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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화마을벽화 시멘트 훼손…주민들“오죽하면 그랬겠나”
주민들 소음·쓰레기로 불편호소
서울시 대책 전무에 불만 봇물



“잉어 그림 계단에 페인트 덧칠된 거요? 관광객들은 안 좋게 볼지 몰라도 제겐 나쁘게 보이지만은 않거든요.”

이화마을에서 태어나 지금껏 살아왔다는 한 주민은 페인트칠에 덮여 사라진 ‘잉어 계단’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나고 자란 곳의 명소가 훼손된 상황인데도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9일 오후 1시 종로구 이화마을. 마을 입구엔 아기자기한 비둘기와 구름이 그려진 벽화가 오는 이를 맞이하고 있었다. 하지만 발걸음을 옮길수록 벽면 곳곳 있는 ‘주민동의 없는 재생사업 결사반대’, ‘유치권 행사 중’ 등 붉은 래커칠이 관광객에 위화감을 주고 있었다.

지난해 11월 서울시는 이화마을에 주택환경 개선 등을 지원하는 도시재생사업을 계획, 몇몇 사업을 제안했지만 일부 주민들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오히려 ‘갑자기 관광지가 된 마을에서 간신히 살아왔다’고 주장하는 이들의 참아왔던 불만만 수면으로 떠올랐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달 15일엔 마을 내 꽃 그림 계단이, 23일쯤엔 잉어 그림 계단이 이를 반대하는 주민들의 페인트칠에 사라졌다.

마을 한가운데 있는 회색 페인트 계단을 관광객들은 ‘갸우뚱’하며 지나갔다. 한 관광객은 계단이 원래 저런 모습이 아니지 않냐”며 묻기도 했다. 이에 반해 주변 주민들 반응은 조용했다. 주민 A 씨는 “훼손된 그림 계단이 주민들에 아무 지침도 주지 않은 채 사업만 추진하는 서울시에 대한 우리 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집 앞 화분에 버려진 일회용 컵을 가리키던 주민 B 씨는 “나는 차라리 관광객이 계속 줄었으면 좋겠다”며 “계단 벽화 복구나 재생사업보다도 소음이나 쓰레기 문제를 해결할 실질적 대책이 나와야 한다”고 토로했다.

약 2시간가량 관광객들을 비집고 확인해본 결과 마을 곳곳엔 ‘쓰레기를 버리면 벌금 10만원입니다’ 등 경고판이 붙어있었다. 하지만 한 골목엔 주민이 직접 쓰는 걸로 보이는 자전거 옆에 빈 생수통 등 쓰레기가 수북이 쌓여있기도 했다. ‘쉿! 주민이 살고 있어요’란 간판이 걸린 전봇대는 아랑곳하지 않는 듯 관광객들의 소음이 마을을 메웠다. 몇몇 벽면엔 ‘20XX OO OO 왔다 감’ 등 낙서도 빼곡했다.

이화 경로당에서 만난 53년째 마을에 사는 주민 신현숙(79) 씨는 “조용한 게 마음에 들어 평생 이사도 안 갔던 마을이었는데 지금은 확 뒤집힌 상태다”라며 “경로당 화장실은 관광객이 몰려 청소하기도 힘들다”고 털어놨다. 신 씨는 계단의 벽화가 페인트로 훼손된 게 알고 있냐는 질문에 “알고는 있지만 거기에 대해 나쁜 생각은 없다”고 동요 없이 답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마을 상황에 대해 “우리도 몇 가지 제안을 했지만 주민들 의견이 갈린 것으로 안다”며 “지금은 주민들끼리 자정해 의견이 맞춰지는 걸 기다리고 있다”라고 입장을 밝혔다. “그림계단 훼손은 도시재생사업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한편 이러한 마을의 속앓이 속에서도 관광객은 붐볐다. 이들은 웃으며 아이스크림과 커피를 들고 벽화를 감상했다. 대학생 이성진(23) 씨는 “강아지와 날개 등 사진이 예쁘게 찍히는 벽이 많아 부모님과 셀카 찍기 좋은 곳인 것 같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특히 KBS 예능 프로그램 ‘1박 2일’이 찍어 화제가 된 일명 ‘날개’ 벽화는 여전히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이원율 기자/yul@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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