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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47일간의 세계여행] 96. 남은 거리 112km…걸을수록 아쉬움이…
-까미노 데 산티아고 +25:트리아까스텔라에서 사리아까지 23.5km



[헤럴드경제=강인숙 여행칼럼니스트]어제만큼은 아니지만 바람은 세차게 불어대고 회색빛 하늘은 곧 비를 몰고 올 것만 같다. 어제 오후 내내 잘 먹고 푹 쉬어서 발걸음이 가볍다. 비가 오든 말든 개의치 않고 활기차게 걸어가다 보니 뭔가 허전하다. 비가 내릴 듯해서 분명히 배낭에 커버를 씌우고 나왔는데 파란색 배낭커버는 안보이고 빨간 배낭만 지고 있는 것이다. 배낭커버는 까미노가 끝난 뒤의 여행에서도 중요한데, 이미 30분 이상 걸은 거리를 되돌아 갈 수도 없다. 이렇게 의도와 상관없이 버려지는 것도 있기는 하겠지 생각하며 그냥 걷는다. 배낭 커버야 대도시의 등산용품점에서 사면 될 것이다.



까미노의 궁극의 목적지 산티아고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가장 필요한 것만을 배낭에 담아 완전한 나의 의지와 발걸음만으로 이동하는 일이 전에는 왜 그리 어렵게 느껴졌을까? 까미노에서 만났던, 이해할 수 없었던 순례자들이 있었다. 네번째 까미노를 걷는 영국인 이안, 자기 집에서 출발해 2달 이상 걷는 중인 독일인들, 역시 두 달째의 걸음인 프랑스 할아버지, 이탈리아부터 걸어왔다던 루이스, 무려 일곱 번째 산티아고 순례 중이라는 한국사람도 있었다. 까미노 초반에는 그들이 다른 별에서 온 사람들처럼 느껴졌다. 평생에 한 번이라면 모를까 이 고생길을 늘이고 반복하는 사람들이 대단해 보였다.



하지만 25일을 걸어온 지금은 그들의 마음을 알 것 같다. 까미노데산티아고는 기간이나 횟수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일상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걸어서 산티아고로 향하는 여정은 세상의 길과 사람들을 만나게 하고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단순해진 일상에서 존재의 의미를 느끼고 복잡한 현실세계와는 다른 차원의 시간의 흐름을 알게 되는 것이다. 그런 감흥을 알게 된 사람들이 여러 번 혹은 장기간 이 길을 걷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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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사리아(sarria)로 가는 길은 사모스(samos)와 산실(san Xil)을 지나가는 루트 중에서 선택할 수 있다. 대부분의 순례자는 산실로 가는 길을 많이 선택한다는데, 우리는 5km정도 더 걷는 사모스의 수도원 방향으로 가기로 한다. 이제 거리는 걷는데 아무런 제약이 되지 못한다.

비오는 숲길은 질척하지만 공기는 상쾌하다. 갈리시아 지방의 까미노에서는 가장 중요한 유적지라는 사모스 수도원으로 가는 길은 인적도 마주 할 일 별로 없는 작은 마을들 몇 개를 만나고는 강을 따라 이어진다. 돌을 쌓아올린 오래된 집이나 작업장 같은 농가를 지나 시골의 정취와 향기가 물씬 풍기는 길을 따라 걷는다. 



안개비가 내려 공기 중에 물방울이 떠다니는 것 같다. 모든 것들이 신기하던 첫걸음과는 비교가 안되게 걷기에 익숙해졌다.

산지이니 방목해서 키워지는 소들도 만난다. 어제 알베르게에서도, 오늘 까미노에서도 다른 순례자를 만나지 못해서 이 소들이 더욱 반갑다. 울타리 안에선 그나마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녀석들이다.



