의 사태는 불의(不義)다”라고 규정, 제나라 왕에게 연나라를 칠 것을 권한다. 맹자는 나라의 주인은 군주가 아니라 백성이라는 철학을 체계적으로 확립한 인물이다.

제나라 군사들이 진입하자 연나라 백성들의 환영을 받았고, 결국 자지는 능지처참 당했다. 연나라 백성들은 자지를 처단한 이후에도 철수하지 않던 제나라 군대까지 물리친다. 중국 고대에서는 보기 드물게 백성들이 스스로 지도자를 바꾸고 나라를 지킨 사례로 꼽힌다.

20대 총선이 끝났다. 예상 밖의 결과에 ‘국민의 심판’이라는 해석이 많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에 대한 심판인지 좀 더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이번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이 보여준 행태를 보면, 국민 보다는 권력을 앞세운 점이 가장 실망스럽다. 국회의원의 금배지는 사실 국민이 달아주는 것임에도 많은 정치인들은 당이, 또는 당의 권력자가 나눠주는 것인 양 굴었다. 그야말로 ‘텃밭’ 좀 가진 마름이 전체 땅 주인처럼 행세를 했다. 머슴들이 주인을 건너뛰고 마름에게만 머리를 굽혔다. 심하게 표현하면 국민에 대한 반역이다.

역시 민심은 천심이고 그 깊이를 앞 수 없다. 야당이 원내 1당이 되고, 양당체제의 틀이 3당체제로 바뀌었다. 5분의 3이상이 돼야 법안처리가 가능한 국회법 조항을 감안할 때 3당이 합의하지 않으면 정치는 어렵다. ‘힘’만 내세운 싸움을 하지 말고, 국민을 위한 대화와 타협을 하라는 게 국민의 뜻이 아닐까?

청와대와 대통령도 3년이나 지난 대선의 득표수에 사로잡혀 힘으로 현안을 해결하려해서는 안된다. 정치권도 총선 결과를 두고 내년으로 다가온 대선에만 눈이 멀어 또다시 저급한 싸움질만 한다면 더 가혹한 국민의 심판, 아니 불벼락을 맞을 지도 모른다. 

kyh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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