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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00년 지켜온‘맥주 순수령’…폐지냐 유지냐, 들끓는 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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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김성훈 기자]세계 맥주업계에 올해 4월 23일은 기념할만한 날이다. 맥주 종주국인 독일에서 ‘맥주 순수령(Reinheitsgebot)’이 발효된 것이 정확히 500년이 됐기 때문이다. 독일 체신국에서는 이를 기념한 우표를 발행했고, 앙겔라 메르켈 총리도 순수령이 처음 공표된 바이에른에서 사흘간 열리는 ‘맥주 순수성 축제’에 참석할 예정이다. '리얼푸드'에 따르면 한국에서도 순수령 500주년을 기념한 마케팅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맥주 순수령은 맥주를 만들 때 4대 원료(물, 맥아, 홉, 효모) 이외의 재료는 넣어서는 안된다는 규정을 핵심으로 한다. 16세기 도시가 발달하면서 맥주 소비가 늘어나자 양조업자들은 맥주에 향초나 향신료, 과일을 넣어 제조하면서 과열 경쟁을 벌였다. 심지어는 빨리 취하게 할 목적으로 독초를 넣는 일도 있었다. 일부 수도원에서는 밀로 맥주를 만들어 큰 수익을 얻기도 했다. 이에 바이에른 공국의 빌헬름 4세는 맥주 품질을 향상시켜 조세 수입을 늘리고, 밀이나 호밀의 맥주 사용을 금지해 식량을 확보하고자 순수령을 발표했다. 맥주 원료뿐만 아니라 가격, 제조 시기까지 깐깐하게 규정함으로써 오늘날 독일 맥주의 명성을 쌓아올리는 근간이 됐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그러나 정작 독일 내에서는 순수령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신문과 방송에서는 순수령은 퇴물이 됐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맥주 원료가 제한됨으로써 다양성과 개방성이 말살됐다고 주장한다. 이미 많은 소형 맥주회사들이 다양한 원료를 넣은 신상품을 출시하고 있고, 순수령의 규제를 받지 않는 수입 맥주도 자유롭게 유통되는 만큼 21세기의 업계 현실에 맞춰 법을 바꿀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쾰른 인근에서 양조사를 운영하고 있는 세바스티안 사우어는 “순수령 하에서도 다양한 조합으로 맥주맛을 낼 수는 있지만, 대부분 매우 유사해서 맛의 차이를 느끼기 힘들다”며 “천연 향료와 과일을 맥주에 넣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특히 독일 내 맥주 수요 감소를 막기 위해서라도 순수령을 폐지해야 한다고 말한다. 독일 맥주회사 협회(GBA)에 따르면 독일인은 1992년까지만 해도 1인당 142리터의 맥주를 마셨지만, 2014년에는 107리터만을 마셨다. 20년 사이 소비량이 30% 가까이 줄어든 것이다. 다양한 재료를 허용함으로써 맥주의 외연을 넓히면 맥주 소비도 늘어날 것이라는 것이 폐지론자들의 주장이다.

레겐스부르크 대학의 군터 히르시펠더 교수는 ‘순수령의 순수성’을 자체가 허구에 가까운 것이라고 비판한다. 그는 순수령 초기에는 고수가 원료에 포함돼 있었지만 지금은 빠졌고, 과거에는 원료에 들어 있지 않았던 효모가 현재는 포함되는 등 500년 동안 순수령이 규정한 ‘4대 원료’에도 변화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반대로 순수령을 지지하는 입장도 여전히 존재한다. GBA측은 순수령이 창의성을 막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다양한 종류의 4대 원료만 조합하더라도 백만가지 이상의 다양한 맥주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현 법제 하에서도 대부분의 주에서 추가 재료를 넣은 ‘스페셜 맥주’ 생산 면허를 딸 수 있기도 하다(다만 이 경우 순수성을 주장할 수 없다). 또 순수령은 맥주에 설탕이나 식용 색소, 인공향과 같은 요소를 첨가하는 것을 막아준다.

그러나 순수령은 이미 흔들리고 있다. ‘크래프트 맥주’(대기업이 아닌 개인 혹은 소규모 양조장이 고유의 레시피에 따라 제작한 수제 맥주)의 인기가 점점 높아지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GBA에 따르면, 크래프트 맥주 양조사의 수는 최근 10년간 37%가 늘어 지난해 기준 717개가 됐다. 

/paq@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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