사모스 수도원이 보인다. 깊은 산속에 웅장한 수도원이 숨어있다. 지금에야 진입로에 아스팔트가 깔리고 접근이 용이하지만 최초에는 6세기에 지어졌다는 이 수도원에 살던 수사들은 외부와 철저히 격리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여행을 좋아하고 자유의지가 충만한 나는, 신을 섬기며 평생을 보내는 수도자의 삶을 감히 상상할 수 없다. 나이 서른에 수녀가 되겠다고 견습수녀가 되어 떠났던 직장동료의 얼굴이 오버랩된다. 엄격한 수도회라서 세상에 자주 나오지 못할 거라 했던 마지막 그녀의 얼굴이 이 빗속에 아른거린다.

​아름다운 숲 길 끝에 나타난 사모스 마을은 생각보다 깔끔하다. 투박한 시골마을에 담쟁이 잎으로 둘러싸인 고즈넉한 수도원이 신비로운 기운을 품고 있을 줄 알았는데 여느 관광지처럼 잘 정비되어 있는 마을 모습이 약간은 실망스럽다. 이 수도원을 보려고 길을 둘러 온 것이니 오늘의 할 일을 반쯤은 해냈다. 수많은 수도자들이 머물고 수많은 순례자들이 다녀갔을 사모스 마을에서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맞으며 수도원을 둘러본다.



커피나 한 잔 하고 화장실에 들르려고 들어간 바에서 반가운 얼굴을 만난다. 며칠 전, 몰리나세까에서 하루까가 만든 하이라이스를 나누어 먹던 아일랜드 여자가 바에 앉아 있다. 2주간의 휴가 동안 걸으러 스페인에 왔다는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던 미국인 노부부와도 인사를 하게 된다. 여기서 까미노를 시작한다는 노부부는 이미 700km를 걸었다는 나와 케이의 이야기를 듣더니 놀람을 금치 못한다. 비디오 카메라를 꺼내와서 촬영까지 한다. “부엔 까미노”라는 순례길의 인사조차 여행의 기념품으로 여기는 듯한 까미노 초보자들에게 유서 깊은 수도원과 여기서 만난 동양인 순례자는 까미노의 특산품 정도로 인식되는 것 같다. 그들의 태도가 정중하기도 하고 이미 까미노에서 많은 걸 경험해서인지 기분이 상하거나 씁쓸하지는 않다. 까미노를 아직 체험하지 못한 순진무구한 노부부가 이해가 되는 것이다. 여행길에서 순례자를 만났다면 나도 저런 짓(?)을 했을 테니 말이다.



사모스에서 빠져나와 길을 재촉한다. 봄은 어느새 북부의 산골 마을의 문턱까지 와 있다. 노란 유채꽃이 비를 맞는 모습이 예쁘다. 계절 때문에 꽃이나 푸른 잎들을 보지 못하고 걷기 시작해서인지 새순, 잔디, 꽃잎의 색깔에도 반응하게 된다.

나무는 나무대로 강물은 강물대로 늘 거기서 소명을 다할 뿐이다. 안개비 내리는 숲의 쾌적한 공기, 비에 불어난 강물이 콸콸 흐르는 소리는 이제 즐거움을 주는 특별한 장치가 아니라 길을 걷는 일상에서는 자연스러운 배경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걸어야 하는 게 순례자의 운명이다.

길가의 작고 투박한 성소를 지나간다. 어쩌면 이런 분위기의 수도원을 기대했는지도 모르겠다. 걸음은 시간을 붙들어 늘려준다. 걷고 서고 바라보고 생각하고 느끼는 일들이 느리게 흘러간다. 마음은 여유로 가득하고 “빨리빨리” 무엇을 완성해야 한다는 조바심 같은 것을 던져버린 지 오래다.



하루만큼 주어진 날씨를 만끽한다. 비가 내리면 내리는 대로 다리가 아프면 아픈 대로 편한 마음으로 걷게 되기까지 참 많이도 걸어왔다. 안개비를 맞고 있는 앙상한 나무들은 회색 하늘과 잘 어울린다. 화창하지 않은 하늘도 그 나름의 멋이 있다.

