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등단 29년만에 첫 멜로 소설 낸 구효서, “문단의 시선때문에~”
[헤럴드경제=이윤미 기자]중진 소설가 구효서(59)씨가 첫 멜로소설, ‘새벽별이 이마에 닿을 때’(해냄)를 냈다. 등단 29년 만에 낸 스무번째 장편소설이다. 일본, 독일 등 낯선 공간과 시간을 배경으로 인간에 대한 탐색을 이어온 작가가 이번에는 아프리카를 배경으로, 한 남자와 두 여자의 얘기를 펼쳐냈다.

한국인으로 미국에 입양된 수와 아프리카계 미국인 앨런, 아프리카 원주민 출신 리의 삼각관계가 축이다. 서로의 아픔과 비밀을 공유한 앨런과 수, 둘과 연인관계인 리가 어떻게 삼각형의 균형을 이루다 균열이 시작되고 깨지는지 아프리카를 배경으로 느리고 세밀한 움직임으로 그려낸다.


소설은 마치 티없던 말간 하늘에 새털 구름이 보일듯 말듯 떠 있다가 빗금처럼 늘어나 결국 두꺼운 먹구름으로 어두워지는 양상으로 전개된다.

작가는 26일 오전 소설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첫 멜로 도전에 대해, “멜로 드라마를 좋아하고 오래전부터 멜로 소설을 쓰고 싶었다”며, 그런데도 알량한 문단의 시선 때문에 소설을 쓰지 못했다고 말했다.

“멜로라는게 멜로디에서 온, 음악성을 끌어들이는 장르인데 상업적ㆍ세속적으로 변질이 된 거죠. 멜로 드라마에는 흔히 등장하는 이야기 패턴이 있잖아요, 교통사고, 기억상실증 그런 걸 이번 소설이 따르고 있지만 그게 다는 아니에요. 이야기 전개를 위해 도구적으로 받아들인 거죠. 멜로는 멜로지만 멜로가 다가 아니죠.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걸 포기했어야 되지 않았나 하는 후회가 돼요.”

작가는 그런 측면에서 이번 소설은 ‘비겁한 멜로’라는 표현을 썼다. 그래서 다음 소설은 한 여자와 두 남자의 본격 멜로를 쓸 참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소설은 멜로 드라마의 흔한 틀을 따르되 순정하거나 격정적인 것과는 거리가 있다. 작가는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는 것이 얼마나 취약하고 스스로조차도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걸 세 사람의 파국을 통해 통해 서늘하게 그려낸다.

소설의 줄거리는 아프리카 봉사원으로 일하던 수가 사고로 원래의 외모와 기억을 잃고 말라위 옴바니 마을에 친구 앨린과 그의 연인 리의 보살핌을 받으며 사는 이야기다. 아프리카 꼬마로부터 말린 쥐가 기억을 되살려 준다는 말을 들은 수는 쥐를 씹다가 불현듯 과거의 기억을 떠올린다. 그것은 바로 자신이 리를 안다는 것. 입양 가정에서 열두살에 버림받은 수는 단짝 친구인 앨린과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리와의 행복한 나날을 깨트리지 않기 위해 돌아온 기억을 다시 비밀로 묻어둔다. 비밀을 간직한 것은 리와 앨런도 마찬가지. 각자의 비밀을 지키며 애써 행복을 유지하던 균형은 소원을 빌면 이뤄진다는 ‘은라의 눈’을 다녀온 뒤로 흔들린다. 리를 사이에 두고 갈등이 고조되고 기억을 온전히 회복한 수는 아즈나움으로 봉사활동을 떠난다. 그런 수를 앨런은 붙잡지 않는다. 수를 기다리는 게 테러리스트란 사실을 알리지 않는다.

작가는 갈등 구조를 드러내는데 속도감있는 전개 대신 느린 아다지오로 끌고간다. 그가 사랑을 보여주는 방식이다. “독자에게는 사소하고 작가에게는 중요한 건데, 속도를 느리게 하면서 긴장을 드러낼 수 없을까 하는게 저에게는 중요한 목적이었어요. 속도가 다른 긴장은 다른 긴장의 맛일 거라는 거죠.”

그런데 왜 아프리카일까.

“한국적 감성이 통용되지 않는 공간으로 아프리카를 설정했는데, 정서의 공감대가 전혀 없는 그곳에서도 우리 사회에서 공유되는 감동과 정서를 느낄 수 있는 것인지 질문을 던져보고싶었어요.”

소설에는 드러나지 않지만 먼 배경에는 ‘감각의 주체, 신념의 주체가 과연 나일까’ 라는 작가의 고민과 의문이 깔려 있다.

감각과 공유의 인프라가 민족, 지역, 국가를 떠나서 어떻게 작동할까를 던져놓음으로써 내 신념이 인종적, 국가적인 것에 지배를 받거나 학습된 것이 아닌 오로지 내 것인지를 묻는 것이다.

세 사람이 파국으로 치닫는 다른 비극적 결말에 대해서도 그는 신념의 문제를 이어갔다.

“우리는 오랫동안 비극 아닌 걸 추구해왔고, 삶의 에너지를 고양시키는 쪽으로 발전시켜왔잖아요. 근대성이 이뤄온 역기능과 폐해에 대한 대안이나 치유로서의 비극의 발견이에요. 수의 어머니는 구원을 얻기 위해 딸을 입양해요. 감각이나 신념을 배반한거죠. 예술의 무책임특권이라는 게 있는데, 예술은 무책임하게 때려부수는 것만으로도 역할을 다한다고 생각해요.”

그는 한 번도 가 본적이 없다고 했으나 소설 속 아프리카는 매우 구체적이고 실감난다. 소설의 배경인 말라위 옴바니 마을의 경우, 실제 지명을 썼다가 가상으로 바꾸었다. 또 소설의 극적 전환점인 세 사람이 떠난 나이지리아의 신비한 기도처 ‘은라의 눈’과 전설 역시 작가의 상상력에서 나왔다. 아프리카에 대한 소소한 정보를 찾아내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고 한다.

등단 이래 장편과 중단편, 산문집을 합쳐 서른다섯권의 책을 낸 구 씨는 “책 한 권 한 권이 돌덩이처럼 보인다”고 말한다.

“한 걸음 한 걸음 그걸 딛고 갈 수 밖에 없다는 것. 그래야 강을 건너니까요. 그걸 딛고 또 다른 작품을 만드는 거죠. 어쩔 수 없는 작가의 숙명같아요.”

/meelee@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