산티아고까지 112km 남았다는 사리아에 도착한다. 700여km를 걸었더니 112km라는 숫자는 아쉽게 느껴진다. 산티아고 성당에서는 100km이상을 걸은 순례자에게 모두 인증서를 주기 때문에 여기서부터 걷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800km를 다 걸으면 좋겠지만 시간이 없는 사람들은 구간별로 나누어 걸어서 완주하기도 하고, 레온이나 이곳 사리아부터 걷기도 하는 것이다. 건물, 인도와 차도, 횡단보도, 그리고 보도블럭 위의 세련된 까미노 표식이 사리아(Sarria)가 큰 도시임을 말해준다. 깊은 산 속 수도원을 떠나 속세로 돌아온 기분이다.

번화한 시내를 지나 언덕으로 올라 알베르게를 찾는다. 큰 도시에서는 한 번에 알베르게를 찾는 법이 없다. 분명히 근처에 다 왔는데, 화살표는 사라지고 길을 잃는다. 길가던 아저씨를 붙잡고 길을 묻는다. 그도 이 지방 사람이 아니라 지리도 잘 모르고 말도 잘 통하지 않는다. 그래도 친절한 아저씨는 이층에서 우리를 내려다보던 할머니에게 알베르게 위치를 물어서 고맙게도 직접 데려다 주고 갈 길을 간다.



사리아가 큰 도시지만 아직 순례자가 많은 계절은 아니라서 도미토리는 단 한 개만 열려 있다. 방에 들어가 짐을 풀다보니 옆 침대 아는 얼굴이 누워 있다. 부르고스를 지날 즈음 한동안 계속 마주쳤던 스페인 청년 빠꼬다. 생장을 넘어 오면서 만들어진 열 명 정도의 그룹과 함께 걷던 그다. 걷던 중에 무릎을 심하게 다쳐서 이곳에 며칠 묵으며 병원에 다녀왔다고 한다. 그의 침대에는 얼음이 든 찜질용 봉투와 약봉지가 널려 있다. 항상 유쾌하게 사람들을 대하던 그의 발걸음은 여기서 멈추어 있다. 그룹으로 출발해도 까미노는 그렇게 각자의 길이다.

점심을 거르고 걸은 데다 발걸음이 빨라져서 일찍 도착했다. 갈리시아의 공립알베르게는 이상하게도 주방이 있는데 그릇이 없다. 결국은 요리를 해먹지 말라는 것이나 마찬가지여서 그저께 오세브레이로에서처럼 밖에서 식사를 해야 한다. 이곳에 며칠 묵었다는 빠꼬가 알려준 식당은 문을 열지 않았다.



시간이 많이 남으니 오랜만에 대도시의 시내를 돌아다녀 본다. 처음 목적은 저녁때까지 요기할 것을 먹고 싶어 메르까도를 찾기 위함이었는데 본의 아니게 시내를 돌아다니게 된다. 등산용품을 파는 큰 매장에 들러 비를 피하면서 아침에 잃어버린 배낭커버도 다시 산다. 결국엔 메르까도에서 간식과 맥주를 사들고 알베르게로 돌아와서는 밖에 나가지 않고 그걸 저녁으로 때우게 되었다.

다들 저녁을 먹으러 간 것인지 식당에 사람이 없다. 케이와 나만이 맥주병과 과자 부스러기를 늘어놓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동안 걸어온 길과 각자 느낀 소회를 나누며 공복에 마시는 맥주가 잘도 넘어간다. 인간관계는 난로처럼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게 대해야 한다는 말처럼, 케이와 나는 알맞은 거리를 유지하며 걷고 대화하고 있다.

알콜 기운이 피로한 몸에 퍼지고 이야기가 깊어진다. 대화에 한참 빠져 있는데 아까 수도원에서 만났던 아일랜드 여자가 들어온다. 웃음기가 사라진 표정을 보고는 왜 그리 심각하느냐고 묻는 그녀의 얼굴에 부러움이 묻어난다. 옆자리에 앉아 함께 이야기 하고 싶지만 한국인들만의 대화가 이미 범접할 수 없는 분위기임을 그녀도 감지한 것이다. 풍성한 모국어를 사용하면서 속 깊은 대화를 나눌 대상이 있다는 것, 걸어오면서 그만큼의 관계가 형성될 수 있었음이 행운이었다는 걸 깨닫게 되는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는다.

정리=강문규기자mkk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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